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붉은 수수밭 : 온 몸으로 밀고 나아가라

by 정현 posted May 22, 2015 Views 713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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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붉은 수수밭_s.jpg ? 2012년 노벨문학상은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중국작가 '모옌’이 수상했다. 그가 궁금했다. 중국의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인 계획생육을 정면으로 다룬 최근작 <개구리>를 읽었다. ‘모옌’을 만나면서 1988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영화 <붉은 수수밭>이 그의 원작<홍까오량 가족>임을 알았다. 20여년이 지나 영화 <붉은 수수밭>을 다시 봤다.

? 영화는 중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공리’의 앳되고 당찬 옆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시작된다. 18세의 추알은 십팔리 벽지에서 양조장을 하는 50대 문둥이 리씨에게 나귀 한 마리에 팔려가는 신세다. “가마에서 울지 마라. 불행해진다. 면사포를 벗지 마라. 액운을 당한다.”어머니의 덕담을 뒤로 붉은 면사포를 쓴 신부는 붉은 가마를 타고 집을 떠난다. 작렬하는 햇빛 아래, 먼지 날리는 신행길, 추알은 면사포를 벗고 번들거리는 지게꾼의 등을 엿본다. ‘면사포를 벗지 말라’는 기존 질서를 깨는 행동을 한다. ?전통대로 가마꾼들은 신부를 놀리기 위해 춤추며 노래한다. 힘 있게 뻗어나가는 풍악소리에 황토길 위 붉은 가마도 춤을 춘다. 흔들리는 가마 속의 추알은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결국 어머니의 덕담을 모두 거역한 셈이다.
??
? 십팔리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청살리 고개를 지나야 한다. 씨뿌리는 이, 거두는 이 없는 붉은 수수밭, 귀신이 나온다는 곳이다. 가짜 신창삼포의 출현으로 추얼은 가마밖으로 모습을 보이고, 가마꾼 위오찬아오와 눈이 맞는다. 혼례 3일후, 신행길에 오른 추얼은 수수밭을 지나다 복면을 쓴 위오찬아오와 다시 만나게 된다. 눈부신 햇빛아래 하늘을 차고 오르는 듯한 전통악기소리, 온 몸으로 바람의 춤을 추는 수수, 두 사람은 한 몸이 된다. 다시 신행길에 오른 추알의 웃음 머금은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수수밭을 가르며 위오찬아오의 노랫소리가 퍼져 나간다.

?
? ?누이야 대담하게 앞으로 나가라 ?
? ?뒤돌아 보지 말고 나아가라?
? ?모든 길은 하늘로 통하는 것 ? ??
? ?구천 구백 구십 구리

? ?누이야 대담하게 앞으로 나가라?
? ?뒤돌아보지 말고 나아가라?
? ?앞으로 너는 붉은 명주 탑을 쌓고?
? ?붉은 명주 구슬을 던져 나를 맞춰라?

? ? 함께 술을 들자 붉은 수수로?
? ? 빚은 붉은 고량주를 함께 마시자?


? 다가올 일을 예견하는 듯한, 위오찬아오의 노랫소리에 추알은 대담하게 나아간다. 딸을 나귀와 바꾼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고, 십팔리 마을로 돌아온 추얼은 남편 리씨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한다. 연장자인 라오한의 도움으로 양조장을 재건하는 추얼은 이익금은 모두 나누기로 하고, 신분도 없앤다. 가을에 거둔 수수로 9월 9일 중앙절에 고량주를 빚는 날과 추얼이 태어난 날이 같은 것은 수수의 질긴 생명력과 생명력 강한 중국 민초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유로 일상을 재배치하는 추알, 온 몸으로 삶을 밀고 나아가고 있다.?


? ...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1995) 의 철학을 특징짓는 명칭 가운데 가장 알려진 것은 ‘차이의 철학’이란 명칭이다. 차이의 철학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안에 차이를 만드는 것, 자신을 스스로 차이화하는 것이다. (중략) 나 자신에 대해 ‘차이를 만드는 것(make difference)'이고, 나 자신이 다른 것으로 변이하는 것이며, 이런 이유에서 나와 다른 것이 만나서 나 자신이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그린비, 2009) 중에서-


? 추알은 기존의 배치에 순응하는 삶을 거부한다. 전통적인 어머니의 덕담을 거스르고, 면사포를 벗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가마 안에서 울고, 자신의 꽃신을 내밀어 사랑도 능동적으로 한다. ‘자기 자신 안에 차이를 만드는’ 사유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야박하게 굴어 인심을 잃은 리씨와 달리, 양조장을 새롭게 재배치한다. 추얼 자신이 변이하여, 라오한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익금을 나누고 신분도 없애는 사회주의로 나아간다. 함께 잘 사는 옳은 방향으로 ‘다른 무언가’가 된 것이다.?무모할 정도로 추알을 사랑하는 위오찬아오는 새 술이 나오는 날, 추알과 함께 살 것을 공표한다. 중앙절에 빚은 새 술로 제를 올리며 라오한이 선창을 한다. 술잔 가득 채운 붉은 고량주를 들고, 모두 우렁차게 합창을 한다.


? 이 술을 드시면 일 년 내 무병하고?
? 이 술을 드시면 음양이 고르며?
? 이 술을 드시면 혼자서도 청살구가 두렵지 않으며?
? 이 술을 드시면 임금 앞에서도 당당하리라 ?
? 9월 9일 중앙절에 빚은 좋은 술입니다


? 위오찬아오가 심술로 오줌을 눈 고량주가 전에 없이 달고 맛이 좋아, ‘십팔리 홍고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라오한은 떠난다. 9년후, 아들 뚜쿠완은 건강하게 뛰어놀고, 술도가는 웃음소리 속에 분주히 돌아간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 침략으로 마을의 평화는 깨지고 만다. 군용도로를 건설하려는 일본군은 청살구 수수밭을 철거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한다. 항일 게릴라 공산당원 활동을 하다 잡혀 온 라호한의 인육을 벗기는 장면을 본 추알은 집으로 돌아와 아들 뚜쿠완에게 라오한이 담은 술을 따르고 제사를 올린다. 남자들에게 라호한의 원한을 갚을 것을 당부하자, 위오찬아오가 라오한이 중앙절에 불렀던 노래를 선창하고, 모두 결의에 차 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모두 온 몸으로 밀고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
?
? 사랑과 욕망, 새로운 생명,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 ‘십팔리 홍고량’은 일본군에 저항하는 무기가 된다. 라오한의 술독에 두쿠완이 오줌을 누는 의례는 질긴 생명력으로 삶은 계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척박한 곳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산 민초들은 결혼식에서 부르는 나팔을 불고, 터지지 않는 폭탄을 던지며 일본군의 트럭에 맞선다. 고량주에 불을 붙혀 온 몸으로 총알 속을 향해 내달린다. 이 때, 배고픈 남자들을 위해 밥을 가져오던 추얼은 총에 맞아 쓰러지고, 붉은 고량주와 그녀의 피가 수수밭에 낭자한다. 화염 속에서 아들 뚜쿠완은 아버지를 찾고, 위오찬아오는 휘청이며 일어난다. 쩡~~~~ 공간을 찌르는 전통악기소리와 둥 둥~~ 북소리가 들리면서 화면은 온통 붉은 색을 띤다. 때마침 일식이 일어나고, 피와 고량주가 뒤섞여 쓰러져 있는 추알을 바라보던 위오찬아오는 그 후, 모든 것이 붉게 보이다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간다. 바람에 온 몸으로 흔들리는 수수밭은 붉게 타오르고, 아들 ‘뚜쿠완’의 진혼곡이 흐른다.


? 엄마 엄마 극락에 가 순풍에 돛달고 큰 배 타고
? 엄마 엄마 극락에 가 탄탄대로에 좋은 말 타고?
? 엄마 엄마 극락에 가 이 세상 근심일랑 모두 떨쳐버리고?
? 엄마 엄마 극락에 가?


? 추알은 죽고, 위오찬아오는 시력을 잃는다. 청살리 수수밭은 사라지고, 전쟁으로 인해 민초들의 삶은 이지러지고 만다. 하지만 씨뿌리는 이 없고 거두는 이 없어도 다시 밭을 이루는 수수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중국인의 삶을 이어가라고 장예모 감독은 메시지를 전한다. 뚜쿠완은 온 몸으로 삶을 밀고 나아간 부모와 마을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저항으로 중국을 지켜낼 수 있었음을 배운다. 영화 초반 나레이션을 한 손자는 마을의 전설이 된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 삶은 그런 것이다. ?추알은 어머니의 덕담을 거스르고 면사포를 벗는다. 가마 안에서 울어 액운을 불러들이고, 능동적인 사랑을 하며 기존 질서체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양조장을 재건해 이익금을 나누고 신분을 없애고 일본군에 대항하라는 깃발을 든다. 온 몸으로 삶을 밀고 나가는 추알이 있어 죽음을 각오하고 일본군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추알과 마을 사람들은 죽었지만, 이들의 삶을 통해 후세대들도 온 몸으로 삶을 밀고 나아가며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처럼 삶은, 역사는 쉼 없이 요동친다. 강물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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