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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후기] 경북도립대, 나만의 무대를 만들다

by 에피 posted Jun 18, 2012 Views 6469 Replies 3

 

 

 

경북도립대, 나만의 무대를 만들다

 

 

 

 

정현

 


  봄이 시작되면서 <인문고전만남>강좌로 여러분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어느 덧 여름이 다 되었습니다.  42명의 학생들과 만난 첫 시간에 제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지요. 흔히 인문학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음악으로 마음을 열어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 음악을 하며 많은 무대에 섰습니다. 첫 무대는 통기타 클럽 ‘명동 쉘부르’라는 곳이었는데, 오디션에서 다섯 번 떨어지고, 여섯 번째 합격했었죠. 당시 ‘쉘부르’는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유명 가수를 많이 배출하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YG, JYP 정도랄까요. ㅋㅋ

 

  그 곳은 낮 2시에서 밤 12시까지 가수들이 30분씩 계속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는데, 낮 시간은 무명가수들이 노래를 하고, 관객이 많은 저녁 시간에는 유명가수들이 노래를 했습니다. ‘쉘부르’ 입구 간판에는 유명가수들의 이름이 크게 새겨져 있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외 다수(多數)라고 쓰여져 있었죠. 저는 ~외 다수의 가수였습니다. 관객이 없는 빈 공연장에서 노래하며 늘 스타를 꿈꾸었죠.  이후, 음반도 내고 뮤직 비디오도 찍고 방송도 하고 많은 무대에 섰습니다. 아마도 가수 ‘정현’을 아는 사람은 가족과 친구 몇 명뿐일 겁니다.

 

  발표한 음반이 반품으로 대박(?)이 나고, 불러주는 무대가 없고, 나이는 들어가고.....  패배의식으로 움츠러들고 절망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막막해서 울고, 생각하고, 답답해서 울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힘은 삶의 방향을 찾아줍니다.

 

  “그래, 난 음악이 좋아서 노래를 했지, 스타가 되기 위해서 노래를 한 건 아니잖아” 참,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선과 후가 바뀔 때 우리 삶은 많이 달라집니다. 음악이 좋아서 노래를 하면 그 과정을 즐기며, 매 순간 순간을 즐길 수 있죠. 즉, 현대 철학에서 말하는 선(線)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스타가 되겠다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과정, 선을 즐기면 크게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반면 스타가 되기 위해서 노래를 하면,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됩니다. 즉, 근대 철학에서 강조했던 점(點)의 삶의 방식입니다. 한 점(點)과 목표를 향해 질주하다보면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크게 좌절하거나 절망하게 됩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목표를 세우는 것인데,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해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양효석_노래.jpg

 

▲ 노래로 강좌를 열어주었던 경북도립대 방송코디연예학과 양효석

 

 

강전복_노래.jpg

 

▲ 노래로 강좌를 열고 있는 경북도립대 사회복지학과 강전복

 

 

 

  고전 평론가 고미숙은 말합니다. “앎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저는 음악을 넘어, 인문학 공부를 하며 삶의 문제를 많이 해결했습니다. 책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을 하며, 존재와 세계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앎의 크기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경북 도립대 <인문고전 만남>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됐죠. 제가 지향하는 무대는 잘하는 사람만 서는 곳이 아니라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설 수 있는 무대입니다. 이후, 강의 시작 전에  양효석, 강전복 학생이 하고 싶은 노래를 불러 주었지요. 함께 만들어 가는 무대의 시작이었습니다.

 

  주제어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1분 스피치에서는 매 주 돌아가며 모든 학생이 무대에 섰습니다. 씨앗, 대학, 내 인생 최대의 실수, 바다, 찜질방, 어머니, 나의 18번, 꿈,  사랑, 반 값 등록금, 외로움 ...... 주제어 앞에서 술술 이야기를 잘 풀어가는 사람은 몇 명되지 않았지요. 얼굴을 가리고 바닥을 보며 말하는 사람, 빨개진 얼굴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주제어에서 벗어난 이야기, 심지어는 바닥에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무대에서 1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당당하게 채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아팠습니다.

 

 

1분스피치01.jpg

 

▲ 주제어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1분 스피치

 

 

 

  ‘나는 누구인가’ 강좌에 이어서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로 첫 독서토론을 했을 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이 시대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번 강좌를 통해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인생에서 무대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강의 중반에 이르러 수강생이 반으로 줄었지만, 몇 몇 학생들의 눈빛이 살아나는 것을 보고 서울행 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습니다. 박민규 작가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토론을 마치고 나올 때, 한 남학생이 물었죠. 그 학생은 강의 시간에 거론된 책을 대부분 읽은 학생이었지만, 늘 시니컬한 표정을 하고 있어 걱정이 되는 친구였습니다.

 

  “선생님!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는 거요?  내가 어디에 있든 가능한 것인가요?” 내가 세상의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물이지만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는 알 튀세르의 이야기를 상기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하지. 지금 이 순간도 너와 내가 만나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잖아.” 이후, 그 남학생의 눈빛이 살아나고, 수줍은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참 행복했습니다.

 

 

독서토론02.jpg

 

▲ 팀별 독서토론. 인문학 강의 주제에 따라 책을 정하고 토론을 했다.

 

 

독서토론_전체02.jpg

 

▲ 팀별 독서토론 후 진행되었던 전체 독서토론

 

 

  박민규 작가 초청 북콘서트 ‘1할 2푼 5리의 승률을 가진 모든 이를 위하여’를 진행하면서 오랫동안 익혀 온 사유의 언어를 조심히 꺼내 놓는 작가의 따뜻한 말과 2시간 20분이 지났는데도 일어설 생각을 못하는 관객들과 최선을 다하는 출연진. 아마도 전무후무한 북콘서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자와의 대담에서 진행자가 무대이탈을 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었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는.... ㅋㅋ)

 

 

북콘서트02.jpg

 

▲ 소설가 박민규 초청 북콘서트 <1할2푼5리의 승률을 가진 모든 이를 위하여>를 진행하고 있는 정현

 

 

 

  11주, 3개월 동안 진행한 <인문고전 만남>의 종강에서는 경북도립대의 전설이 될 독서클럽생성과 세책례와 마무리 소감을 이야기했죠. 15명의 학생이 독서클럽에 가입했습니다. 독서토론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툴입니다. 강좌 마무리 소감은 모든 학생들이 한 명씩 무대로 나와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불과 세 달 전 1분 스피치를 할 때와는 달리, 웃음 띤 얼굴로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요.

 

 <인문고전만남>에서 만난 모든 학생들이 이제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눈치보지 말고, 기죽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채운 멋진 무대에서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래 한 곡 들려드릴게요. 춤과 함께요. ㅋㅋ

 

 

  뮤지컬

 

  내 삶을 그냥 내버려둬♪♬  더 이상 간섭하지 마♪♬
  내 뜻대로 살아 갈 수 있는♪♬  나만의 세상으로 난 다시 태어나려 해♪♬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아  음악과 춤이 있다면♪♬
  난 이대로 내가 하고픈 대로 날개를 펴는 거야♪♬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내가 돼야만 해♪♬
  이젠 알아♪♬  진정 나의 인생은
  진한 리듬 그 속에♪♬ 언제나 내가 있다는 그것
  나 또 다시 삶을 택한다 해도 후횐 없어♪♬

  음악과 함께 가는 곳은 어디라도 좋아♪♬
  또 다른 길을 가고 싶어♪♬  내 속의 다른 날 찾아♪♬
  저 세상의 끝엔 뭐가 있는지♪♬   더 멀리 오를 거야♪♬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진 않아♪♬

 

 

 


  • profile
    이우 2012.06.18 21:30

    정현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profile
    에피 2012.06.19 08:27

    강의없는 첫 월요일이 왜 이리 허전할까요.... 벌써, 학생들이 보고 싶네요.

    이우 선생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죠.

    뿌듯합니다.^.~ ㅎㅎ

  • profile
    이우 2012.06.19 15:25

    많은 젊음들이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부족 한 것이 많아 아쉬쉈습니다. 월요병이 생기나요 .... 월요일이되면 그 젊음들이 자꾸 보고 싶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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