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후기] 접시꽃 핀 마당 옆, 물든 느티나무 아래

by 이우 posted Nov 15, 2015 Views 6316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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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이우


이미지_학생들01.jpg

  서울에서 예천까지 편도 250Km, 왕복 500Km. 2012년부터 4년 동안 매년 열 번 넘게 길 위에 머무렀으니 지금까지 5만Km 이상을 달렸습니다. 적도를 따라서 잰 지구의 둘레가 4만 76.6km이니 그 동안 적도를 따라 지구를 한바퀴 돈 셈입니다. 길은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거나, 늦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졌습니다. 길 위에서 잠시 쉬자며 우연하게 들어섰던 예천읍 입구 풍년휴게소에는 백구 한 마리가 늘 우리를 맞았습니다. 낯을 익힌 백구가 접시꽃이 핀 마당 옆에서, 혹은 물든 느티나무 아래에서 꼬리를 흔들며 스프링처럼 튀어오릅니다. 학생들은 매년 새로운 얼굴들입니다. 교정을 떠난 이들은 우리를 기억할까요? 올해 경북도립대학교 인문고전 만남 <청년, 세상을 노마드하다>를 들었던 학생들은 가끔 우리의 얼굴을 떠올려 주기나 할까요? 그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이들의 길 위에 꽃잎이 되거나 물든 잎들 하나만큼이나 될까요? 혹여 그저 학사 일정의 하나려니 바람으로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요? 늦가을비 내리는 새벽, 상념이 가득입니다.

  아프고 슬픈 시간들이었습니다. 모두 저마다 차이를 가진 개별자라고 소리쳐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경쟁할 수밖에 없으니 친구를 밟고, 이웃을 짓누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칠 수 밖에 없다’는 그들 앞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먼저 삶을 살아왔으나 우리가 만든 세계는 이러했습니다. 관념이나 관습이나 신앙이나 이념들을 통해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이 형편 없는 사회와 전통 속으로 돌아가고, 이 말도 안되는 사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속시킬 개인들을 재생산합니다. 출생신고서에 기입되어야 태어날 수 있고 생활기록부에 기장되어야 자라나고, 주민등록부에 이름이 올라야 살아갈 수 있고, 사망신고서에 기표되어야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우리…. 이 세계에서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은 사회적인 절차의 과정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지 않나, 힘껏 살아가는 수밖에’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맞습니다. 인간의 탄생이 사회적으로 확정되고, 죽음 또한 사회적으로 확정됩니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삶도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사회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라면, 자신이 선택하는 온전한 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존의 의미 체계와는 다른 의미 체계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규정된 주체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순수한 결단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친 타자의 타자성이었습니다. 기존의 의미를 뒤흔드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우리는 의미를 새롭게 생산할 수 있었고. 우리는 이를 ‘노마드한다’고 이름 붙였습니다.

  ‘노마드한다’는 것은 새로운 가치의 창안, 새로운 삶의 방식의 창조, 그것을 통해서 낡은 가치를 버리고 낡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탈주선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탈주는 도주와 다릅니다. 도주가 동일성을 피하는 퇴행(退行)이라면, 탈주는 새로운 차이를 만드는 역행(逆行)입니다. 하나의 가치, 하나의 스타일, 하나의 영토에 머물지 않고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는 탈영토화 운동 속에서 사는 방식입니다. 새로운 영토를 만들거나 거기에 자리잡는 태도(재영토화)가 아니라,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든 항상 떠날 수 있는 태도(탈영토화)입니다. 노마드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몸 담고 있는 학교·회사·지역·사회를 벗어나 도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새로운 탈-기표를 생성하는 일입니다. 탈-기표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에게 기표(記標, signifiance)를 기입하는 학교·회사·지역·사회 안에 있으면서 기입되는 기표와 반-기표를 잘 살피고 물적(物的)인 배치물, 비물적(非物的)인 배치물을 이동시켜야 합니다. 

  ‘노마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순간, 우리는 프리모 레비(Primo Michele Levi, 1919년~ 1987년)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단말마처럼 외쳤던 “복종하는 기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 "복종하는 기술자, 혹은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는 이 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겨울입니다. 34번 국도 위로 잎을 떨구고 겨울을 기다리는 느티나무가 있던, 꽃 지우고 어깨를 움츠린 접시꽃 있던 그 마당에 눈발들이 날릴 겁니다. 백구 한 마리, 눈밭 위에서 호기롭게 흐린 하늘 쳐다보고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앞 날에 편위(偏位, Clinamen)로 낙하하면서 만나고 부딪치는 서설(瑞雪)이, 충만과 공백으로 가득한 아를르캥(Arleuin,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익살광대)이,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있으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는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가, 응축된 버추얼티(virtuality, 잠재성)가 터지는 액추얼티(actuality, 현실성)가 가득하길….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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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裸木(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황지우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민음사. 1985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