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공동체 탄생에 부쳐_리강

by 이우 posted Mar 16, 2016 Views 1347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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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쿠로스 공동체 탄생에 부쳐
  리강

  이미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
  밤은 더 깊고 추위는 소스라쳐 놀랍다
  가늠할 수 없는 겨울이
  가늠할 수 없이 빠르게 겨울이 우리 곁에 와선
  다시는 물러가지 않을 것 같다
  잘못된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행복이라 써 둔 낙서는 어서 버려야 한다
  아픔 뒤에 더 큰 아픔 맞을 준비해야 한다
  잘못된 길은 끝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정현이여 그리고 이우여
  에피쿠로스와 스피노자와 니체가
  알튀세르와 푸코와 들뢰즈가
  행복하게만 살지는 않았으리라
  아픔 없이 살지는 않았으리라
  불행하고 가난하며
  비극적이며 추웠으리라
  얼마나 많이 굶주렸을까
  얼마나 많이 이별했을까
  얼마나 많이 외로웠을까
  또 얼마나 많이 홀로 걸어가야 했을까
  그러니 이우여 그리고 정현이여
  우리 함께 이 길을 가자
  함께 가면서도 혼자 외롭게 가자
  겨울 나무 까마귀 같이
  눈보라 치는 하늘을 날자
  에피쿠로스처럼
  스피노자처럼
  니체, 니체처럼
  사막 위에 내버려진 사자처럼
  더 오래 배고프자
  그러나 알튀세르나
  푸코나 들뢰즈처럼
  더 멀리 고독하자
  그리하여 이우여 그리고 정현이여
  겨울 앞에 꼿꼿이 서자
  춥고 배고프며 즐거이 웃자
  눈보라 치는 쪽으로 힘차게 걸어가자
  불행이 다하여 행복해질 때까지
  상처가 덧나 꽃 필 때까지
  죽을 때까지
  다 죽어 정현도 없고 이우도 없고 리강도 없어서
  죽음이 비로소 행복에 이를 때까지
  이별이 사랑일 때까지
  고독이 고독일 때까지
  정현이여, 이우여


    * 2014년 3월 15일(토)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공간사업이었던 <모임공간 에피>(www.space-epy.kr)를 열었던 리강의 축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