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참 비밀인데.....
사실 내 방 안엔 짐승 하나 들어와 산다.
검고 반짝이는 눈, 어둡고 어두운 털, 아주 작은 짐승 하나 불쑥 들어와 산다.
내가 학교 갔다 오니 벌써 들어와 웅크려 있다.
그 짐승에게 "안녕"하고 인사해도 대답이 없다.
대답 대신 그는 내 마음에다 "그래, 안녕"하고 새겨 준다.
"크르, 넌 이제 '크르'야. 난 너를 '크르'라고 부르겠어."
크르는 제게 꼭 맞는 이름이라고 내 마음에 새긴다.
난 크르와만 마주보고 크르와만 말하고 크르와만 손잡고 크르와만 잠 잔다.
크르는 이제 낯선 짐승이 아니다.
내 방 식구다. 아니, 그 이상이다. 크르와 나는 점점 구별되지 않는다.
어느 새 크르는 내 마음 속 모든 생각을 안다.
그리고 크르의 몸은 조금씩 자라서 작은 내 방을 채워나간다.
학교에 갔다 오면 자라 있고, 또 갔다 오면 자라 있다.
언제부터인지 난 학교 가는 일이 귀찮다.
학교에 갔다 오면 부쩍 자란 크르 몸을 비집고 겨우 내 방에 들어온다.
또 크르 아닌 다른 사람과 눈빛 나누거나 말하는 것도 귀찮다.
크르와 내가 나누는 눈빛과 마음의 말에 비하면 그것들은 너무도 불완전하다.
아, 크르와 나의 이 '완전'은 참 설명하기 힘들다.
크르와 나는 온 눈빛과 마음으로 서로를 보여준다.
벌써 크르와 나는 이 작은 방에서 한 몸처럼 있다.
크르와 나의 고요, 평화, 따뜻함
어느 날, 크르와 난 누구랄 것도 없이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두 몸일 필요가 없어. 크르가 짐승이고 내가 사람일 필요도 없어. 이미 크르와 나는 '완전'한 걸.'
이 생각은 내가 하는 것인지, 크르가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크르는 엄청나게 커진 아가리를 온 방 가득 벌린다.
선선히 나는 크르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