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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독 후기] 왜 하필 천사인가_ 장우현

by 정현 posted Jul 13, 2018 Views 741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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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천사인가?

-발터 벤야민의 책 한 권만 읽은 者의 자조 섞인 푸념 -

장우현
    
이미지_벤야민.jpg

    발터 벤야민의 선집 5권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유명하며 집약적 글쓰기가 되어 있는 글은 단연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이다. 18개의 테제와 2개의 부기로 구성되어 있는 길지 않은 글 속에서 그가 말하는 맥락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구원 받아야 한다.”이다. 
  물론, 유대교인 그가 글을 쓰면서 그런 종교적 메시지를 교묘히 감추거나 위장을 했다고 비난할 수 없을 만큼 대 놓고 반복적으로 강조하건만 나처럼 종교에 관심이 없거나 혹은 인문학적 마인드로만 접근했을 때, 그가 무수히 나열했던 단어들이 처음에는 거슬리게 되고 그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만 걸러내서 버리고 나머지 부스러기들로만 엮어서 이해하게 된다.  이때, 그가 전제로 했던 신학 부분의 이해 없이 내 스스로가 내 인식의 한계 안에 남겨진 부스러기들과 내가 아는 지식들로 뭉쳐서 벤야민의 글이 아닌 다른 말로 제멋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벤야민의 “역사 개념에 대하여”를 역사적 유물론자는 승리를 거둔 자들만의 야만의 기록인 문화의 전승, 그리고 진보에 대한 통념들을 배제하고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사실의 더미를 모은 보편적 세계사와는 달리 생각의 흐름과 더불어 생각의 정지를 포함한 사유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엮어냈다. 그 부분은 단지 테제8에서 테제13의 내용으로 마치 니체가 말하는 “퍼스펙티비즘을 통한 해석”으로만 이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읽었을 때, 신학의 잉크를 흠뻑 빨아들이고 있는 벤야민이라는 압지를 발견함과 동시에 숨 막히게 등장하는 메시아를 이해하지 못하면 반쪽만 읽는 꼴이라고 판단했다. 신학, 구원, 메시아, 천사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해하고 알아내야 한다.  온전히 읽어내기 위해서는...... 신학이라는 장치만 있으면 백전백승1) 할 수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테제 1에서부터 테제 5에 이르기 까지 ‘구원’과 ‘메시아적 힘’이 등장한다. 특히 테제 4에서 꽃이 태양을 향하는 비유로 과거가 구원을 포착하려한다고 설명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과거에서 구원으로 향하는 대표적 예 중에 하나가 “계급투쟁”의 역사다.  물질을 둘러싼 투쟁이 있어야 섬세하고 정신적인 것들도 있을 수 있다. 즉, 그것들은 일찍이 지배자들의 수중에 떨어졌던 모든 승리를 의문시하여 구원으로 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2)
    테제 6에서는 종말론적인 사고를 발견했다. ‘메시아는 적그리스도를 극복하는 자로서 온다.’3) 이는 <요한 묵시록>의 종말의 순간, 시간이 정지하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말한다.  역사가 인간의 타락으로 시작해서 신의 왕국이 실현되는 것으로 정지한다면, 반대로 종말론은 시간이 정지하는 순간 구원 직전에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 한다.  벤야민은 노트에서 ‘맑스는 계급 없는 사회의 관념 속에 메시아적 시간관을 세속화했다.’4)라고 하면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 역사적 발전의 과정(진보), 계급 없는 사회라는 맑스의 세 개의 기본 개념을 집어내어 역사적 발전 과정 속에서 계급 없는 사회는 종점으로 구성될 수 없으며 이는 진정한 메시아적 얼굴이 다시 부여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메시아적 시간이 역사적 시간과는 다른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맑스가 내놓은 인류의 목표를 벤야민은 메시아의 시간 혹은 구원의 순간으로 동일시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메시아주의는 구원 이후에 어떤 확신을 보장해 주는 것 같지는 않다. ‘물리학자가 태양광의 스펙트럼에서 자외선을 찾아내듯이, 그 역사가도 역사 속에서 메시아적 힘을 찾아낸다.  구원된 인류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이러한 상황이 등장하는 일이 어떤 조건에 묶여 있는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대답이 없는 질문들은 던지고 있는 셈이다.’ 5)
    테제 8부터 13까지는 진보와 진보의 역사관을 취하는 사회민주주의를 비판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진보에 대한 비판을 벤야민은 ‘시간’과 연결한다.  즉,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에 대한 비판으로 ‘지금시간’과 대치시키면서 ‘경과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서 정지해버린 현재라는 개념을 역사적 유물론자는 포기할 수 없다.’6)라고 말한다.
    테제 14부터 끝까지 이 글의 후반부는 ‘지금시간’에 더해 신학이 가미된 역사관의 서술로 채워진다. ‘메시아적 시간의 파편들이 박혀있는 ’지금시간‘으로서의 현재의 개념을 정립한다.’7) ‘미래 속의 매초는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문이었기 때문이다.’8)라고 마무리 한다.  
   이 테제들 속에서 내린 결론, 벤야민이 말하는 구제는 자력 구제가 아니라 타력 구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때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으며 그 때가 언제인지 예측 할 수도 없는 100%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완전 수동의 형태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구원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 형식이나 양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메시아의 뜻으로 혁명의 시간을 개시해 주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알 수조차 없다. 무조건 기다려야 하는 무능력한 존재로서의 벤야민이 보인다.

    파사주 프로젝트를 그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자본을 분석해 보려고 했던 그의 시간들 역시 구원을 기다리다 지친 영혼으로 나타나는데 그 결정판은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다.  테제 9에서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자기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또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국은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이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9)
    ‘진보’라는 폭풍 앞에서 날개를 접을 수도 없어서 떠밀려 날아가는 천사의 이미지는 절망적이다.  기술의 진보 앞에 박살나버린 과거 역사주의의 잔재들이 쌓여 폐허가 된 그 곳에서 종말론을 내포한 신학적 언어의 신비감으로 구원답게 구원을 말한 벤야민이 지금이 아닌 1940년대 전쟁 후에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을지 상상을 해 볼 뿐이다.  반면에 맑스의 ‘계급 없는 사회’라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관념으로 불가피하게 신학적인 구조라는 것. 메시아적이여야 한다고 해석해주어 내게는 또 하나의 우울감을 선사해 주었다는 것 뿐이다.  이것이 내게 발터 벤야민이 철학자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내 인식에 첨언을 해주고 섬광과 같은 깨우침을 주어 외연을 확대시켜 주지 못하고 앞선 말한 대로 내 인식 안에서의 끼워 넣기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에 동시대를 산 또 다른 문예비평가가 있었으니 그 또한 발터 벤야민과  같이 파시즘을 겪었고 맑스주의를 수용하고 글을 썼고 역사를 비평했으나 메시아나 천사 타령은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루쉰. 그는 귀신을 불려 들였다.  글 "여조“에서 복수를 위해서 악귀를 선택한 여자 귀신이 나온다.  억울하여 한이 맺혀 복수의 칼날을 가는 귀신인데, 그 억울함의 근본이유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했던 습속들과 새로이 등장한 근대의 체제들이였다.  숙명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죽어서도 억울함에 한을 풀어야 하는 귀신을 등장시킨 것이다.  폭풍에 어찌할 바 없이 떠밀려 다니는 천사보다는 죽어서라도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을 푸는 빨간 귀신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벤야민이 말한 구원이 도래할, 자본이 익을 대로 익어 터지기 일보 직전인 종말의 시점일지도 모를 21세기를 산다.  8차선 도로 위를 시속 100km/h 이상으로 달리는 차와 버튼 하나로 온 세상과 소통이 가능한 5G의 속도로 물신의 총력전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고 있다.  순수하게 멍청하게 허우적거리는 천사의 모습도 아니며 억울함에 한을 품고 산자에게 호소하며 대신 풀어달라고 우는 귀신도 아닌, 탈주자로 살아가고 있다.
    자본이라는 폭탄의 뇌관을 해체할 기술은 없지만 폭탄을 받아 산산이 부서지지 않게 철학을 방패삼아 절대 포획되지 않는, 뺀질거리며 요리조리 도주하는 탈주자. 
    
  註) .............................

  1)발터벤야민 전집 5 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p.330
  2)발터벤야민 전집 5 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p.332
  3)발터벤야민 전집 5 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p.334
  4)발터벤야민 전집 5 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들 p.354
  5) 발터벤야민 전집 5 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들 p.356
  6)발터벤야민 전집 5 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p.347
  7)발터벤야민 전집 5 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p.349
  8)발터벤야민 전집 5 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p.350
  9)발터벤야민 전집 5 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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