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성』(프란츠 카프카 · 창비 · 2015년 · 원제 : Das Schloss, 1926년)을 주 도서로 놓고 카프카의 문학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지금까지 카프카의 문학은 부정과 부재, 부조리와 불가능성의 장으로 해석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의 문학에 붙는 수식어는 "현대인이 겪는 실존의 부조리성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그의 문학은 부정과 부재, 부조리와 불가능성이 아니라 긍정과 내재적인 가능성의 장입니다. 카프카 문학을 부정과 부재, 부조리와 불가능성의 장으로 바라보는 것은 한 시대의 사회체(정치체·경제체·사법체·권력체)를 배후로 갖는 하나의 환영(幻影, 눈앞에 있지 않은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카프카가 말했듯이 “문제는 자유가 아니라 출구”입니다. 문제는 억압하고 복속시키는 법적 · 경제적 · 관료적 · 정치적인 배치가 아니라 ‘출구'의 문제입니다. 성 안의 블록들, 성 밖의 블록들은 닫혀 있는 것 같지만 블록들은 복도 · 문으로 연결 · 접속되어 있으며 “정문과 옆문은 물론 문이 없는 입구와 출구까지 포함하여 무수한 많은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을 가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나가지 않고, 나아가지 않으려 하지 않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목격하는 것은 마치 암적인 침투나 사무실과 관료들의 복잡한 교착, 무한하고 알 수 없는 위계”1이며 이 배치는 “괴이한 공간의 감염 등과 같은 내적인 증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프카는 끊임없이 달아납니다. 카프카 문학의 주인공들은 연쇄되고, 변화되고, 증식되고 늘 탈-영토화합니다. 소설 <성>에서 ‘프리다’는 비서와 관리자의 선분에, ‘올가’는 하인의 선분에 결부되어 있지만 이 여인들은 K를 ‘성’과 접촉하게 하고 연계되게 하고 마침내 K를 다른 블록으로 이동시킵니다. 하녀와 하급 고용인들은 관료적 계열의 맨 아래층에 있으면서 관료주의에서 탈주하려는 최대한의 의사를 가지고 있어 K를 늘 다른 선분, 다른 영역, 다른 영토를 탈-영토화시킵니다. 소설 <아메리카>에서는 하녀가 K를 범하면서 K는 아메리카라는 이국땅으로 탈-블록화하고, ‘클라라’는 K를 삼촌의 집에서 밖으로 탈-블록화시키며, ‘테레즈’는 옥시텐털 호텔로, ‘브루넬다’는 K를 오클라호마 대극장으로 탈-영토화시킵니다.
"카프카가 삶 앞에서 결여 · 허약함 · 무능력으로 인해 문학으로 도피했다고 하는 것처럼 어이없고 기괴한 일은 없을 것이다. 카프카에게 문학이란 리좀이고 굴이지 상아탑이 아니다. (...) 카프카의 작품 속에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그것은 리좀이고 굴(窟)이다. <성>에는 수많은 입구들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아메리카>의 호텔은 수위가 지키고 있는 정문과 옆문은 물론 문이 없는 입구와 출구까지 포함하여 무수한 많은 문을 가지고 있다."
- <카프카 -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 동문선 · 2001년 · 원제 : Kafka)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