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과 경제 논리

by 이우 posted Jul 28, 2020 Views 468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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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에 '금강송'이 있다면 충청남도에는 안면송(安眠松)이 있다. '안면송'은 예부터 강원도 금강송과 더불어 최고의 목재로 꼽혔다. 모양이 좋고 속이 단단해 주로 궁궐·왕실 건축, 선박제조용 목재로 사용되었다. 재질이 우수하여 고려시대부터 국가에서 특별 관리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안면송 군락지를 조정의 명령 없이는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한 산)으로 지정해 특별 관리하면서 보존되어 왔다.
 
  천년 동안 국유림으로 보존되어 왔던 안면도 소나무가 수난을 당한 것은 일제 강점기였다. 항공유로 사용하기 위하여 송진을 채취하고 식민재정을 감당하기 위하여 수많은 소나무가 베어졌다. 조선총독부는 국유림이던 안면도를 아소상점(麻生商店)에 매각한다. 바로 현재 일본의 재무상 아소 다로의 증조부 아소 다키치가 세운 회사다. 아소상점은 안면도에 안면도임업소를 설치해 안면도 소나무를 수탈했다. 아소상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안면도 사람들을 일본 등 각지로 보내 강제노동을 시키기까지 했다. 
 
  다키치로부터 아소상점 기업을 물러 받은 아소의 아버지인 아소 가기치(麻生賀吉,1980년 사망)는 1934년 주식회사 아소상점 및 산업시멘트철도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 후 1941년 주식회사 아소상점은 아소광업으로 개칭되었다. 이 시기에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한국인들이 강제로 연행되어 아소탄광과 아소시멘트에서 노역에 시달리다가 희생되었다. 이들의 가계로부터 기업을 물러 받은 아소는 1973년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흔히 일제의 수탈이라고 하면 총칼로 위협해 뺏아 갔다고 상상하지만 그렇지 않다. 회사를 만들고 매매, 혹은 거래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 수탈이다. 총칼로 위협해 강제노역을 시켰다고 상상하지만 많은 대부분 '취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다. 조심하라.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으면 수탈매매거래로 오해할 수 있다. 조심하라.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으면, 그러니까 사회 구조 · 경제 구조를 보지 못하면 수탈을 위한 강제노역장을 직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