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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후기] 동물원 밖에서, 한바탕 춤과 노래를!

by 정현 posted Nov 20, 2015 Views 1328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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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_독서토론.jpg ? 올 해 가을은 예천 초입의 풍년휴게소에서 맞이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린 강아지였던 백구가 네 살을 더 먹어 성견이 되었는데도, 일 년이 훌쩍 지나 나타난 우리를 여전히 기쁘게 반겨 줍니다. ‘생강나무 노란 싹이 트고, 목련 봉우리가 열리는 3월이면 풍년휴게소 느티나무 아래에서 갑작스레 봄을 맞이하'던 지난 삼 년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 2012년 경북도립대학교와 첫 인연을 맺고, 인문고전 만남 프로젝트 <Reader가 Leader다>로 한 학기동안 청춘들을 만났습니다. 다음 해 3월에는 2013년 통찰력을 갖춘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인문고전 만남 <상처 받지 않을 권리>로, 2014년에는 <행복한 삶을 위한 일곱 개의 주제>로 인문강좌와 독서토론을 하고, 청소년소설 <정범기 추락사건>의 저자 정은숙 작가와의 즐거운 북콘서트를 했습니다.

? 올 해로 네 번째인 인문고전 만남 <청년, 세상을 노마드하다>. 강의 시작 전에 강의실 앞에서 작년에 수강했던 한 여학생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이번 강의도 들으러 오라고 권했습니다. "정말 듣고 싶은데, 힘들 것 같아요. 수업과 과제가 너무 많아서요." 유아교육을 공부하는 여학생은 조심스레 거절했습니다. 이번 강좌의 마지막 날, 세책례를 하면서 <굿바이 동물원>의 강태식 작가 초청 북콘서트에서 재치 넘치는 독자 낭송으로 분위기를 띄웠던 여학생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인문고전만남 수업이 정말 좋았어요. 평소 고민하던 문제와 새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요. 매번 다 참석하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결석을 하게 돼 선생님들에게 죄송해요."?

? 학생들은 바쁩니다. 전공수업과 과제로, 자격증 취득 준비로, 공무원 시험 준비로 저마다 바빠도 너무 바쁜 것이죠. 왜 그리 바쁘게 여유없이 청춘을 보내야만 할까요? 2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어두어진 경북도립대학교 캠퍼스에 들어서면 오늘은 몇 명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염려를 하며 강의실로 향합니다. 강의 회차가 거듭될 때마다 비어가는 자리를 보며 바쁘거나, 몰라서 함께 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대한 생각으로 안타까웠지만, '3월 초에 경북도립대에 와서 가장 유익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한 고민 많은 전역한 남학생 백○○과 기존의 사고 체계가 흔들려 혼란스러워하며 계속 질문을 던지던 김○○.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독도 여행의 기대로 끝까지 자리한 강○○, 그리고 함께 한 모든 학생들. 모두 한 순간이라도 앎의 감응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 <청년, 세상을 노마드하다> 다섯 번 째 시간. 제 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의 장편소설 <굿바이 동물원>을 읽고 토론을 했습니다. '처절한 경쟁 사회에서 밀려난 주인공이 동물원의 동물로 취직하면서, 고릴라의 탈을 쓰고 가슴을 탕탕 두드리고 모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오르내리면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경북도립대 학생들이 꿈꾸는 공무원 공부를 하는 앤 대리, '사람답게 살고 싶어' 동물원에 취직한 조풍년.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이 시대의 아픈 이야기를 작가는 블랙코미디처럼 '능숙하게 사람을 울리고', 웃기지만 책을 읽고 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의 결말처럼, 동물원의 구조는 바꾸지 않고, 기꺼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다시 고릴라의 탈을 쓰고 모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오를 것인가, 자식에게까지 또 동물원의 고릴라로 살게 할 것인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앤 대리의 기쁨도 잠시, 곧 구조조정으로 불안에 떨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학생들은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해답은 <청년, 세상을 노마드하다>에 있습니다. '세상을 노마드한다는 것은 몇 가지 명제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 노마드한다는 것은 '우발적인 마주침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는 것. 둘째,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는 것은 기표와 반-기표를 가로질러 탈-기표를 생성하는 것. 셋째 탈-기표는 근대철학에서 말하는 '주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외부의 배치물을 이동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기입되는 기표와 반-기표를 잘 살펴서 '복종하는 기술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단순한 생활자로 살아가기 위해, 안정된 직업만을 찾기 위해 청춘을 보내는 일은 끔찍하고 불행한 일입니다. 그저 직업으로써 공무원이 되고, 유치원 교사가 되고, 소방관이 되고, 행정가가 되기 위해 빡빡한 수업과 많은 과제로 바쁘게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봐야 합니다. 어떤 분야의 일을 하는 공무원이 되고 싶은가? 정말 어린이를 사랑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은가?

? <굿바이 동물원>의 결말을 두고, 여러 의견이 있었습니다. 제가 주인공 김영수라면 동물원에 남지 않고, 동물의 탈을 쓴 동물원 안의 사람들과 모두 밖으로 나와 한바탕 춤과 노래를 부르고, 사람의 얼굴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하겠습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 홈패인 공간이 아닌 매끈한 공간으로의 이행, 단 한명의 1등을 세우는 구조가 아닌 모두가 1등이 될 수 있는 일체에서 다양체로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뾰족한 시치프스의 산정을 '천개의 고원'으로, 고원을 매끄러운 공간으로 바꾸어 가겠습니다. 바로 노마드(유목)하는 삶이지요.?

? 노마드한다는 것, 유목하는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존의 의미 체계에서 벗어나 탈주한다는 것은 자유롭지만 외롭습니다. 때론 현실의 불편함을 과감하게 감수해야 합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동일성안에서 객체로 살아 갈 것인가,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삶의 주인으로 살아 갈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든 괜찮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아도 세계는 원래 ‘노마드’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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