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사 : 「스무 살 학교 · 청년, 세상 속으로 길 나서다」 외전편(外傳編) · 2 : 김유정문학촌 인문학 기행
○ 일시 : 2015년 12월 26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저녁 10시
○ 장소 : 김유정문학촌
○ 대상 : 스무 살 학교, 「청년, 세상 속으로 길 나서다」 수강생 · 게스트
○ 주최·주관 : 은평구평생학습관·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2015년 「스무 살 학교 · 청년, 세상 속으로 길 나서다」 외전편(外傳編) 두번째 시간, '김유정문학촌'으로 "그녀들 사이 혼자 남자"로 인문학 기행을 떠났습니다. 올 때마다 비가 내린다고 투덜대면서, 점심으로 나온 만두를 성큼성큼 만두째 간장에 찍어 먹다가 ‘남자들은 자기밖에 모른다’는 그녀들의 핀잔을 들으며, 김유정 단편소설 <봄봄>(1935년)이나 <동백꽃>(1936년)의 주인공인 ‘나’가 ‘점순이’의 마음을 몰라 주었다며 ‘남자는 여자 마음을 모르는 얼뜨기’라는 그녀들의 ‘융단 폭격’을 견디며 실레마을을 걸었습니다. 그녀들의 핀잔 앞에 할 말이 없어져 ‘남자는 지구를 구하거나 우주를 구하기 위해 바쁘다’고 뭉툭하게 쏘아 주었습니다. 거시(巨視)적인 ‘남자’와 미시(微視)적인 ‘여자’, 그램분자적인 사회체와 분자적인 개인….
1937년 만29세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 소설가 김유정. 그를 미시적이고 분자적으로 본다면 한 사람의 아들이자 작가입니다. 그러나 거시적이고 그램분자적인 사회체는 일제강점기. 그는 지탄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 10대 부자로 통했던 만석지기의 아들입니다. 여기에 김유정의 분열이 있습니다. 춘천 MBC가 김유정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김유정은 민중들을 사랑하여 명문집안의 자손인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도 존대말을 했고, 그들을 위해 1930년 학교가 없는 고향 실레마을에 내려와 ‘금병의숙’을 짓고 약 2년간 글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 할애됩니다.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갈등을 소박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봄봄>, <동백꽃>, <따라지> 등 일제 강점의 혹독한 현실 가운데에서 주로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곤궁한 삶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는 지주의 아들…. 작품 성격상 참여적인 조선문학가동맹(朝鮮文學家同盟, KAPF)에 맞다는 친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순수문학 동인인 구인회(九人會)를 선택하고, 풍자(諷刺)보다 해학(諧謔)을 선호합니다. <봄봄>이나 <동백꽃> 속에 나타난 해학은 비판 없이 주인공의 바보스러운 행동만으로 웃음을 일으킵니다. 분명 <동백꽃>의 ‘나’와 ‘점순이’ 사이나 <봄봄>의 ‘나’와 '장인' 사이에는 갈등이 있지만 풍자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해학으로 인물들의 대립을 화해시키고 맙니다. 우리나라 10대 부자로 통했던 만석지기 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작농을 사랑했던 분열적인 김유정….
이 분열이 김유정만의 이야기일까요? 지금 실례마을은 개발이 한창입니다. 농민들의 곤궁한 삶을 그려냈던 김유정이 살았던 실레마을이지만 흙길이 포장되고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농토를 판다는 부동산 팻말이 늘어나고 있고, 그 자리에 관광객을 위한 현대식 식당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농민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거시(巨視)적인 ‘남자’와 미시(微視)적인 ‘여자’, 그램분자적인 사회체와 분자적인 개인의 함수 관계….
그러거나 말거나, 비는 오는둥 마는 둥하고 봄을 기다리는둥 마는둥 생강나무들은 새싹을 맺고 있습니다. 애당초 세계는 확정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램분자적인 사회체와 분자적인 개인, 거시(巨視)적인 ‘남자’와 미시(微視)적인 ‘여자’는 서로 뒤엉킵니다. 단편 <동백꽃>의 주인공인 ‘점순이’와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