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철학강독 「심포지엄(Symposion)」② :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by 이우 posted Sep 22, 2018 Views 5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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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독명 : 철학강독 「심포지엄(Symposion)」② :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 기간 : 2018년 8월 10일(금)~9월 28일(금)·주 1회·총 8회
  ○ 시간 :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매회 3시간)
  ○ 장소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사직동 사무실
  ○ 대상 도서 :
      ①『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루크레티우스 · 아카넷 · 2012년 · 원제 : De Rerum Natura)
      ②『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질 들뢰즈·박정태·이학사·2007년)
  ○ 진행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www.epicurus.kr) 장우현(진행) · 이우(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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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서성광)


  현대철학의 모태가 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아카넷 · 2012년 · 원제 : De Rerum Natura)를 읽고 난 후,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질 들뢰즈·박정태·이학사·2007년) 중 제3장 <루크레티우스와 자연주의 철학>을 읽으며,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유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1세기에 쓰여진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에 본성에 관하여>는 플라톤학파, 아리스토텔레스학파, 스토아학파에 밀려 소수자의 철학으로 남아있었지만, 스피노자가 이를 계승하고, 젊은 마르크스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의 차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현대 유물론적 사유의 장을 열었습니다. 생성과 차이, 다양성, 긍정의 세계를 열어젖힌 이 "고귀한" 텍스트는 우리를 역동과 생성의 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분들, 장소들, 지역들, 종들 속에 자기가 채워 넣은 다채로움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세계란 없다. (...) 어미 소와 그 송아지가 다르듯 다른 개체와 동일한 개체는 없다. (...) 각종 동물들이 자기들에게 알맞은 영양소를 섭취하듯 결코 동질의 부분들로 구성된 신체는 없다. (...) 자연은 다양한 것의 원리로서, 다양한 것의 생산 원리로서 사유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자연의 모든 요소를 포용할 수 있는 결합이란 없으며, 유일한 세계 또는 전체적인 우주란 없다. (...) 자연은 충만과 공백으로 이루어진 아를르캥(arlequin,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익살광대)과 같다. 왜냐하면 자연은 자신들끼리 서로 제한을 가하면서 서로를 무한성으로 정립하는 충만과 공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루크레티우스 · 아카넷 · 2012년 · 원제 : De Rerum Natura) 중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자연주의는 또 사유와 감성을 긍정으로 만든다. 자연주의는 부정적인 것의 권위를 공격하고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모든 능력을 박탈하며 부정적인 것의 정신에게는 철학에서 말할 권리가 없음을 밝힌다. 감각적인 것를 외양으로 만든 것도 부정적인 것의 정신이요, 가지적인 것을 일자 또는 전체 속에 긁어모은 것도 부정적인 것의 정신이다. 하지만 이때의 외양이 감각 작용의 무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때의 전체와 일자는 사유의 무에 불과한 것이다.
  루크레티우스에 따르면 자연주의는 모든 요소가 한꺼번에 구성되지 않은 무한한 합에 대한 사유이지만, 역으로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더해지지 않는 유한한 복합체들에 대한 감각작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두 방식을 통해서 다수가 긍정된다. 즉 다양한 것이 다양한 그 자체 다양한 한에 있어서 기쁨의 대상이 되며, 마찬가지로 다수가 그 자체 다수인 한에 있어서 기쁨의 대상이 되며, 마찬가지로 다수가 그 전체인 다수인 한에 있어서 긍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때 무한이 자신의 요소들을 전체 속에서 구성되지 않은 합에 대한 가지적이고 절대적인, 따라서 완벽한 규정이라면, 유한 그 자체는 구성되는 모든 것에 대한 감각적이고 절대적인 따라서 완벽한 규정이다. 말하자면 유한과 관련된 순수 실증성이 감각의 대상이라면, 진정한 무한과 관련된 실증성은 사유의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 시각 사이에는 그 어떤 대립도 있을 수 없다. 반대로 그들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루크레티우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주의의 결과를 확립했다. 즉 그는 자연과 관련된 실증성을, 긍정의 철학으로서의 자연주의를, 다수의 긍정에 연관된 다원주의를, 다양한 것의 기쁨에 연관된 감각론을, 그리고 모든 신비화(신화화)에 대한 실천적 비판을 확립했던 것이다."

-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질 들뢰즈·박정태·이학사·2007년) 중 <3. 루크레티우스와 자연주의 철학> p.80~81








<철학강독 「심포지엄(Symposion)」② :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개요
(www.epicurus.kr/Notice_N/419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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