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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후기] 청춘, 온몸으로 삶을 밀고 나아가는 것

by 정현 posted Jul 09, 2013 Views 6136 Replies 1

   “삶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이 없어 오답도 없습니다. 남을 따라가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채우십시오."

 

  작년에 진행했던 첫 번째 인문고전 만남 북콘서트 <1할 2푼 5리의 승률을 가진 모든 이들을 위하여>에서 박민규 작가가 청춘들에게 해준 말입니다.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대부분 ‘1할 2푼 5리의 승률을 가진’ 우리들은 예예 와와 하지 않으면서 이기기 위해 하는 야구가 아니라, 함께 즐기면서 하는 새로운 야구단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더 의미 있고 가치로운 일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올해 두 번째 만남은 철학자 강신주의 책 제목 <상처 받지 않을 권리>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박민규 작가의 말처럼, 남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채우고 싶은데, 현실은 뜻대로 잘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요. 그 경계에서 우리는 자주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 모두가 <상처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상처를 받고 있으며, 또한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이우 선생님의 기조 강의에서 <상처받지 않을 권리>란 주제를 설명할 때, 청춘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3개월 동안 인문고전 만남의 길 위에서 흔들리고 휘청이고 지치고 외로워하다, 서서히 자신을 세워 갈 경북도립대 청춘을 생각하니 마음속에 봄바람이 부는 듯 설레였습니다. 그 때가 春 3월이었죠. 작년에 강좌를 들었던 학생들이 단단해진 모습으로 따뜻하게 맞아줘서 왕복 8시간 여정의 고달픔도 덜어내고, 힘찬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상처를 받고 있으며, 또한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상처를 받지 않고, 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북 도립대의 청춘들도 지금 우리 사회가 우선하는 가치인 성공의 기준이나 잣대 앞에서 많은 좌절을 겪거나, 포기하며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원하는 기업에 가고 싶어도 면접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한정되고 규정된 사회구조의 문제를 자신의 환경과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리곤 했겠지요. 그 안에서 상처는 깊어져만 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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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서원 에피쿠로스의 문화예술그룹장으로 일하면서 강의와 공연기획, 기타연주와 노래, 독서토론 진행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저를 보며 많은 분들이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현재 삶의 대부분이 행복합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척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냈지요. 당시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이던 1967년에 4대 독자를 기다리던 정씨 가문에 저는 둘째 딸로 태어났지요. 원하지 않은 존재, 처음부터 거부당한 존재로서의 삶은 늘 이방인으로 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제 탄생과 더불어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 한 인물 하는 가문에 먹칠하는 못난 얼굴, (별명이 ‘못난이’였답니다.), 감성과잉의 성격은 그나마 사랑받을 수 없는 조건들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존재 자체를 거부당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들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지요.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칭찬받기를 원하면서 오랜 동안 타인지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를 세우지 못하고, 타인에게 기대는 삶을 사니, 타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삶은 수시로 흔들렸지요. 내가 얼마나 잘 해줬는데, 나한테 이것 밖에 안 해주는가에 이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객체로서의 삶을 살 때 반드시 겪게 되는 일이지요.

 

주체(Subject)와 객체(Object) 강의에서 ‘우리 모두는 이데올로그다’ 라고 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말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데올로기를 ‘생각의 덩어리’, ‘허위 의식’, 왜곡된 의식’으로 해명하는데 불충분하다고 보는 지젝은 “이데올로기란 자신이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행동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것은 ‘앎’이 아니라 ‘행함’이다. 우리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이데올로그들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1960년대의 남아선호사상의 이데올로기는 저희 부모님을 비롯한 당시의 어른들에게는 강력했겠지요. 그때의 ‘허위의식’과 ‘왜곡된 의식’으로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을 ‘행함’으로써 많은 딸들이 존재에 대한 깊은 좌절감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개인의 문제만으로 들여다 봤을 때, 참 많이도 부모님을 원망했었지요.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는 라캉의 말처럼, 부모님이 당시의 이데올로기 안에, 즉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 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회구조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딸 가진 부모들이 다 편애했던 것은 아니지요. 잘못된 사회구조의 문제를 직시하고, 다가올 미래의 방향을 알고 존재론적 교육을 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딸 가진 부모들이 자랑하는 세상이 됐지요. 이렇듯, 삶은 움직이고 변합니다. 그래서 역사도 끊임없이 변하지요.

 

  루쉰의 <아큐정전>으로 독서토론을 할 때, 청춘들의 고민이 쏟아졌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밥벌이에 대한 고민을 할ㄴ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어떤 청춘은 스펙 쌓기에 더 몰두하기, 특기와 취미에 열중한다고 했고, 어떤 청춘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바쁘게 숙제 내주기를 한다고 했습니다. 알차게 시간 관리를 하고, 열심히 달리다가 술 한잔 마시고 새벽에 자리에 누우면 자신의 의지 부족을 탓하기도 한다고 했지요. 요즘 청춘을 일컬어 삼포세대, 민달팽이세대, 육포세대라고 합니다. 취업, 연애, 출산, 집을 포기한 세대라고 비뚤어서 한 말이지요. 스펙을 쌓고 또 쌓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바쁘게 숙제 내주기를 하는데 왜 포기해야 하고, 무엇이 포기하게 하는 것일까요?

 

  청춘들에게 묻습니다. 아큐처럼,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피해를 보게 되면, 머릿속에서 그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합리화하여 만족감을 얻는 ‘정신승리법’에 빠지거나, 자신을 감싸고 있는 위기와 불안, 실패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과 부딪쳐 이겨 나가려 하지 않고, 정신 속으로 달아나 그 속에서 위안과 만족을 얻은 다음 현실을 외면해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아프지 않기 위해, 상처받기 싫어 회피하거나 도망하지 않았는지.

 

  잘못된, 나를 힘들게 하는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공부하고, 사유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을 향한 인문학 공부를 통해 존재론, 인식론, 실천론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확신이 없어 주체로 서지 못하고, 객체로 살 때 상처받고 아픕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가지 못할 때, 우회하거나 피할 때 상처받고 아픕니다. 아프니까 피하지 말고, 온 몸으로 삶을 밀고 나아가, 차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 바랍니다. 청춘, 옴 몸으로 삶을 밀고 나아가십시오.

 

 

 

 

 

 

 

 

 

 

 

2013년 경북도립대학교 인문고전 만남 커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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