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의 정치-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한국사회』(권정우·하승우 | 한티재 | 2015년)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자 권정우·하승우가 쓴 이 책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년~1975년)의 눈으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의 가치는 '한국 사회의 폭력성을 되돌아 보게 하고 제도화된 폭력의 다양한 양상과 근본적인 구조를 잘 요약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제도화된 폭력을 어떻게 빠져나올 것이냐는 대안 제시는 미흡했습니다. 정치와 권력 자체를 긍정하는 태도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도화된 폭력을 만들어내는 정치나 권력에 반대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 폭력적이지 않은 정치와 권력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식의 논리로 제도화된 폭력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또 다른 정치와 권력을 만들어 폭력을 행사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어쩌면 아렌트야말로 정치적일지 모릅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laber)', '작업(work)', '행위(action)'로 나누고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유일한 활동", '행위(action)'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바로 행위는 물질을 떠난 관념의 자리입니다. 또, 나아가 한때 스승이었던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년~ 1976년)의 '존재(Sein)' 개념을 연상케하는 "타인의 현존을 기반으로 차신의 차이성을 말과 행위로 드러내는 공간(p.179)"으로 '공론장(公論場)'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바로 이 공론장에서 '행위(action)'할 때 인간은 정치적인 존재가 된다고 말합니다. 아렌트의 공론장은, 인간을 존재자(das Seiende)와 존재(Sein))로 나누고  삶을 '시공간 속에 던져진 피투성으로서의 자신이 존재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가능적 실존으로 전화해 감으로써 존재 매개의 지위를 획득해 가는 현존재의 실존성의 구조적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하이데거의 폭력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평소 "인간이 정치적 삶을 살지 않으면 동물과 다름 없다'고 말한 한나 아렌트를 고려한다면, 그녀는 지금 제도화된 폭력을 일으키는 정치에 반대되는 곳에 또 다른 정치를 정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들뢰즈(Gilles Deleuze, 1925년~ 1995년) 식으로 말하자면, 기표와 반기표라는 이중적 대립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표와 반기표를 가로지르는 탈기표는 '(폭력)정치 대 (비폭력) 정치'의 논리가 아니라 정치 자체를 빠져나오는 탈-기표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CsO는 욕망이다. 사람이 욕망하는 것이 바로 CsO이며, 사람들은 바로 이것을 통해서만 욕망한다. CsO가 고른판 또는 욕망의 내재성의 장이어서만은 아니다. 설령 CsO가 조잡한 탈지층화의 공허함에 빠지거나 암적인 지층의 증식에 빠지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욕망이다. 욕망은 자신의 소멸을 욕망하거나 소멸할 수 있는 역량을 갖는 자가 되기를 욕망하는 단계까지 가기도 하는 것이다. 돈의 욕망, 군대의 욕망, 경찰과 국가의 욕망, 파시스트-욕망. 파시즘조차도 욕망인 것이다. 이러저러한 관계 하에서 하나의 CsO가 구성될 때마다 거기에는 언제나 욕망이 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 순수한 물질의 문제, 물리적·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우주적인 물질의 현상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분열분석의 물질적인 문제는 우리가 선택 수단을 갖고 있는가, 즉 CsO를 그것의 분신들인 유리 상태의 텅 빈 몸체, 전체주의적이고 파시스트적인 암적인 몸체로부터 분리해낼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욕망의 시험. 즉 허위 욕망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 안에서 지층의 증식과 관련된 것, 또는 너무 폭력적인 탈지층화와 관련된 것, 그리고 고른판의 건설과 관련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 문제이다."

-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새물결·2003년) p.316~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