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좌명 : 2013년 통찰력을 갖춘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인문고전 만남 <상처 받지 않을 권리>
○ 장소 : 경북도립대 창업보육센터 3층 세미나실
○ 시간 : 2013년 5월 13일(월) 오후 7시~9시(7주차 )
○ 내용 : 주체와 객체·3
↑ 봄의 꽃잎들이 날리고 목단 꽃잎이 뚝뚝 떨어지던 날, 제7주차 강의 <주체와 객체·3>이 있었습니다. 이번 강의는 전 주 진행되었던 독서토론 대상 도서인 <아Q정전>을 중심으로 주체와 객체의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왜 아Q는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했을까요? 정말 독서토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아Q'인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애드립 스피치. '속옷', '자전거', '바람', '욕'. 뽑혀 올라왔던 주제지에 황당하고 당혹스러웠겠습니다. 삶이란 느닷없이 주어지고 만나는 우연의 연속.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주제는 그 의미를 압축하거나 확장하면 쉽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속옷'은 '자유'로, '자전거'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혹은 '운동과 멈춤'으로, '바람'은 '나그네'와 '욕망'과 '희망'으로, '욕'은 '긍정과 부정'으로.... 바로 이렇게 삶이란, 우연하게 만나는 사건들 속에서 스스로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 '아Q'는 스스로 차이를 생성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아비투스를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차이를 생성하지 못한다면 '아Q'일 수밖에 없습니다. 삶이란, 차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것. 우리는 들뢰즈의 노마디즘, 차이의 철학 이야기를 들으며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변화하고 질주하는 주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성의 선은 점들 사이를 지나가며, 중간을 통해서만 돌출하며, 우리가 먼저 구분한 점들 쪽으로 곧장 흘러가며, 인접해 있거나 떨어진 점들 사이를 결정 가능한 비율로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생성의 선은 중간만을 갖습니다. 중간은 평균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속 운동이며 운동의 절대 속도입니다. 생성은 하나도 둘도, 둘 사이의 관계도 아닙니다. 생성은 둘 사이이며, 생성은 이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질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