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안 올 것 같은 어느 밤
세상 모든 먹을 것 다 먹고 너와 나
연신 트름하고 방구 뀌네
마지막 식량 급히 먹느라 그런지
차운 방 이불 얇아 소화 안 되는지
네 배나 내 배나 뽕양한 것이
너 트름 하면 나 방구 뀌네
크으윽 뿌룽
가끔 내 방구 먼저 너 트름 나중이네
푸우우 끄르르륵
자꾸 트름하고 방구 뀌다 보니
박자나 음정 제법 맞네
꺼어억 푸웅
꺼르르 푸르르릉
춥고 어둡고 배 뽕양한 겨울 밤
네 트름과 내 방구 참 닮았네
봄이 안 올 것 같은 어느 밤
세상 모든 먹을 것 다 먹고 너와 나
연신 트름하고 방구 뀌네
마지막 식량 급히 먹느라 그런지
차운 방 이불 얇아 소화 안 되는지
네 배나 내 배나 뽕양한 것이
너 트름 하면 나 방구 뀌네
크으윽 뿌룽
가끔 내 방구 먼저 너 트름 나중이네
푸우우 끄르르륵
자꾸 트름하고 방구 뀌다 보니
박자나 음정 제법 맞네
꺼어억 푸웅
꺼르르 푸르르릉
춥고 어둡고 배 뽕양한 겨울 밤
네 트름과 내 방구 참 닮았네
왜 이것이 잔혹주의, 혐오주의로 읽히는지.... 혹시 진흙소 머리 속에 잔혹한 상상이나 혐오스러운 트라우마가 많은 것은 아닌지....
아하, 춥고 어둡고 배 뽕양한 두 명의 남녀가 얇은 이불 덮고 누워서 연신 트름하고 방구 뀌는 장면이 그로테스크하기는 하네요. 아니 진흙소는 역시 변태의 눈을 가지고 있어요. 변태의 눈에는 모든 것이 변태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그런 변태스러움 속에도 인간적인 따뜻함이 스며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을..... 이것을 잔혹함, 혐오스러움으로 보다니.... ㅉㅉ
... <잔혹주의>, 혹은 <혐오주의>로 이 '소'가 읽힌다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 그렇게 읽힐 수가 있다는 것인데...음...설명하자면 긴데.... 예를 들자면, '내'가 보는 것은 '나의 눈'만으로 보는 것이라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보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리강에게 이 글을 쓰는 '진흙소'가 보이지 않을텐데 이 글을 쓰는 '진흙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이 글을 쓰는 '진흑소'를 보고 있다는 것을 예측해 인지한다는 것이랍니다. 독자는 작자를 예측할 수 있고, 작자는 독자를 예측할 수 있지요. 그렇게 말과 글은 만들어지는 것인데.... 말인즉, 세상에는 많은 실체들이 있는데, 왜 리강에게는 주로 '눈알', '방구', '트림' 이런 것들이 보이고, 이런 것을 글로 옮기는가 하는 것이지요. 방구를 뀌는 그 사람과 세상으로 나와요. 환한 햇빛 아래로...
흠, 그렇다면 일단 잔혹주의, 혐오주의로 평가할 필요는 없을 듯.... 그리고 '방구', '눈알', '트림'이 어때서 자꾸 시비에요, 시비는.... 이것들은 인간 육체가 만들어내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가장 실제적인 것들이지요. 제가 쓴 글에 이러저러한 논평을 붙이는 것이 부끄럽습니다만,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실제적인 것을 통해 소통해 보고자 해서 이런 소재들을 동원했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요. 개 눈에는 개만 보인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제가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실제적인 것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서 자꾸 이런 소재들이 나를 자극하여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합니다. 으으으으.... 역시 난 변태였어.
축하합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변태'임을 인정하신 것을.... 이에 이 소는 당당히 선언합니다. '소는 변태가 아니다아~~~~'... 아 참, 요즘 화두가 <소통>이기는 하지만, 소는 그게 싫습니다. 왜 세상 사람들은 소하고 자꾸 '통(通)'하려고 할까요....그 참....
... 환한 햇빛 아래로 서 있는 '소'는 변태스럽지 않지요. 이불 속의 두 남녀가 <트림>과 <방구>로 화음을 이루는 것이 변태스러운 것이지요... ㄲㄲ
힘들어도 서로 함께하고 이해 해줄 수 있는 이가 곁에 있다는 것이
절묘하게 힘든 상황을 반전 시키네요
속내는 참 따뜻한 시 인것 같네요. 감상 잘 했습니다. ^.^
그렇겠지요. 'ㅣ'는 혀의 끝에서 발음되고, 'ㅡ'는 혀의 뿌리에서 발음되니 'ㅣ'보다 'ㅡ'가 더 깊고 더 은은하지요. 그래서, '트림'보다 '트름'이 더 <터름>스러울것이지요. 냄새도 강하고~~~ 남들이 혐오하는 것을 대놓고, 그것도 강하게 표기하는 리강. 그러니까 '그로데스크'. 그 '그로데스크'를 좋아하는 자, 그러니까 '그로데스크' 한 것 중에서 다수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맞아요, '변태'... @@;
요즘 이분, 잔혹주의, 혹은 혐오주의에 빠지신 모양이네요. 그나마 이 글은 <트림>과 <방구>가 화음을 이루고 있으니 게중 덜 하네요@@ 그나마 이 소의 이데올로기가 '있는 것은 피하지 말고 그대로 보자'는 것이라 거부 반응이 없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큰 송아지가 이러더군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소리가 있다." 리강은 이럴 것 같네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냄새가 있다." 소리와 냄새로 세상을 감지하는 리강 님@@ 그나저나, 이 트림도 곱네요. 제가 워낙 불협화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