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16년 6월 28일(화) 오후 2시~4시
○ 장소: 금천구청 평생학습관 제3강의실
○ 대상 도서 : 『채식주의자』(한강 · 창비 · 2007년 · 영문판 : The Vegetarian)
○ 참가 대상 : 금천구청 직원
○ 진행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정현(진행) ·이우 (패널)
2016년 맨 부커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한 한강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한강 · 창비 · 2007년 · 영문판 : The Vegetarian)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소설은 출판사 책 소개에서 말하는 것처럼 상처 입은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인 상상력에 결합시키면서 지금까지 소설가 한강이 발표해온 작품에 등장했던 욕망, 식물성, 죽음, 존재론 등의 문제를 집약시키고 있습니다.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 남편인 ‘나’의 시선으로 서술됩니다. 어린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죽이는 장면이 뇌리에 박힌 영혜는 어느날 꿈에 나타난 끔찍한 영상에 사로잡혀 육식을 멀리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고기냄새가 난다"며 남편마저 멀리합니다. 육식을 거부하면서 몸이 쇠약해져 가는 영혜를 보고 있던 장인이 강제로 영혜의 입에 고기를 넣으려 하자, 영혜는 그 자리에서 손목을 긋습니다. 상처! 2부 「몽고반점」은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아티스트 ‘나’의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동생을 측은해 하는 아내 인혜에게서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형부’는 영혜를 모델로 비디오 작품을 만듭니다. 남편에게서 ‘고기 냄새가 난다며’ 사랑을 나누지 않았던 영혜는 ‘형부’와 사랑을 나누지만 이로 인해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욕망! 3부 「나무 불꽃」은 자신의 남편과 사랑을 나눈 동생 영혜를 목격한 인혜의 시선으로 그려집니다. 단순한 육식 거부에서 식음을 전폐하는 지경에 이르는 영혜는 생로병사에 무감할뿐더러 몸에 옷 하나 걸치기를 꺼리는, 인간 아닌 다른 존재인 ‘나무’로 전이됩니다. 인혜는 영혜를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고 가족들 모두 등돌린 영혜의 병수발을 듭니다. 영혜는 채식주의에서 더 나아가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을 앓으며 삶을 거부합니다. 죽음!
이처럼 한강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는 이 몸체가 상처-욕망-죽음이라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혹은 영·미 심리주의적인 선(線), '죄의식'이라는 서양의 종교적인 선(線)을 따라 전개됩니다. 프로이트가 그러했듯, 육식-채식, 동물-식물, 성적 에너지(리비도, libido)-사회적 규범(초자아, super-ego), 인간의 폭력성-존엄성이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세계를 분열과 신경증 속으로 우리를 밀어넣습니다. 이 절편의 선(線)을 따라가면 이 소설의 주인공인 '영혜'처럼 신경증을 앓거나 '죽음'에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혜'를 살리려는 모든 행위가 폭력성이 되고 마는 이 기괴한 망상....
이 소설이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 소설의 모티프(motif, 예술 작품에서, 창작 동기가 되는 중심 제재나 생각)가 프로이트식의 정신분석이 만연하던 1900년대 초반의 서구의 사유이며,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영· 미식의 심리학적 지형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형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부정과 대립, 상처와 죽음이라는 부정적인 존재론에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는 몸체(corps)로 존재합니다. 몸체에 관한 또 하나의 의 소설, 『몸의 일기』(다니엘 페나크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 원제 : Journal d'un corps, 2012년)는 이 소설집 『채식주의자』와 전혀 다른 사유를 그려냅니다. 다니엘 페나크의 장편소설 <몸의 일기>는 욕망이 긍정되면서 몸체가 생산과 약동의 선(線)을 따라 내달리며 몸체의 소멸을 긍정합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허무와 죄의식, 정신분열이라는 '구성의 판', 혹은 '조직의 판' 위에 있다면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는 건강함과 생성과 약동이라는 '조성의 판', 혹은 '내재성의 평면' 위에 있습니다. 우리는 구성의 판·조직의 판 위에서 허무와 죄의식, 정신분열의 선(線)을 따라갈 수도 있으며, 조성의 판, 혹은 내재성의 평면 위에서 건강함과 생성, 약동의 선(線)을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건설할, 혹은 건설해야 할 삶의 평면(plate)은 상처-욕망-죽음이라는 소멸의 선(소설『채식주의자』)이 아니라 약동하면서 긍정되는 생성의 선(소설 『몸의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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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부커상(Man Booker Prize for Fiction)은 영국에서 출판된 영어 소설을 대상으로 그 해 최고 소설을 가려내는 영국의 문학상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영국 연방과 아일랜드, 짐바브웨 국적의 작가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2013년부터는 작가의 국적과 상관없이 영국에서 출간된 모든 영어 소설로 대상을 확대했다. 2005년부터는 맨부커 국제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이 추가로 만들어졌다. 출판과 독서증진을 위한 독립기금인 북 트러스트(Book Trust)의 후원을 받아 부커 그룹(Booker Group)의 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부커상의 주관사인 부커 그룹은 1835년 설립된 영국의 종합물류유통회사로서 설탕 사업, 슈퍼마켓 사업 등을 하는데, 1964년 문학관련 사업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68년부터 부커상을 제정, 시행해 오고 있다. 이 상은 영어권 출판업자들의 추천을 받은 소설작품을 후보작으로 하여 신망받는 평론가와 소설가, 학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수상작을 선정한다. 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가들에게는 그들 작품의 특별판을 제작해주고 상금을 제공하며 최종 수상자에게도 상금이 주어진다.
부커상은 일반인들의 관심을 넓히고 직접적인 참여의 기회를 주기 위해 심사위원들에 의한 부커상 선정과는 별개로 일반 독자들이 뽑는 피플스 부커(People's Booker)를 1999년에 제정해 운영하해 부커상 후보를 대상으로 일반인들이 인터넷 투표를 통해 선정하게 되었고, 2002년부터 금융기업인 맨 그룹(Man group)이 상금을 후원하면서 명칭이 '부커상'에서 ‘맨부커상’으로 바뀌었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년~ 1939년)는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파의 창시자이다. 185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억압의 방어 기제에 대한 이론, 그리고 환자와 정신분석자의 대화를 통하여 정신 병리를 치료하는 정신분석학적 임상 치료 방식을 창안한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또 그는 성욕을 인간 생활에서 주요한 동기 부여의 에너지로 새로이 정의하였으며, 자유 연상, 치료 관계에서 감정 전이의 이론, 그리고 꿈을 통해 무의식적 욕구를 관찰하는 등 치료 기법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뇌성마비를 연구한 초기 신경병 학자이기도 하였다. 신프로이트주의에서 프로이트의 많은 이론을 버리거나 수정하였으며, 20세기 말에 심리학 분야가 발전하면서 프로이트 이론에서 여러 결함이 드러났으나, 프로이트의 방법과 관념은 임상 정신 역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인문 과학과 일부 사회 과학에서 계속 영향을 주고 있다. 1982년 영국 런던에서 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