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상

by 아우나 posted Aug 10, 2016 Views 12977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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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01.jpg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회사의 갈등이 일단락 되고,  충무로역 근처에 있는 작은 규모의 사무실을 얻어 이전하기로 했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지내던 구성원들인지라,   서로의 숨소리와 체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좁은 공간은 한동안 모두에게 놀라움이자(?)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나는 토요일 당직을 이용하여 부랴부랴 개인짐을 정리하였다. 7일을 쉬지 않고 일했던 터라 피곤하기도 했지만, 우중중한 날씨도 계속 눈에 밟혔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저녁에 큰 비가 내릴거라 하였으니 퇴근하자 마자 집으로 가는게 맞을텐데, 곧장 향하기에는 뭔가 허전한 마음이 맴돌았다. 마침 각자의 일정으로 주말 아침에 뿔뿔이 흩어지고,  집에 있는 단 한 사람은(!) 둘째 동생임이 기억나 전화를 걸었다. 충무로역으로 오라고 급 벙개를 하였고, 동생도 흔쾌히 수락하였다.


  충무로 골목길마다 구경할 거리가 많은데,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곳들. 동생이랑 두손 가득 짐을 들고도 참 잘 걸어다녔다. 그렇게 걷다가, 생면을 무한리필 해주는 퓨전 짬뽕집에 들어가서 배부르게 먹고,  자연스럽게 동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생에게는 모든게 서프라이즈인 상태다. 20대 후반, 나름 겪을 거 다 겪어본(?!) 언니는 동생의 모든 게 안쓰럽고, 또 대견하기도 하다. 대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학자금이라는 빚이 생기고, 그 빚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취업을 해야 하는데, 취업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뚫기만큼 어려운 상황. 눈을 낮추고 낮춰 취업을 한들, 본인이 공부한 바를 세상에 펼처본다는 것은 정말 꿈 같은 상황.


  30~40대는 부족한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를 위해 식당에서 알바를 하고, 50~60대는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지 못해 주유소에서 알바를 하는 상황. 그리고 너 같은 사람은 길거리에 널리고 널렸다고 소리치며, 기계 부품갈듯 사람을 내보내고 들이고를 반복하는 사장들.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론 경제 활동을 해야 하지만, 생활에 매일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 주소는 씁쓸하기만 하다.


  동생은 아직 자기가 무얼 하고픈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했다. 밥벌이를 하되,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할 수 있는 일. 돈을 벌되, 내가 슬퍼하지 않고 너도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일. 돌이켜보면, 내가 흘렸던 눈물의 반 이상은, 흘리지 않아도 됐던 것들. '대한민국'이라는 배치물 속에서 내가 흘렸던 땀과 눈물들. 그리고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그 배치물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던 말과 행동들. 달콤새콤한 짬뽕과 고소한 피자는 그래서 더 맛있는 지도 모른다. 희노애락 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이 우리 이 식탁위에서 완성되니깐. '희(喜)','락(樂)','애(愛)'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의 삶에서, 유일하게 이 세가지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음식이니깐.


  어쩌다 동생과 시작된 주말의 데이트는, 대한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서울역을 경유하여 집으로 한 번에 가는  버스 안에서 텅빈 시내를 구경한다. 허공에 매달린 조그마한 TV는  버스 기사 만큼이나 열심히 제 일을 해낸다. 돈을 생각하면 시작하지 못했을 해외여행에서 오히려 돈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말하는 TV 속 그대.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현지음식을 포기하고 시작했던 여행이라 더 아쉬었다며, 다음에는 돈을 넉넉히 준비하여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는 TV 속 그녀. 타지에서 움직일수록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은 돈이 었다고 말하는 TV 속 우리들. 악마의 맷돌이 멈추지 않는 충무로의 밤은 그렇게, 오늘도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