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좌명 : 금천구립시흥도서관 인문 독서토론
○ 기간 : 2016년 1월 7일(목)~3월 17일(목) · 격주 1회 · 총 6회
○ 시간 :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12시(2시간)
○ 장소 : 금천구립시흥도서관
○ 대상 : 금천구립시흥도서관 푸르미 성인독서회 회원
○ 강사 : 정현(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 www.epicurus.kr)
3월 17일(목), 체험과 기억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산문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유려한 언어,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로 삶을 성찰하는 책,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한 <이것이 인간인가>(프리모 레비 | 돌베개 | 2007년| 원제 : Se Questo e' un Uomo, 1958년)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책의 말미에서 프리모 레비는 ‘파시즘(fascism)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가면을 쓰고 모습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프리모 레비는 ‘파시즘(fascism)’은 ‘타고난 고문 기술자들이나 괴물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과 복종하는 기술자가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파시즘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행사되고 있는 파시즘적 권력 앞에서 지금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공개적으로 연설을 할 때 사람들이 그들을 믿었고 박수갈채를 보냈고 감탄했으며 신처럼 경배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니,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였다. (...) 그것들은 환영을 받았고 그들이 죽을 때까지 수백만의 추종자들이 그들을 따랐다. 비인간적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한 사람들을 포함한 이런 추종자들은 타고난 고문 기술자들이나 괴물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p.303)
프랑스 철학자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년~1990년)는 젊은 시절 ‘호명(呼名, interpellation) 이론’을 통해 ‘모든 이데올로기가 구체적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한다’고 말하며 절망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프리모 레비가 말한 ‘아무런 의문 없이 복종하는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으며 파시즘을 승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독일 수정주의자들의 나치 복권 시도, 유대인의 조국 이스라엘의 "미숙한 파시즘적 선회" 등을 보며 인간으로서의 수치를 느껴 67세 되던 1987년의 어느 봄날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합니다. "이것이 인간일까요?" 아무런 의문 없이 복종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권력은 피라미드적인 것이 아니라 선분적?선형적이며, 높은 곳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접성에 의해 작동한다. 사법적 권력은 도달할 수 없는 최고 법원의 판사들에게 행사되기보다는 직접 피고들이 대면하는 문지기(수위)?서기?하급관리에 의해 행사되고, 학교에서 권력은 교육부 장관이나 장학사?교장보다는 직접 대면하는 교사에 의해 행사되며, 공장에서의 권력은 사장이나 이사 들보다는 직접 대면하는 십장에 의해 행사되고, 군대에서의 권력은 총사령관이나 사단장보다는 직접 대면하는 하사관들에 의해 행사된다. 이는 그들이 바로 선분의 양끝을, 그 절단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고(선분성), 그 선분들이 어긋나지 않도록, 하나의 직선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선형성). 이러한 권력의 인접성은 욕망의 인접성과 결부된 것이지만, 욕망의 인접성은 선분적이고 선형적이기보다는 항상 옆길로 새는 탈주선이고, 변이의 내재적 장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권력은 이러한 욕망의 평면에 그것을 장악하는 하나의 선분적 선을 그리는 것이다. 따라서 욕망이 권력에 대해 일차적이고, 모든 배치는 권력의 배치이기 이전에 욕망의 배치다."
-『천 개의 고원』(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 새물결 |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