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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애란의 파토스(Pathos), 『달려라 아비』

by 이우 posted Oct 02, 2011 Views 3076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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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 단편소설집 『달려라 아비』(김애란 · 창비· 2005년)


  채플린이 달리고 있다. 깃발을 흘리고 간 자동차를 보게 된 채플린이 그 깃발을 주워 돌려주려고 뛰고 있는 것이다. 뒤뚱뒤뚱 우스꽝스러운 오리걸음에 나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다 우연히 시위대와 마주친 찰리 채플린. 경찰은 깃발 든 그를 시위 주동자로 체포한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웃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채플린의 생뚱맞은 표정에 나는 또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다.

 

  이 집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다. 수수깡으로 얼기설기 지은 집에 자식은 아홉이다. 집에서 자면 담장 밖으로 발이 튀어나오고, 일어서면 지붕으로 머리가 튀어나온다. 옷을 해 입히지 못해 커다란 천을 하나 가져다 머릿수대로 구멍만 내서는 함께 두르고 다닌다.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 웃긴다. 이건, <흥부전>이다.

 

  아버지가 ‘분홍색 야광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로’ ‘십수년째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고, ‘나’는 상상한다. 아버지는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르네오 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간 것이고,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까지 한 파렴치한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가 십수년 만에 ‘낯선 억양의 인사를 건네며’ 부고(訃告) 한 장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그날 술에 취해 들어와 ‘나’에게 묻는다. “잘 썩고 있을까?” 절대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나온다. 이건, 김애란의 소설 <달려라 아비>다. 우스꽝스러운 걸음새와 생뚱맞은 표정의 찰리 채플린에게 웃듯, 아홉 명의 흥부 자식들이 커다란 천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에 웃듯, 이번엔 김애란의 생뚱맞은 문장에 웃는다.

 

  ...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한 번도 뛴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나를 낳았을 때도, 보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나를 낳았을 때도 뛰어오지 않은 사람이었다. (중략)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렇게 느렸던 아버지가 단 한번, 세상에 온힘을 다해 뛴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 아버지는 어머니가 올라온 그날부터 어머니에게 끝없는 구애를 하기 시작했다. 젊은 피에 좋아하는 처녀와 한방에서 떨어져 잤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버지의 애원과 짜증과 허세는 며칠 동안 반복되었다. 그러자 어머니도 아버지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그날만은 ‘평생 이 남자의 하중을 견디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허락했다. 단, 지금 당장 피임약을 사와야만 한 이불을 덮겠다는 단서를 달고. / 아버지가 뛴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부터 약국이 있는 시내까지 전속력을 향해 뛰었다. ...

 (<달려라 아비>, 소설집 p12~p13)

 

   ... 어둠 속,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어머니한테 얼핏 담배냄새가 났다. 나는 왠지 모르게 골이 나서 ‘아주 나쁜 엄마군!’이라고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어머니는 등을 돌린 채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주 긴 고요가, 어머니의 숨소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작게 움츠러든 몸을 더욱 안으로 말며, 죽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무엇도 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잘 썩고 있을까?” ...

 (<달려라 아비>, 소설집 p27~p28)

 

  누군가 이 웃음과 재미를 만들어내는 김애란을 두고 ‘긍정의 힘’을 가졌다거나 ‘낙천적’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혹자는 ‘부정의 긍정’이라는 조금 어려운 말로도 설명하고, 심지어 ‘화해’라고 말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김애란을 두고 부정적이나 긍정적이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에 더 가깝게 서있다고 하겠다. 김애란이 소설을 통해 만들어내는 웃음과 재미는 ‘파토스(phtaos)’이기 때문이다.

 

  문학에서 파토스적인 웃음은 약자가 고통을 겪으면서 발생한다.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이나 흥부와 그의 가족들, 혹은 <달려라 아비>의 ‘나’와 ‘어머니’나 모두 강자가 아니라 약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김애란의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 또한 택시기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홀어머니와 그 딸(달려라 아비), 옥탑방에 사는 가족(스카이콩콩), 불만증에 시달리는 ‘그녀’(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공원에 버려진 아이(사랑의 인사), 홀아버지와 사는 가난한 소년(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혼자 사는 여자(나는 편의점에 간다), 월세 쪽방에 사는 여자(노크하지 않는 집) 등으로 모두 약자, 혹은 소외 계층에 속한다. <모던 타임즈>의 챨리 채플린이 세상과 화해한 것이 아니듯, <흥부>가 낙천적인 것이 아니듯, 김애란 또한 긍정적이라거나 혹은 낙천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애란은 다만 그들을 어떤 형식을 통해서든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소외계층 주인공들이 (소설 속에서) 세상과 대면하는 방식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소외를 만들어내는 환경이나 적대 세력과 투쟁하기(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파토스적 효과를 연출하며 우회하기(김려령 소설 <<완득이>>) (3)소외를 만들어내는 환경과 세력에 야합하기(전광용의 단편소설 <꺼삐딴리>). (1)의 경우 소설은 이른바 ‘비극’을 연출하며 ‘눈물’을, (2)의 경우 ‘재미’를, (3)의 경우 풍자(諷刺, satire)2)를 만들어내게 된다. 김애란의 소설은? 맞다. (2)에 해당한다. 김애란은 소외의 고통을 파토스적인 웃음과 재미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재미있다.

 

  ... 미아보호소 안은 훌쩍이고 칭얼대는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우는 아이들 사이를 가까스로 헤쳐나간 끝에 나는 마이크 앞에 앉아 있는 여직원 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녀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최대한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헛기침을 한 뒤 한번 더 정중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

 (<사랑의 인사>, 소설집 p146)

 

  ... “비싼 거다. 많이 먹어라.” / 냄비를 비울 때까지 우리는 서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비지땀을 흘려가며 복어를 뜯었다. (중략) “복어는 말이다.” / 아버지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 “사람을 죽이는 독이 들어 있다.” / “.......” / “ 그 독은 굉장히 무서운데 가열하거나 햇볕을 쬐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복어를 먹으면 짧게는 몇 초, 길게는 하루 만에 죽을 수 있다.” / 나는 후식으로 나온 야쿠르트 꽁무니를 빨며 아버지를 멀뚱 쳐다봤다. / “그래서요?” / 아버지가 말했다. / “너는 오늘밤 자면 안 된다. 자면 죽는다.” / 짧은 정적이 흘렀다. / “뭐라구요?” / “죽는다고.” /  나는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요?” / “나는 어른이라 괜찮다.” / 나는 몸을 꼰 채 식탁 위에 수줍게 서 있는 아버지의 야쿠르트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주방에 커피를 시켰다. / “근데 왜 나한테 이걸 먹였어요?” / 아버지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 “네가.....어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어릴 때 이걸 먹고 견뎌서 살아남았다.” / “정말이요?” / “그럼.” / 아버지는 덧붙여 말했다. / “옆집 준구네 삼촌도 ......이걸 먹고 죽었다.” (중략) “아버지, 전 이제 어떡하죠?” / 아버지가 말했다. / “너는 오늘밤 자면 안 된다. 자면 죽는다.”  ...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소설집 p167)

 

  왜, 김애란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재미있게’ 말하는가? 즉, 왜 (1), (3)의 형식이 아니라 (2)인가?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체념인가, 아니면 자조인가. 혹은 문제를 현상 그대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것인가. 문제에 대항할 상대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몰라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인가. 그건 어느 누구도 모를 것이며 설령 안다고 해도 의미 없는 일이다. 확실한 것은, 김애란은 파토스적인 웃음과 재미를 만들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1)이든 (2)든, 혹은 (3)의 형식을 취하든 어느 쪽이든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문학은, 조짐과 징후를 포착해 전하는 의사소통이자 한 시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 문학은 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조짐에 관여한다. 그리고 문학은 반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처에 관여한다. 문학은 징후이지 진단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징후의 의사소통이다. ..."

(황지우 산문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31p)



각주)-----------------

  1) 파토스(pathos)는 '일시적인 격정이나 열정, 또는 예술에 있어서의 주관적/감정적 요소'를 뜻한다. 사전적 어의로는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말하며, 애상감, 비애감의 뜻을 가지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 특정한 시대·지역·집단을 지배하는 이념적 원칙이나 도덕적 규범을 지칭하는 에토스(ethos)와 대립하는 말이다.

  2) 풍자(諷刺, satire)는 개인·사회·정치 등의 악덕·모순·부조리·허세 등을 비판적 또는 조소적으로 빈정대는 표현기법이다. 어원은 일반적으로 <가득히 담긴 접시>라는 뜻의 라틴어 lanx satura에서 유래한다. 이 말은 뒤에<혼합물>,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를 조롱하기 위해 각각 다른 주제를 잡다하게 다룬 것>을 뜻하게 되었다. 풍자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비평적 태도를 취하므로 아이러니와 비슷하지만 아이러니보다는 날카롭고 노골적인 공격 의도를 지닌다. 또한 대상의 약점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데 있어 직접적인 공격을 피하고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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