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잘 가라 2020년이여, 걱정 말고 잘 가거라.

by 이우 posted Dec 30, 2020 Views 4123 Repli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릴때사진_900.jpg

  고향에 내려와 새벽에 잠 깼다. 책을 열었는데, 이렇게 쓰여 있다.

  "세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세계는 기표작용하기 시작했고, 기의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주어졌다. 당신 부인이 당신을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늘 아침 수위가 당신에게 행운을 빌면서 세무서에서 온 편지를 전해주었다. 그 다음 당신은 개똥을 밟았다. 당신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당신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항상 기표니까. 기호를 참조하고 있는 기호는 이상한 무력함과 불확실함의 급습을 받지만 사슬을 구성하는 기표는 강력하다. 편집증 환자는 탈영토화된 기호의 무력함을 나눠가지며, 탈영토화된 기호는 미끄러지는 대기 속 사방에서 그를 공습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대기 안으로 퍼져나가는 그물망의 주인처럼, 성난 왕 같은 기분으로 기표의 초권력에 더욱더 다가간다. 이는 편집증적 독재 체제이다. 그들은 나를 공격하고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들을 앞서간다. 나는 항상 알고 있다. 나는 무력할 때조차 권력을 갖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갖게 될거야.'
  이런 체제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끝이 나지 않는다. 이는 그걸 위해 만들어졌다. 이 체제는 무한한 빚의 비극적 체제이며, 모든 사람은 채무자이자 채권자이다. 하나의 기호는 자신이 옮겨가는 다른 기호를 참조하며, 이 기호는 도 다른 기호들로 가기 위해 기호에서 기호로 나른다. '순환해서 회귀해도 좋으니까….' 기호들은 단지 무한한 그물망들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호계들의 그물망은 무함히 순환적이다. 언표는 대상보다 오래 살아 남고, 이름은 이름의 소유자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기호는 다른 기호들로 옮겨 가거나 잠시 다른 기호들에 의해 보존되거나 하면서 자신이 의미하는 기의나 자신이 지칭하는 사태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기호는 사슬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상태, 새로운 기의를 투여해 거기에서 추출되어 나오기 위해, 짐승이나 죽은 사람처럼 튀어오른다. 영원회귀의 인상을 품긴다. 거닐기를 좋아하고 떠다니는 언표들, 멈춰 서 있는 이름들, 결국 회귀하겠지만 일단은 사슬을 따라 앞으로 돌출되기를 기호들의 체계가 있다. 탈영토화된 기호의 자기 잉여로서의 기표여, 장례식장 같은 공포 가득한 세계여."

    - 『천 개의 고원 -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 새물결 · 2001년 · 원제 : 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1980년), <5. 기원전 587년 및 서기 70년-몇 가지 기호 체제에 대하여> p.219~220

  "대상보다 오래 살아남고", "소유자보다 오래 살아남는" 기표, 2020년이여,  잘 가라. 잘 가거라, 걱정 말아라. "새로운 상태, 새로운 기의를 투여해, 추출되어 나오기 위해", 새롭게 "앞으로 돌출"하는 2021년이 있으니까. 2020년이여 잘 가라, 걱정 말고 잘 가거라.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라.









  1. 08
    Nov 2023
    08:25
    No Image

    흔들리는 갈대

    흔들리는 갈대 이우 흔들려야 한다 갈대가 춤을 춘다 저 위대한 파스칼이 흔들린다 피안을 꿈꾸었지만 틀렸다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 우아한 갈대숲은 뭔 일인가 백발을 흔들며 불꽃놀이처럼 쏘아올려 질 때 너는 태어났단다.* 아비는 달리고* 갈대는 흔들린다 ...
    By이우 Reply0 Views81
    Read More
  2. 29
    Oct 2023
    15:07
    No Image

    자전거를 타며

    자전거를 타며 이우 힘이 걸리고 근육이 패창하고 당겼다가 밀고 앉았다가 일어서고 내렸다가 올리고 올렸다가 내리고 밟았다가 풀고 풀었다가 밟고 들었다가 놓고 놓았다가 다시 들고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안으로 당기고 밖으로 밀고...
    By이우 Reply0 Views50
    Read More
  3. 22
    Oct 2023
    19:29
    No Image

    고도를,

    고도를, 이우 기다린다 목재상인지 문지기인지 토지측량사인지 모른다 철수이거나 영희이며 알프레드이거나 프라도이며 존이거나 메어리일 것이다 그 또는 그녀이다 기다리며 숲에 앉았다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산책을 했지만 오지 않는다. 오, 그래요? 그럼 ...
    By이우 Reply0 Views58
    Read More
  4. 18
    Oct 2023
    11:27
    No Image

    철학이,

    철학이, 이우 텅 비어 있음이란 말은 옳다. 아무것도 아닌(rien) 대상 없는 개념들 속에서, 존재 또는 존재들 속에서, 오인된 것을 승인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목적 없이 달리는 기차를 올라 탄다는 당신*의 말은 맞다. 거슬러 오르...
    By이우 Reply0 Views64
    Read More
  5. 09
    Oct 2023
    11:25
    No Image

    가갸거겨

    가갸거겨 이우 어떤 새는 가갸가갸 노래하고, 어떤 새는 가가가가 울고, 어떤 새는 갸갸겨겨하고 운다. 어떤 새는 가갹갹각 부리를 부딪히며 자음 받침을 붙히고, 빠른 템포로 닥다닥닥 밀어를 속삭인다. 어떤 새는 벤치 옆에 기거하며 구구구구 낮은 소리로 ...
    By이우 Reply0 Views67
    Read More
  6. 04
    Oct 2023
    15:06
    No Image

    북회귀선·1

    북회귀선·1 이우 북위 23도 26분 16초. 유혹은 아름답지. 떠날 것을 알지만 아름답지. 유혹을 이겨낼 기묘한 수가 있다면 모두를 사랑하는 거야. "모두? 재수 없어." 어찌 되었던 그녀들은 떠나갈 거야. 뭐 어때, 유혹은 아름답고 바람은 습하고 여름은 길어. ...
    By이우 Reply0 Views56
    Read More
  7. 01
    Oct 2023
    11:36
    No Image

    헤이, 휴먼

    헤이, 휴먼 이우 저기 좀 봐. 응큼한 늑대가 예쁜 여우의 손을 잡고 늑대를 보고 있네. 늑대에게 눈을 흘기던 예쁜 여우가 여우를 보고 있네. 곰이 곰을 보면서 우와 감탄을 쏟네. 긴꼬리 머리를 한 꿩이 긴꼬리꿩을 보면서 예쁘다 하네. 원앙 한 쌍이 손을 잡...
    By이우 Reply0 Views57
    Read More
  8. 30
    Sep 2023
    13:03
    No Image

    굴밤 나무 아래

    굴밤 나무 아래 이우 매호 돌산에 올라 굴밤을 줍네.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놀다 가라, 굴밤비 쏟아지네. 모자 쓴 굴밤, 모자 벗은 굴밤, 가을 장마에 싹 올리는 굴밤, 낙엽 속에 몸을 숨긴 굴밤, 형제처럼 모여 앉은 굴밤. 둥글거나 길쭉한 굴밤들...
    By이우 Reply0 Views52
    Read More
  9. 30
    Sep 2023
    13:02
    No Image

    황진이

    황진이 이우 맥주 양주 황진이의 초라한 쪽문은 닫혀 있다. 21세기에 이런 곳이 있느냐 놀라겠지만, 있다. 닫혀 있을 뿐 가끔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재일교포나 미군들을 상대하다가, 용주골로 갔다가, 역전으로 밀려났다가, 나이 들어 정착한 황...
    By이우 Reply0 Views60
    Read More
  10. 28
    Sep 2023
    00:35
    No Image

    구기자 익어갈 때

    구기자 익어갈 때 이우 붉은 열매들이 매달릴 때, 미숙한 내 사랑의 언어들이 줄 지어 매달릴 때, 그 떫고 신 열매들을 그대에게로 보냈을 때, 객차에 몸을 싣고 내려오다가 내릴 곳을 지나쳤노라, 서툰 연서를 보낼 때,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을...
    By이우 Reply0 Views4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6 Next
/ 46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