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 얼굴은 어떤가? 책임을 다하겠다며 굳게 다문 입, 다가오지 말라며 부라린 큰 눈, 고통도 슬픔도 눈물도 모르겠다는 냉담한 얼굴, 환멸도 고통도 감내하는 고귀한 얼굴, 현실 세계의 모든 가치를 전도시키는 초월주의자의 얼굴, 한없이 냉담하며 의도도 배려도 없으며 무관심 자체를 힘이라고 생각하는 고상한 스토아주의자의 얼굴, 고독하고 우울한 코키토(cogito), 이상(ideal)으로서의 진리를 사랑하는 관념주의자의 얼굴, '순수 의지'를 사랑하는 쇼펜하우어의 우울한 얼굴, 책임과 절제, 용기의 덕(德)을 가진 수호자의 얼굴, 분노도 질투도 없는 달관자의 얼굴, 고독을 사랑하는 옵티미스트(optimist, 현실 세계와 인생을 궁극적인 최선의 것으로 보고 이를 만족스럽게 여기는 생각이나 태도를 갖는 낙천주의자)의 얼굴, 세상은 덧 없을 뿐이라는 니힐리스트(nihilist, 모든 사상, 진리 따위에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자)의 얼굴, 문제를 알지만 침묵하는 자의 얼굴, 현실에서 자유로워진 자의 얼굴, 어둡고 우울하고 딱딱하고 거칠고 찬 얼굴, 얼굴들....
이들은 누구인가? 홀(笏)을 들거나 칼을 든 죽은 자의 수호자, 꽃과 술병을 들었지만 곰팡이가 서식하는 죽은 자의 시종, 죽은 자, 혹은 죽은 자들의 대리인.... 그렇다면, 산 자는 누구인가?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두 개의 축(軸, 굴대 혹은 바디, 사물의 요점), '주체화의 축'과 '의미 생성의 축'을 만났다.
... 우리는 두 개의 축을 의미 생성과 주체화의 축을 만났다. 이것들은 매우 다른 두 개의 기호계, 또는 두 개의 지층이다. 하지만 의미 생성은 기호들과 잉여들을 기입할 흰 벽이 없으면 안 된다. 주체화는 의식, 정념, 잉여들을 숙박시킬 검은 구멍이 없으면 안 된다. 혼합된 기호계들만이 존재하고 지층은 적어도 두 개 이상이어야만 성립되기 때문에, 그것들이 교차할 때의 매우 특별한 배치의 몽타쥬에 놀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얼굴, 즉 흰 벽-검은 구멍의 체계는 흥미롭다. 흰 뺨의 큰 얼굴, 검은 구멍 같은 눈이 똟린 백묵 같은 얼굴, 어릿광대의 머리, 하얀 어릿광대, 달의 피에로, 죽음의 천사, 수의를 입은 성자, 얼굴은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자의 외부를 둘러싼 표피가 아니다. 언어에서 기표의 형식과 심지어 그것의 단위들은, 만약 임의의 청자가 말하는 자의 얼굴을 선택하지 않는다면("이런, 이 자는 화난 것 같군....", "그는 그렇게 말할 수없었어....", '내가 너에게 이야기할 때 넌 내 얼굴을 보는구나....", "나를 잘 봐...") 결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어린이, 여자, 가족의 어머니, 남자, 아버지, 우두머리, 교사, 경찰은 일반적인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표작용하는 특질들이 특별한 얼굴성의 특질들에 연동되어 있는 언어를 말한다.
본래 얼굴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얼굴은 빈도나 확률의 지대들을 규정하고, 미리 적합하지 않은 표현들과 연결접속들을 적합한 기표작용으로 중화하는 장을 결정한다. (...) 얼굴은 기표에 부딪혀 튀어나와야 하는 벽을 구성하며, 기표의 벽, 프레임 또는 스크린을 구성한다. 얼굴은 주체화가 꿰똟고 나가야 하는 구멍을 파며, 의식이나 열정으로서의 주체성의 검은 구멍, 카메라, 제3의 눈을 구성한다. ...
- 『천 개의 고원』(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새물결·2003년·원제 : 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1980년) <7. 0년-얼굴성> p.321~322
( http://www.epicurus.kr/Notice_N/40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