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을 걸었습니다. 정동은 1883년 미국공사관을시작으로 외국 공관들이 차례로 들어서고, 서양 선교사들이 대거 몰려 살면서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위한 열강들의 격전장이 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정동교회,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있고, 1887년 미국 북감리교에서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병원 보구여관(普求女館) 터, 독일영사관 터, 1896년 4월 7일 창간되어 1899년 12월 4일 폐간될 때까지 발행되었던 독립신문사 터(독일영사관 내), 1886년 정부에서 세운 근대식 교육기관 육영공원(育英公院) 터 등이 이 길 위에 있습니다. 1905년, 이 길 위에 있는 덕수궁 중명전(德壽宮 重明殿)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2017년, 이 길 위에서 자칭 '보수'들이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다시 흔들고 있습니다. 이 길, 상흔이 가득합니다.
식민지 열강들의 격전장, 정동길을 걷다
by 이우 posted Mar 24, 2017 Views 1429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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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Sep 202315:22No Image
詩가 있었구나
詩가 있었구나 이우 詩가 있었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도 희망이 없어도 논리가 없고 맞춤법에 맞지 않아도 아, 으, 어으, 우어 소리칠 수 있는 詩가 있었구나 -
27Sep 202315:07No Image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이우 지나가는 바람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 나무를 흔들고 꽂을 꺽고 새들을 울렸지만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니 너무 탓하지 마시라 목재가 바이올린이 된다고 해서 구리가 나팔로 깨어났다고 해서 목재와 구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숲 ... -
26Sep 202321:05No Image
다시 길 안에서
다시 길 안에서 이우 꿈 꾸던 미래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을 것이다. 오지 않을 것을 향하여 걸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건배, 이기지 못할 싸움을 하는 쿠르드족 전사들을 위하여 건배, 비트에 숨은 게릴라들을 위하여 건배, 구찌에 숨은 여전사들을 위하여 건... -
25Sep 202311:57No Image
백양나무 숲에서
백양나무 숲에서 이우 백양나무에 걸었던 내 언어는 초라하였다. 미숙했던 사랑이, 설익은 혁명이, 연약했던 온정이, 쓸 곳 없는 슬픔이, 이유를 찾지 못한 절망이 흔들렸다. 가끔 바람에 날려 가기도 하였는데, 여기 저기 솜뭉치로 엉켜 흉물이 되었다. 백양... -
22Sep 202311:39No Image
느릅나무 옆 25시 고시원
느릅나무 옆 25시 고시원 이우 초가을비에 느릅나무 잎들이 쏟아져 내리고, 몸집이 산처럼 커도 잔비에 쏟아져 내리고, 느닷없이 206호 곰만한 사람이 꺼이꺼이 소리내어 울고, 창문 있는 방으로 옮기겠다고 막일을 나갔던 205호 사람도 그냥 서러워져서 입을 ... -
21Sep 202321:04No Image
폭설
폭설 이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그만 둔 것은 그해 겨울이었다. 눈 쏟아져 몸들을 포개는 순백의 겨울산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산 도로는 열렸지만 우리는 나아가지 않고 숨기로 했다. 창문 너머 눈 쏟아지는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다 보았다. 돌아가야 한다... -
19Sep 202311:27No Image
성당못, 그 여름의 끝
성당못, 그 여름의 끝 이우 이성복을 읽다가, 그 여름의 끝으로 가다가, 그 말(語)에 유혹되어, 88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더란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 한참을 지나, 말들에게서 풀려났지만 돌아올 차비가 없던 그때란다. 인심 좋은 서점 주인에게 모... -
16Sep 202318:27No Image
길 위에서
길 위에서 이우 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짐승들이 다녔던 길이라 길은 길이지만, 걷다보면 사라지기도 하고 이 길 아닌가 하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길이 저 길 같고 수도 없이 다닌 길들도 낯섭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황무지랍니다. 초원도 아니고 황무지... -
15Sep 202316:48No Image
수성동 계곡
수성동 계곡 이우 머물다 갑니다. 때죽나무 아래 앉아 그대를 보고 갑니다. 하숙하던 윤동주가 서성이던 계곡에는 예나 지금이나 물잠자리 한 마리가 수면을 걷어 차고 달아납니다. 참나무 열매들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올 여름 무당거미가 집을 짓고 있었지요... -
12Sep 202304:28No Image
교정(矯正)
교정(矯正) 이우 자주 '밤 새다'를 '밤 세다'로 잘못 쓰고 고친다. 오늘도 밤을 세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번째 밤이다. 기다림은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