[시론(時論] 눈물

by 이우 posted Jun 20, 2015 Views 372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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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의 철학자로 불린 에밀 시오랑(E. M. Cioran, 1911년~1995년). 시오랑은 파리 대학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 학생이었다. 그는 루마니아의 고등학교에서 잠시 철학 교사직을 맡았던 것 외 평생 한 번도 직업이 없었다. ‘공원을 조용히 거닐고 싶다’는 핑계로 미디어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그였으나 프랑수아 미테랑(1916년~1996년) 전 프랑스 대통령 관저와는 직통으로 전화가 연결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그는 매춘부가 살고 있는 허름한 집의 쪽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그녀들의 눈물을 바라보야만 했던 철학 전공자 에밀 시오랑. 그는 ‘눈물’을 주제로 졸업 논문을 쓰겠다고 생각하지만 지도 교수의 반대로 좌절한다. 지금까지 ‘눈물’을 주제로 대해 철학 논문을 쓴 사람이 없으며, 근거나 자료를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시오랑은 분노한다. “철학이 눈물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면, 철학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Cogito ergo Boom)." 그리고 그는 철학을 포기한다. 철학을 포기했지만 지금 시오랑에 대한 평가는 그가 가장 완벽하고 우아한 문체를 구사하는 프랑스 최고의 산문가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가 ‘눈물의 사유’를 계속했다면, ‘정신’에 전착해온 서양철학사에 새로운 단초를 건설했을 수도 있다.


  사실, 정신과 신체라는 이원론의 틀 속에서 우월한 정신이 열등한 신체를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철학의 전통은 ‘도덕(morality)’이라는 실천에 닿았다. 진리와 허위, 선과 악을 구분하는 도덕은 선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권장하고, 악이라 생각하는 것을 징벌하면서 ‘정의(justice)’를 낳고 ‘모랄 모랄’하면서 대립과 갈등을 부추겼다. 이성과 주체의 문제에 전착해 문명과 야만을 구별한 이성 중심의 서양철학이 닿은 곳은 결국 세계대전(World War)이 아니던가. 그래서 현대철학은 정신과 신체라는 이원론의 틀을 깨고 신체를 사유하기 시작했다. 주체를 해체하고 에피쿠로스나 스피노자에게 열광하고 플라톤에게 추방되었던 예술의 가치를 되살렸다. 정신이 아니라 신체를 사유하는 순간 차별과 억압, 대립을 함축하고 있는 ‘도덕(morality)’의 자리에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이 있는 ‘윤리(Ethic)’가, 정의(正義)의 자리에 미덕(美德)이 놓인다. 이제 철학은 신체를 사유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5·1과 5·18, 그리고 세월호….  5월엔 웃음과 눈물이 있고 차별과 억압, 대립이 가득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대적 이성이 낳은 도덕(morality)이나 피의 냄새가 나는 정의(justice)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웃음과 눈물이 있는 '윤리(Ethic)'다. 지금 우리에겐 에밀 시오랑의 ‘눈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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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역신문공동체 <은평시민신문> 2015년 5월 29일 13면에 게재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