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란 결국 과거가 되어버리는 점(點)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그러한 점을 죽 늘어놓은 직선처럼 상상한다. 어떠한 현재도 과거와 함께 있으며 과거와 동시에 있기에, 사실 현재는 단순히 현재로서 생동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란 이미 언제나 현재와 과거의 복합체이고 결정체이다. ...1)?
? 연극을 만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깊이 공부했다면 ‘내용도 없고, 재미도 없는’ 연극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내가 연극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하며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로 향했다. ?
↑청소년 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 독서토론
? 연극 관람에 이어, 청소년 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으로 독서토론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주인공 온조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 일을 함으로써 금전적인 도움과 정신적 보람을 얻고자 인터넷 카페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연다. 온조의 닉네임은 ‘크로노스’, 흐르는 시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 옛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셋으로 구분했다. ‘크로노스(Cronus)’와 ‘카이로스(Kairos)’ 그리고 ‘아이온(Aion)’이다. 크로노스가 1초 1분 1시간 1주일처럼 기계로 측정할 수 있는 물리적·객관적 시간을 말하며 이 시간은 흘러가는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사람이 어떻게 관리, 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인 시간으로, 도래하는 시간이다. 아이온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만날 때 생성하는 시간으로 불멸의 시간, 혹은 영원의 시간(현재)이다. ...
? ‘시간을 파는 상점’의 첫 의뢰인 ‘네곁에’는 PDP 분실 사건을 의뢰하며 훔친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이어, 자신의 할아버지와 맛있게 식사를 해달라는 의뢰, 들꽃반 유치원 아이들에게 지정한 우체통에 편지를 배달해달라는 의뢰, 친구가 되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온조는 자신의 시간을 팔기 시작한다.?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의 고민을 읽고 토론하면서 자신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다.?
? “웹 소설을 읽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부족해요.”?“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예요.”?“외로워요”
? 인터넷 카페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 ‘크로노스(온조)’는 ‘아이린’에게 이렇게 말한다.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몸에 켜켜이 쌓이는 건지도 몰라요. (...) 그렇다면 미래의 시간도 불러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일테면 내가 스무 살이 된다면 난 반드시 무얼 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행동하면 미래의 시간도 현재로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요?”?우리는 책 속의 발췌된 본문 내용과 연결해서 현재의 문제를 짚어보며,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 첫 의뢰인의 PDP 분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온조’는 일주일 째 사라진 ‘그 아이’를 찾아 친구들과 함께 바람의 언덕으로 향한다. ‘언덕 위에 나무 한 그루 허용하지 않’는 바람의 언덕에서 ‘온조’와 ‘정이현’ ‘난주’ ‘그 아이’ 는 서 있기 벅찰 정도로 흔들린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참고 있던 웃음이 터지자 눈물이 날 정도로 한바탕 웃어 제낀다. ?
? ... 한 걸음 한 걸음이 힘에 겨웠다. 그때 그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그 아이는 양쪽으로 정이현과 온조의 손을 나눠 잡았다. 난주는 정이현의 손을 잡았다. 혼자일 때와는 다르게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마치 바람과 싸우는 것 같았다. (...) 바람이 더 세게 불어 눈을 뜰 수 없을 때는 넷이 모여 잠시 등으로 바람을 막아주기도 했다. 그러다 바람이 더 세차게 몰아치면 온조의 어깨가 그 아이의 어깨에 맞닿기도 했고 정이현의 어깨가 난주의 어깨에 맞닿기도 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시간을 파는 상점>(p.211) 중에서-
? 흐르는 시간 ‘크로노스(Cronus)’가 도래하는 시간 ‘카이로스(Kairos)’를 만날 때 불멸의 시간 ‘아이온(Aion)’이 생긴다. 바람의 언덕에서 ‘온조’(크로노스)는 친구(카이로스)들과 함께 연대하며 불멸의 시간(아이온)을 만든다.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들은 온 몸에 켜켜이 쌓여 기억되고 ‘미래의 시간도 현재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란 흐르는 것이지만, 흘러간 시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상호 침투와 상호 연쇄, 우리가 보낸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존재한다.”?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고 토론하면서 우리는 비슷한 고민으로, 또는 서로 다른 생각으로 마주치고 부딪혔다. 수지, 동현, 지영이가 서로의 마주침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함께 아이온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기를~^^
註) ..........
1) 우노 구나이치, 『들뢰즈, 유동의 철학』,이정우·김동선 옮김,그린비,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