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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강독 후기 · 3_장우현

by 정현 posted Mar 26, 2018 Views 916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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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여성이라면,
-여성혐오라는 니체씨를 위한 작은 변명-

장우현

강독후기.jpg

  ‘미래철학의 서곡’이라는 부제를 단 「선악의 저편」 첫 문장은 “진리가 여성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떠한가?”로 시작한다. 왜 진리가 여성일까?  니체는 여성에 대한 독설로 유명하다.  여성에 대해서 맹렬하게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늘 경멸조로 말한다.  이 점을 두고 니체의 삶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투영해서 당연한 귀결로 바라보는 견해들이 많다.  그렇다면 니체는 철학적 해석 보다 전기적 경험을 토대로 한 여성을 진리와 비교한 것일까? 고병권은 「다이너마이트 니체」에서 여성에 대한 진리 비유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니체가 진리를 긍정적으로 볼 리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는 문제로 시작해서 정리해 나가다 보면 진리와 여성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시작해 본다.
 
  “진리가 여성이라고 가정하다면, 어떠한가? 모든 철학자가 독단주의자였을 경우, 그들이 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혐의는 근거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으로 니체는 서문을 연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근자감으로 똘똘 뭉쳐 달려가는 남자가 과연 호감을 살 것인가? 물론 대답은 No! 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진리를 연구하는 철학자들의 고상하면서도 화려해 보이고 마치 최종의 것인 양 하는 독단론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묻고 있다. 물론 이것의 대답 역시 No! 이여야 한다.  하지만 통속적인 미신처럼 일반화 되어 버린 이 독단론이 여전히 존재 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그럼 어떻게 여자에게 다가갈 것인가? 어떻게 진리를 연구할 것인가?  

  “물자체 속에 근원이 있어야한다는 전형적인 편견으로 형이상학자들의 믿음에서 그들의 지식을 격식을 갖추어 ‘진리’라고 명명하게 되는 그 무엇”이라고 니체는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결국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으며 본질을 알 수도 없는 불분명한 대상을 향해 형이상학자들은 분명한 어조와 확고한 자세로 임하는 모순됨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니체는 진리를 파악되지 않고 전형적인 편견으로만 바라본다고 말한다.  

  니체가 진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바라보는 글을 「선악의 저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진리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 혹은 긍정을 밝히지 않는다.  단지 진리를 찾는 그 방식,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렇게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많은 철학자들 중에 가장 으뜸으로 씹어댔던 플라톤에게도 그를 틀렸다고 오류라고 비판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의 태도, 그가 저지른 독단에 대해서 꼬집는 것이고 그의 관점만을 떠받드는 숭배자들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모두 자신의 견해를 냉철하고 순수하며 신적으로 초연한 변증법의 자기 전개에 의해 발견하고 획득한 것처럼 군다.”  

  그럼, 니체는 진리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대체 왜 절대적으로 진리만이 있어야만 합니까?”,”삶의 조건으로 비진리를 용인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위험한 방식으로 습관화된 가치 감정에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순교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진리를 위하여 수난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진리가 가상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은 단지 도덕적인 선입견일 뿐이다. 이것은 심지어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가장 잘못 증명된 가정이기도 하다. 관점적 평가와 가상성에 바탕을 두지 않는 한, 삶이란 것은 전혀 존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진리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정의 내리거나 한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없다. 단지, 왜 진리만을 쫓아서 어떤 숭고한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의심해 보지 않는지를 묻고 있다.  다채로운 방식과 스타일로 바라보고 탐구하는 정신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이다. 

  “한 정신의 강함은 그 정신이 곧 얼마나 진리를 견뎌내느냐에 따라,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어느 정도까지 정신이 진리를 희석시키고 은폐하며 감미롭게 만들고 둔화시키고 위조할 필요가 있느냐에 따라 측정된다.” “결국 진리는 여성이다. 우리는 진리에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또한, 니체는 진리를 무차별하게 난도질해서 물리쳐야하는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도망치듯이 포섭당하지 않으려 지독한 가면을 쓰거나 스스로 고독을 벗 삼아 피하기도 해야 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니체는 수많은 아포리즘과 질문, 답변과 명령, 청유까지 동원해서 인간에게 처해있는 현실에서 “넘어가기”를 이야기 한다.

  "인간은 덩굴 참나무를 오랫동안 자주 휘감으면서 마침내 그것에 의지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자유로운 햇빛 속에서 그 화관을 펼치고 자신의 행복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자바섬에 있는 더 햇빛을 갈구하는 덩굴식물!“ 그렇다!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의지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 인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의 거부, 부정이 아닌 전도를, 초극을 말하고 있다. 

  여성이 진리라는 은유로 돌아가자. 여성에 독단적으로 접근하는 철학자들은 그녀의 사랑을 얻는데 실패한 자들이다.  그 독단적 철학자들은 그녀를 얻었고 본질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 여성으로서의 진리는 파악되지도 않았으며 어떤 본질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긴 세월동안 철학자들이 이론이나 개념들을 통해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지금 이 현실적 세계, 형이상학적인 진리와는 닿아있지 않다.   결국, 진리로서 여성이 상징하는 삶 자체가 형이상학적 전통 철학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니체가 「선악의 저편」 마지막에 "나는 디오니소스 신의 마지막 제자이자 정통한 자이다.“ 라고 소개한다.  그 신은 탐구, 발견, 성실성과 진실성, 지혜에 대한 사랑 따위는 모르는 ”벌거벗은 모습을 감출 이유“가 없으며 ”어떤 미궁에서도 여전히 가야할 올바른 길을 찾아낸, 유쾌하고 용기 있고 창의적인 동물“로서의 인간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신은 아리아드네를 사랑한다. 독단의 철학자가 진리를 사랑하는데 실패했다면 디오니소스신은 진리를 사랑하는데 성공할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 독단의 철학자가 진리를 포섭해서 이뤄낸 결과가 수많은 규범, 규칙, 율법, 상식이라면 디오니소스 신이 진리를 포섭한다면 ”좀더 강하고, 악하고, 깊이 있고, 또한 아름답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여성이라는 다원적이고 가변적이며 디오니소스만이 범접할 수 있는 존재는 독단적 철학의 거미줄로는 어림도 없다는 결과이며 그리 단순한 존재로의 여성이 아니라는 결과다.  그러므로 그 단순하고 무지한 상태의 사회 속에서 여성을 ‘계몽’으로 혹은 ‘독립’의 방식으로 ‘학문’의 이름으로 포섭하고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진리로서의 여성은 삶이 가진 그 자체, 온전히 그 자체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글의 서두에 “니체가 진리를 긍정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비틀어 보고 거슬러 보고 넘어서기를 원하는 니체의 글을 읽다가 빠지는 오류중의 하나일 것이다.  심지어 「선악의 저편」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도 부정 , 긍정의 이분법적 생각의 틀에서 나오지 못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니체씨를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진리 그 자체를 두고 진리를 향해 가는 방법을 지적하고 연구하며 말하고 있던 그를 오해했다.  여성문제 역시 같은 맥락으로 바라본다면 여성 자체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디오니소스적인 여성이란 결국 그 삶 자체, 때로는 겉으로 치장하기를 좋아하고 화려한 수사로 물들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 동일하지 않을 것을 받아들여 출산을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여성을 통해 이중적인 삶의 모습.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삶을 이야기 한 것은 아닌지.


3년만에 다시 만나 니체씨의 오해를 푼 Coooo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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