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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래된 미래 _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by 이우 posted Sep 30, 2011 Views 19341 Replies 0

  한국에서 ‘가장 저평가돼 있는 천연자원(the most undervalued natural resource)’은 무엇일까.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여성'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이 잡지는 한국기업들이 여성을 차별하는 틈새를 이용해 외국기업들이 고학력 한국여성들로 돈을 벌고 있다고 하면서 이를 ‘성(性) 차익 거래(Gender arbitrage)’라고 명했다. 성(性) 차익 거래(Gender arbitrage)란 일자리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보수도 적은 한국여성들이 한국 내 다국적 기업들에게는 높은 수익성을 내는 자원이 되고, 외국 기업들이 이를 이용해 낮은 임금으로 그 여성들을 고용해 성차별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는 '한국은 성 차익 거래에 이상적인 환경을 갖고 있으며 한국의 직장은 성 차별적이라며 냉소했다'는 미국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조던 시겔 교수의 말도 함께 싣고 있다.(조선일보 2010년 11월 2일자 A26면)

  이 글은 여성을 경제적인 자원(resource)으로 인식하는 ‘물신주의(物神主義 Fetishism)’를 담고 있어 씁쓸하다. 사람을 경제재로 바라보고, 웃음과 슬픔이라는 감정 표현마저 노동으로 만드는(<감정 노동 The Managed Hear. 앨리 러셀 혹실드 저. 이매진 2009),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몸과 우정과 사랑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마저 상품화하고 거래로 만드는(<친밀성의 거래(The Purchase of Intimacy. 비비아나 A 젤라이저 저. 에코리브 2009) 현대의 물신주의적인 시선 앞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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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오래된 미래>를 읽었다.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어를 연구하기 위하여 1975년 라다크에 갔다가 그곳에 매료된 스웨덴의 언어학자인 ‘헬레나 노리베리’가 16년 동안이나 라다크를 드나들며 그곳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 그러나 다가올 시간’이다. 아직 오지 않았는데 ‘오래 되었다’는 이 역설은 ‘미래의 행복은 오래된 라다크에 있다’는 메타포(metaphor, 은유)를 담고 있다.

 

   ‘라다크’는 인도 최북단 카라코람과 히말라야 산악에 끼어있는 고원 지대로 지역적으로는 인도에 속해 있지만 문화·종교적으로는 이웃 티베트와 가깝다. ‘라다크’라는 이름이 ‘고갯길이 있는 땅’이라는 티베트의 말에서 나왔듯이 라다크는 커다란 산맥들 사이의 고지대 황무지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은 자연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연환경이 좋은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햇볕에 탈 듯이 뜨겁고,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이렇게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은 자연에 감사하며 자급자족하면서 행복하게 산다.  라다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모든 것을 재순환시켰다. 물은 눈을 녹여 사용하였고, 소의 똥은 말려서 집을 지을 때 재료로 이용하고 불을 지피는 연료로 사용한다. 모래로 비벼서 빨래를 하고 가축들이 한 곳의 풀을 많이 뜯어먹지 않게 날마다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라다크에는 오염이 없고 범죄가 없었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나눠먹었으며 자기 어머니만큼 나이든 여자는 ‘어머니’, 자신의 형제뻘이 될 법한 사람들은 ‘형제’라 불렀다. 모든 활동은 아이에서 노인까지 함께 참여했다.

 

  일 년 중 그들이 실제로 일하는 기간은 4개월. 나머지 기간 동안은 대부분을 잔치와 파티로 보낸다. 그래서일까. ‘질병은 이해의 결핍에서 생긴다’는 라다크의 한 의원의 말처럼 이들은 건강하다. 병이 나도 심각한 경우는 드물었다. 생활 패턴이 느슨하고 편안했다. 그러나 밖에서 보면 척박한 환경 탓에 초라해 보이는 생활이었으며 서구에 비해 영아사망률이 높았다.

 

  1975년 인도정부는 라다크를 둘러싸고 중국과 영토 분쟁이 일어나자 라다크를 외국인에게 개방한다. 라다크에 관광객들이 밀려왔고, 라다크 사람들은 ‘돈’에 대해서 알아갔다. 자급자족 사회는 해체되었으며 개인주의·물질만능 풍토가 자리 잡았기 시작했다. 농사는 돈벌이 산업이 되고, 돈을 벌지 못하는 ‘조’ 농사 대신 돈을 벌 수 있는 젖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웃끼리 협동하는 대신 돈을 주고 인력을 사고 사람들은 편리한 생활, 더 많은 돈을 찾아 시골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갔다. 마침내 라다크 사람들은 현란한 서구문화에 젖어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혐오스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들만의 자급자족을 벗어나 세계경제 체제의 일부로 편입된 라다크는 자신들의 전통 가치를 잃어 갔다.

 

  이제 라다크에는 폭력, 문명병, 서구적 성인병 등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서구의 도시들처럼 환경을 파괴하는 건물, 소똥과 쓰레기가 늘려 있는 지저분한 거리에서 삶을 살아간다. 대신 최신식 의료시설과 교육시설이 들어섰으며 도로가 생겼다.

 

  개방되기 전까지 라다크에서의 보리 1Kg은 그냥 보리 1Kg에 지나지 않았다. 2000년간 지속되어온 보리 1Kg에 대한 라다크 사람들의 인식은 개방하고 불과 12년만에 ‘보리’에서 ‘상품’으로 바뀐다. 호지가 라다크에서 만난 그곳 사람 체오앙 팔조르는 1975년에 “여기에 가난 같은 건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서구식 개발이 한참 진행된 1983년에는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나 가난해요”라고 말했다. 모든 경제활동에서 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을 우선 순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철학자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면, 사물의 가치가 ‘사용’에서 ‘교환·상징·기호’라는 상품가치로 바뀌고 사람들은 상품을 욕망하게 된 것이다.

   헝가리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년 10월 25일 ~ 1964년 4월 23일)는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을 통하여 ‘자본주의가 상품화할 수 없는 것들 또는 상품화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상품화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불안정요인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가치인 노동능력을 상품화함으로써, 제도와 신뢰의 표시인 화폐를 상품화함으로써, 만인이 공유해야 할 자연을 상품화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불안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며 경제가 사회를 지배할 경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어쩌면 오래 전의 라다크가 ‘상품화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개방 이후의 라다크는 ‘상품화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한 사회이면서 현재 우리의 모습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호지는  ‘미래의 행복은 오래된 라다크에 있다’며 '행복할 수 없는 현재'를 건너뛰어 버린 것은 아닐까.




   .....................
  * 이 글은 조선대학교 독서캠프 <READER & LEADER> 북 브리핑용으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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