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큐리언들에게 : 비판이 없는 역사는 해석되지 않는다

by 이우 posted Mar 24, 2022 Views 1313 Repli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비판이 없는 역사는 해석되지 않는다
 ―에피큐리언들에게

   “(...)부르주아 출신 문인이라면 무책임해지고 싶은 욕망이 무엇인지 안다. 파리 코뮌에 뒤따른 진압의 책임을 나는 개인적으로 플로베르에게 지운다. 왜냐하면 그는 진압을 막기 위해 글 한 줄 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그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칼라스 재판은 볼테르가 상관할 일이었나? 드레퓌스 사건은 졸라가 상관할 일이었나? 『레 탕 모데른』을 내는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박자를 놓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이 우리의 의도다. 『레 탕 모데른』은 주저 없이 어느 한쪽 편을 들 것이다.(...)”

  - 『레 탕 모데른(Les Temps modernes)』, 창간호(1945년 8월)에 실린 사르트르의 창간사

  1945년 가을, 프랑스 파리는 전쟁 이전보다 지저분했지만 그래도 다시 불을 밝혔다. 시몬드 보부아르의의 표현대로 나치를 물리친 레지스탕스 “동지에의 대잔치”가 이어졌고 친(親)나치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 졌다. 식량배급도 이어졌다. 한 달 배급량이 1인당 1리터로 줄어들면서 들뜬 자유와 불같은 정치토론이 와인을 대신해 밤의 유흥을 북돋웠다. 저렴한 육류와 가금류가 다시 정육장에 등장했지만 전쟁 전보다 가격이 세 배여서 신흥 부유층만 사 먹을 수 있었다. 시몬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친구들과 함께『레 탕 모데른(Les Temps modernes)』을 창간했다. 『레 탕 모데른』은 논조가 창의적이고 스타일은 단호했으며 분석은 호전적이었다. 『레 탕 모데른』은 독자를 자극하고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새로운 발상의 실험실이었으며 새로운 사상을 멀리, 널리 전파할 확성기였다.*

  1945년 가을,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에서 벗어났지만 우리는 폐허였다. 약탈로 사람들은 보릿고개를 넘어가야 했고 친일 재판정이 열렸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문인들은 참여와 순수로 갈라졌으며 여성들은 몸을 팔아야 했다. 신탁이 이어졌고 임시정부는 돌아오지 못했으며 땅은 친일파나 혹은 그 후손들에게 다시 돌아갔다. 분노한 사람들은 북쪽으로 옮겨 갔다. 5년 후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전쟁은 모든 사람을 알몸으로 만들어 놓았다. 전염병이 창궐해 DDT를 온몸에 쏟아 부어야 했다. 자유보다는 이념의 억압이 어깨를 짓눌렀으며 야간 통행은 금지되었다. 사유는 끊어지고 식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사유나 사상, 역사 이런 것들은 뒤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혹은, 그렇게 생각했다. 빈곤은 사람들을 앞으로만 내몰았다. 혹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빴다. 서로 다른 층위의 이념이, 서로 다른 위상의 노년과 장년과 청년이, 서로 다른 계층인 빈부가, 고용주와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다른 신체를 가진 남성과 여성이, 사물과 개념이 뒤얽혔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비판이 없는 역사는 해석되지 않는다.

  에피큐리언은 논조가 창의적일 것이며 스타일은 단호할 것이며 분석은 호전적일 것이다. 자극하고 불편하게 만들겠지만 새로운 발상의 실험실이 될 것이다. 이념, 노년과 장년과 청년, 빈부, 고용주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개인과 집단의 문제. 그건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칼라스 재판은 볼테르가 상관할 일이었나? 드레퓌스 사건은 졸라가 상관할 일이었나?”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박자를 놓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에피큐리언은 주저 없이 어느 한쪽 편을 들 것이다.

2019년 어느날 사직동에서
이우

  ...................................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아녜스 푸아리에 ‧ 마티 ‧ 2019년 ‧ 원제 : Left Bank: Art, Passion, and the Rebirth of Paris 1940-50) p.158~16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