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왈책 3월 독서토론 : 『필경사 바틀비』

by 이우 posted Mar 24, 2018 Views 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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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명 : 왈책 3월 독서토론 『필경사 바틀비』
○ 대상 도서 : 『필경사 바틀비』(허먼 멜빌 · 하비에르 사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 원제:  Bartleby, the Scrivener, 1853년)
○ 일시 : 2018년 3월 23일(금) 오후 7시 30분~10시
○ 장소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www.epicurus.kr)
○ 진행 : 정현(진행) · 이우(패널)

  이 독서토론은 Open Group입니다.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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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틀비(Bartleby)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외에 다른 말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바틀비는 황당하게도, 혹은 당황스럽게도,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거부합니다. 바틀비가 무언가를 '안 하는 편을 택'할 때마다 그 무언가를 하는 걸 당연시하며 살아온 우리는 우리의 존재 방식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대체 바틀비는 왜 이러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를 이해합니다. 이 소설이 쓰여진 것이 1853년이고, 배경은 뉴욕입니다. 합리성으로 무장한 후기 근대사회가 열리고, 세계대전의 위기감이 세계를 엄습하고 있습니다.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년~1900년)가 유럽에 감도는 허무와 염세, 퇴폐를 읽어내며 '허무가 우리 앞에 도착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세계는 부조리로 가득 찼습니다. 근대의 합리성으로 무장한 사회체 앞에서 인간은 소외되고, 노동 앞에서 인간의 자유마저 사라지고 없습니다. 출구가 없습니다. 내가 하는 행위는 자신도 모르게 허무와 염세, 퇴폐의 세계, 부조리한 구조를 더욱 단단하게 할 뿐입니다. 무엇인가를 하면 자신도 모르게 세계의 부조리에 가담하게 될 뿐입니다.

  바틀비는 '하지 않는 편'을 택합니다. 미국 최고 갑부 존 제이컵 애스터-변호사-필경사로 이어지는 권력과 고용의 사슬을 거부하고, 계약에 기초한 사회질서를 거부하고, 해고된 뒤에도 사무실에서 나가지 않음으로써 사적 소유를 거부하고, 심지어 밥 먹는 것조차 거부합니다. 그는 '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인가를 '합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 고귀한 바틀비는 그 장을 열어 젖힙니다. 그러나 그는 차가운 벽에 둘러싸여 굶어 죽습니다. 오우, 바틀비! 우리의 불쌍한 바틀비는 죽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려면, 살아남으려면, 차가운 벽에 둘러싸여 굶어 죽지 않으려면, 근대적인 사회체에서 이탈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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