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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쁘거나, 혹은 더 나쁘거나_ <나쁜 사마리아인들>

by 이우 posted Oct 07, 2011 Views 799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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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Canon EF 50mm /  Photo by 이우

 

 

 

     장하준은 경제학자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나쁜 사마리아인의 행위’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다.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나쁜 사마리아인>>은 경제학 서적이다. 개발도상국에게는 신자유주의경제체제보다는 보호주의경제체제 성향을 가진 <유치전략>이 맞다고 논거하고 주장하는 책이다. 그의 의견은 탁월하다. 보호냐, 혹은 개방이냐는 두 축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사를 바라보는 그의 식견 또한 탁월하다. 사실을 사실대로 바라볼 수 있는 학자,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제학자다. 그러나 경제학자고, 경제학 서적일 뿐이다. 그것뿐이다.

 

 


        … 내게는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이름은 진규다. 아들은 나에게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벌 충분한 능력이 있다. 나는 아들의 의식주 비용과 교육 및 의료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내 또래의 아이들 수백 명은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 18세기에 살았던 다니엘 디포는 아이들은 네 살 때부터 생활비를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뿐인가. 일을 하면 진규의 인성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는 지금 온실 속에서 살고 있기에 돈이 중요한 줄 모르고 지낸다. 아이는 자기 엄마와 내가 저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한가로운 생활을 보조하고 자신을 가혹한 현실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모른다. 아이는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아이가 경쟁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노출될 수 있도록 미래에 아이의 발전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일을 하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 더 많은 직업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동 노동이 합법적이거나 최소한 묵인이라도 되는 나라로 이주를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내 귀에는 여러분이 나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생각이 짧다고 . 매몰찬 사람이라고. 여러분은 나에게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여섯 살 먹은 아이를 노동 시장으로 몰아넣는다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 될 수도 있고,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일 아이가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내가 앞으로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보호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단순히 세속적인 관심에서 보아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아 절약되는 돈을 보고 히죽거리는 것보다는 아들의 교육에 투자를 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말할 것이다. …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나쁜 사마리아인>> p107 )

 

 


     그래서 장하준은, 신자유주의경제체처럼 자신의 여섯 살 난 아들 진규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호무역경제체제처럼 아이를 보호하고 교육해 의사나 변호사, 혹은 그 이상의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더 많은 재화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라나는 진규, 혹은 개발도상국에 더 적합한 경제체제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주의경제체제로 성장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을 향하여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이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나쁜 사마리아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들 진규를 자유경쟁체제에 내보내 일을 시키라고 말하는 신자유주의자는 ‘나쁘다’. 그럼, 아들 진규가 더 많은 재화를 습득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교육하라고 말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인가? 정작 중요한 것은 빠져 있다. 일을 하거나, 혹은 교육받아야 하는 진규 자신이다. 진규는 행복할까, 혹은 기뻐할까, 슬퍼하지는 않을까라는 문제…. 진규의 ‘행복’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빠져 있는 것이다. 보호무역체제에서 우리는 행복할까, 혹은 신자유주의제제에서 더 행복할까.

 


    행복의 관점을 재화 획득으로 놓고 본다면, 더 많은 재화를 획득하게 하는 체제가 더 좋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 성장의 관점으로 놓고 본다면 더 많이,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체제가 더 좋은 것이다.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체제> 아래에서 <보호무역주의체제>를 조금 비튼 <유치전략>을 답으로 내놓았다. 탁월할 수 있겠다. 그래서, 장하준은 경제학자다. 그것뿐이다. 그러나 아들 진규의 입장에서 본다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어쩌면, 신자유주의나 보호무역주의나 혹은 유치전략이나 모두 나쁠 수 있다. 진규는, 일할 것이냐(신자유주의) 아니면 20여년 넘게 따분한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보호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가련한 처지다. 나쁜 것과 더 나쁜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우리의 진규….

 

     진규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많은 경제학자들은 ‘대안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나쁜 것 중에 덜 나쁜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우리 모두 불쌍한 진규가 되어야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 식으로 말하자면, 보호주의나 신자유주의라는 <홈 패인 공간>1)을 파 놓고 그 안에서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고, 그 안에서 선택하라는 것이다.

 

    어느 한 사회의 경제체제는 경제 성장을 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그 목적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이냐를 고민했던 것이 현재 우리 세계를 대별하고 있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경제체제다. 현대 국가와 현대적 경제체제(자본주의, 사회주의) 생성의 기본 이념이었던 존 로크(John Locke)는 그의 저서 <<통치론>>에서 ‘대지와 그것에 속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부양과 안락을 위해 모든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명제를 전제하고 있다.

 

 

    … 대지와 그것에 속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부양과 안락을 위해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대지에서 자연적으로 산출되는 모든 과실과 거기서 자라는 짐승들은 자연발생적인 작용에 의해서 생산되기 때문에 인류에게 공동으로 속한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자연적인 상태에 남아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사적인 지배권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용하도록 주어진 이상, 그것들을 특정한 사람이 일정한 용도에 맞게 사용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그것들을 수취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마땅하다. … (중략) … 비록 대지와 모든 열등한 피조물은 만인의 공유물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신(人身)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그 사람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신체의 노동과 손의 작업은 당연히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자연이 제공하고 그 안에 놓아 둔 것을 그 상태에서 꺼내어 거기에 자신의 노동을 섞고 무언가 그 자신의 것을 보태면, 그럼으로써 그것은 그의 소유가 된다. 그것은 그에 의해서 자연이 놓아둔 공유의 상태에서 벗어나, 그의 노동이 부가한 무언가를 가지게 되며, 그 부가된 것으로 인해 그것에 대한 타인의 공통된 권리가 배제된다. …


( John Locke의 <<통치론>> 제6장 중에서 )

 

 

 

     이렇게 존 로크에 의해 현대적 소유(所有)의 개념이 발생하고 그 소유를 개인 권리로 인정함으로써 자본주의가 태동되었다. 다른 한편에서 이 사상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일군의 사상가(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사회주의가 만들어지고, 우리 세계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민주주의라는 깊은 홈이 패였다. 그 어느 것이든 모두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걸었던 행보였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보호주의경제체제, 자유주의경제체제,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어왔다(우리에게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안인들>>은 신자유주의의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려던 이 경제시스템은 어느 순간 행복이 아니라 경제 성장이라는 하위의 목적지에서 멈칫거린다.

 

 


    …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들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개인 이익 추구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산물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자원을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공익을 증진하려고 의도하지 않으며 또 얼마나 증대시킬 수 있는지 알지 못 한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행동하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는 가운데 사회나 국가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시킨다. …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

 

 

 

    사람들은, 행복이 아니라 이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경제학의 창시자라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이론,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 또한 성장과 이익, 국부라는 목표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사는 우리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또한 행복이 아니라 성장과 이윤에 초점이 맞추어졌으며 이에 따라 ‘자유’라는 본래의 의미마저 사라져 버렸다. 국부(國富)를 위해 자유무역협정에 조인한 국가는 ‘개방’이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는 ‘폐쇄’라는 그 이중의 잣대. 그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우리는 장하준의 아들 진규와 다르지 않다.

 

     장하준이 대안으로 내세운 <유치전략> 또한 마찬가지다. 장하준이 서술했던 것처럼 보호주의나,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모두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개방’과 ‘패쇄’ 사이 장하준이 대안으로 제시한 <유치전략> 또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국부(國富)의 관점에서 본다면 현명한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어서 사회구성원의 입장에서 본다면 또 다른 차별을 받을 수 있다. 중점 특정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소유권을 박탈당하여야 한다. 나쁘거나, 혹은 더 나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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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OS D60 / Canon EF 50mm + Computer Aid/ Photo by 이우

 

 

 


     과연, 우리가 아는 것처럼 경제체제는 성장과 이익, 국부(國富)만을 위한 것인가.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1886~1964)는 자신의 역저 <<거대한 변환(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 of Our Time)>>2)에서 트로브리안드 군도 주민들의 기이한 교역 풍속을 소개한 바 있다. 한 쪽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사는 주민에게 흰 조개껍질 팔찌와 붉은 조개껍질 목걸이를 선물하기 위해 10년이 걸릴지 모르는 항해를 떠나면, 다른 쪽에서도 반대 방향으로 비슷한 항해를 떠나는 전통이 그것이다. 이 항해는 재화를 교환한다는 점에서 교역임이 분명하지만 호혜의 원리를 따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윤 추구를 위한 오늘의 투자협정과는 너무나 다른 이런 교역을 문화인류학은 <선물경제> 또는 <상징적 교환>이라 명명한다. 여기서 교환되는 것은 화폐, 이윤이 아니라 사랑, 존경, 연대 등이다.

 

     파트너에게 줄 선물을 싣고 10년이 걸릴지도 모를 항해를 떠나는 트로브리안드 주민. 오늘의 자유무역 관점에서는 말이 되지 않으나 상징적 교환은 인류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웃 마을에서 초대한 손님이 더 이상 먹지 못해 토할 때까지 음식물을 대접하기 위해 북태평양 연안 인디언들이 경쟁하듯 벌인 ‘포틀래치’라는 잔치도 한 사례다.

 

     경제적 이성이 이런 행위를 ‘합리적’이라고 할 리는 없다. 그러나 환경에 따라서는 이윤 창출 방지가 오히려 생존의 지혜가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 피그미족은 누가 큰 수확을 올리면 칭찬은커녕 질책부터 했다고 한다. 사는 곳이 척박하여 개인이 사적으로 땅의 생산력을 착취하면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경계한 때문이다. 지금 인류가 처한 환경은 어떠한가? 교역과 교환이 경쟁적으로 일어나서 과잉생산이 부추겨지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모두 경제적 이성에 충실한 나머지 상품교역과 화폐교환에 눈먼 결과라 하면 과장일까?

 

     폴라니는 경제가 사회를 지배할 경우 사회 자체가 해체된다며, 인도가 영국 식민지가 된 뒤 기근이 더 자주 들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과거에는 홍수나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도 신분에 따른 의무, 씨족적 연대, 곡물시장 통제 등이 대규모 아사를 막아주었지만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자 그런 사회적 안전망이 해체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폴라니가 경제주의라고 부르는 경제학은 20세기 중반의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이다. 인간이 직면한 희소성의 현실조건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하느냐는 형식론적 문제 설정이 신고전파의 경제 문제이다. 즉 경제 문제는 합리적 선택 내지는 계산의 문제인 것이며 그러한 논리는 수학적 차원 수단의 문제로 환산되는 것이다. 그러나 폴라니는 경제가 곧 최적화라는 신고전파의 경제 개념을 부인한다.

 

     “경제학은 사람을 ‘경제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으로 추상한다. 그러나 이는 서구에도 없는 동물이다. 아무데도 없는 경제인간이라는 허깨비가 어디에나 있는 것으로 가정하는 데에서 경제학은 출발한다. 사람의 살림은 하나로서 전체가 되는 만큼 경제도 사회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폴라니의 생각이었다. 경제는 사회 속에 ‘묻혀’ 있는 것이 당연하고 시장사회의 문제는 경제가 사회에서 벗어나는 데에서 비롯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3). 그 실체적 의미는 간단히 말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자연과 동료들에게 의존하는 것이고 인간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윤 극대화와 국부(國富)에 초점이 맞춰진 자본주의 시장경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여기에 케인즈의 경제이론에 울고 웃는, 그러면서 그 시스템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으며 살고 있다. 그 사이에 장하준의 <유치전략>이 들어 있다. 이러한 시장경제가 적어도 지구의 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사람들은 묻는다. 그럼, 대안이 뭐냐고. 그래서, 우리의 경제시스템을 포기자하는 것이냐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경제학은, 경제시스템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한 환경의 일부분이고 그 일부분에 집착하여 정작 소중한 우리의 행복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오늘날의 서구 산업사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가 전체 인류의 역사에서 하나의 독특한 창안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사회와 경제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호주의,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유치전략 어느 것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준은 경제 성장이나 국부,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행복’이 기준 되어야 한다고.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인간과 생명 중심의 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또 말하고 싶다. 이미 깊게 패인 자본의 홈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인 이문재의 말처럼 초인적인 힘이 있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내 삶을 내가 선택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행복의 기준’이 다양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음악을 하면서도 굶지 않고, 그림 좋아하는 사람이 그림을 그려도 굶지 않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불러도 굶지 않는 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그러면서 행복하고 싶다고….

 

 

     “우리는 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다(We are not civilized enough to be communists).”


( 올리비에로 토스카니 )


 

 

 

 

註)
1) <홈 패인 공간>과 <매끄러운 공간>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 대한 가장 통속적인 오해들 중의 하나>에 나오는 개념이다. 삶에는 기하학적인 공간, 물리적적인 공간, 도시 공간, 논리적 공간 등 많은 공간이 존재하는데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홈 패인 공간>과 <매끄러운 공간>은 공간 종류가 아닌 공간의 성격에 대한 고찰이다.

 

2) 칼 폴라니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출생하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자랐다. 폴라니는 부다페스트 대학 시절(법학 전공)인 1908년, 헝가리의 자유주의적/사회주의적 문화운동을 주도한 <갈릴레이 써클 Galilei Circle>을 창립하여 초대 위원장을 맡았으며, 1924년부터 1933년까지 빈에서 <오스트리아 대중경제(Der Osterreichische Volkswirt)>를 편집하다가 파시즘에 의해 추방되어 영국으로 이주하고 노동자교육협회(Worker's Educational Association의 강사 등으로 활약하였다. 폴라니는 1940년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3년간 미국 베닝턴 대학에서 체재 연구원으로 있었는데, 그의 주저인 <<거대한 변환: 우리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기원(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s of Our Time)>>(1944년 초판, 1957년 제2판 출간)이 이때에 저술되었다. 그후 잠시 영국으로 나왔던 그는 1947년부터 미국 컬럼비아(Columbia) 대학에서 객원 교수로 ‘일반 경제사’를 강의한 후, 1953년 66세로 교직을 떠난 뒤 작고할 때까지 정력적인 연구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말년에 <<공존 Co-Existence>>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였는데, <<공존>>은 정치학과 경제학의 비교연구를 위한 학제적 잡지로서 “인간 조건의 불변성과 문화적 차이의 실체에 대한 지식을 통해 세계 평화에 헌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3) 박현수(영남대 경제인류학 교수)의 <<거대한 변환>>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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