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독 후기] 발터 벤야민, 과거를 길어올려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다_정현

by 정현 posted Jul 13, 2018 Views 863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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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1), 과거를 길어올려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다


정현

이미지_벤야민.jpg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이미 ‘가까운 과거’된 그를, ‘침잠(沈潛)’한 그를, 길어 올려 기억하고자 한다. 사유의 속도를 앞지르는 시간과 숨 가쁜 일상에서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기 위해, 정지(停止)속에서 그를 불러낸다.

  근대와 현대 사이, 객관과 주관 사이, 관념과 유물 사이, 긍정과 부정 사이, 이성과 감성 사이, 인식과 실천 사이, 역사와 현재 사이, 도래하는 파시즘의 불운한 시대를 응시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통스러워했을 발터 벤야민, 거리의 산책자, 벤야민은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변증법적 이미지’2)라는 개념으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운다. 

  과거에 지나간 것이 현재에 빛을 비추거나, 현재가 과거에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상(像)이라는 것은 그 속에서 이미 흘러간 어떤 것이 지금과 만나 섬광처럼 성좌구조를 이루는 무엇이다. 달리 말해 상이란 정지 상태의 변증법이다. 왜냐하면 현재가 과거와 맺는 관계는 순전히 시간적인 관계인데 반해 과거가 지금과 맺는 관계는 변증법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즉 후자의 관계는 시간적인 성격이 아니라 이미지적 성격을 띠는 관계이다. 변증법적 상들만이 진정으로 역사적인 상들이고, 다시 말해 태고의 상들이 아니다. 읽힌 상, 곧 인식 가능성의 현재 속의 상에는, 모든 읽기의 행위에 동반하는, 위기의 순간, 위험의 순간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N 3, 1=V, 578)

  벤야민은 역사철학, 언어철학, 문예비평, 시학적 실천텍스트에서 변증법적 사유 방식으로 ‘위기의 순간, 위험의 순간’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기”를 요구한다. 또한, 근대 역사관 속에서 ‘기억’은 주관적이고, 정확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고, 과학적 역사관과 사실관계 속에서만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역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기억’을 지금, 이 순간, 현재로 당겨오는 기억의 문화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예술을 꼽는다. 

  파울 클레(Paul Klee)3)가 그린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자기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또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이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p.339

  벤야민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에 대한 비평에서와 같이, 과거의 침잠해 있는 잔해더미에서 벤야민의 사유를 길어 올려 현재로 위치해 보자. ‘범속한 각성’을 통해,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또 날개는 펼쳐져 있’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으로 큰 얼굴에 비해 아주 작은 날개로 날아오를 수도,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불운한 시대의 벤야민이 처한 상황이 ‘새로운 천사’와 닮아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비판적 인식론으로 역사적 유물론자의 중요한 과제인 ‘현재성’을 주장했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으로’ 인해 시대에 맞서 정면으로 맞서 날아오르기에는 벤야민의 날개는 너무 작았는지 모른다. 유대인이 박해받는 엄혹한 상황에서 현재를 뚫고 날아 오르기에는 유대교인이었던 그의 감성으로는 힘겨웠으리라. 바로 이 지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개념들과 경계인으로 서 있는 그에게 끌리는 부분이다.  

  벤야민은 철학의 인식론적 범주를 넘어 실천론으로 “구원자로서의 정신의 깨어 있음”과 “기억과 구원 사이의 신학적 연관”을 기획하고,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문”을 마련한다. 구원은 고통을 전제로 한다. 세계를 고통으로 인식할 때, 우리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다. 벤야민에게는 구원이 찌꺼기처럼 남아 있다. 
  현상이 아니라 해석의 문제다. 변증법적 구조를 와해한 철학자 베르그손4)은 세계를 약동하는 삶(엘랑비탈)으로 인식하고, 그의 영향을 받은 현대철학자 들뢰즈5)는 차이의 반복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생성하는 긍정의 철학에 닿는다. 변증법적 구조는 긍정과 부정이 같은 지층에서 일어난다. 변증법적 구조를 벗어나 동일성에서 빠져 나와 차이를 긍정할 때, 우리는 같은 지층이 아닌 새로운 지층을 만들 수 있다. 긍정의 부정이 아닌, 긍정의 긍정을 하는 인식은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문”을 마련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세계는 늘 약동하고, 저마다의 차이로 존재하므로. 

  이제 벤야민과 결별하기로 한다. 기억 속으로 침잠하는 ‘거리의 산책자’, 발터 벤야민.


  註) .....................

  1)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1892년 ~ 1940년) :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게르숌 숄렘의 유대교 신비주의와 베르톨트 브레히트로부터 마르크시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또한 비판이론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도 관련이 있다.

  2)변증법적 이미지 : 벤야민이 고안한 표현법, 이미지계에 변증법적 구조가 있다고 생각.

  3)파울 클레(Paul Klee, 1879년~1940년) : 스위스의 추상화가, 매우 독창적인 회화 언어로 사물의 본질적이고 정신적인 의미를 전하려고 한 천재적인 추상화가로, 독자적으로 활동했지만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들은 공상적인 상형문자와 자유로운 선묘로 말미암아 때때로 아동 미술을 연상하게 한다.

  4)앙리 베르그손(Henri(-Louis) Bergson, 1859년~1941년) :프랑스의 철학자. 1927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과정철학이라 부르는 철학사조를 최초로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정지보다 운동·변화·진화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으며 학문적·대중적 호소력을 겸비한 문체의 대가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창조적 진화>, 〈형이상학 개론〉 등이 있다. 

  5)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년~1995년) : 프랑스의 철학자, 1960년대 초부터 1995년 사망할 때까지, 철학, 문학, 영화, 예술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저작들을 썼다. 펠릭스 과타리(Félix Guattari)와 함께 쓴《안티-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분열증》(L'Anti-Œdipe -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1972년), 《천 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리》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