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키치(Kitsch) 디베이트_ <Debate>

by 이우 posted Sep 29, 2011 Views 735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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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디베이트.jpg

 ▲ 케빈 리가 지은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디베이트의 기법과 형식만 다룰 뿐, 디베이트 원론을 모른다.



  케빈 리(한국명 이경훈)가 지은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를 읽었다. 이 책은 ‘키치(Kitsch)’*다. 일부러 어색하게 꾸민 패션이나 복고풍의 유행, 혹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오늘날 예술장르로서의 ‘키치’가 아니라, 19세기말 독일에서 저급한 미술작품을 가리키는 원래 의미의 ‘키치’다. 19세기말 유럽에서는 돈을 벌 만큼 번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귀족들의 문화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예전에 귀족들이 하는 것처럼 그림이나 조각 같은 미술품을 구입해 집안을 장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돈을 벌었다고 해서 예술적 심미안이 갑자기 생길 수는 없다. 미술품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안목이 없었던 그들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미술품을 마구 사들였다. 이것이 키치문화의 시작이었다. ‘키치’는 저급한 미술품만 아니라 조악한 패션이나 취향을 뜻하는 말이다. ‘세계에 대한 가치관과 신념을 길러준다’는 토론의 본원적인 목적에 충실한 디베이트가 원본이라면, 그의 디베이트는 ‘키치’다.

 

  그가 말하는 ‘디베이트’는 그의 말대로 ‘종합예술’이다. ‘일주일 걸리던 자료 읽기가 30분이면 완성’되고(36p), ‘디베이트 주제를 일주일에 하나씩 바꾸면 1년이면 약 50개의 주제, 4년이면 200개의 주제’를 다룰 수 있는데 4년 정도하면 ‘모르는 것이 없게’ 되어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35p). 스피치 능력이 향상되고(35p), 듣기 실력도 늘어나는데(37p) 이 대목에서는 ‘청력이 개선된다는 말이 아니’라고 점잖게 설명도 덧붙여준다(37p). 에세이 연습이 되고(38p) 같은 투자, 같은 시간 대비 5배 교육 효과를 올릴 수 있다(39p). 여기에 리더십, 인성, 자원봉사, 시민의식까지 기를 수 있으며(40p~47p), 대학 갈 때도 도움된다(49p~54p)고 한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디베이트’를 교육을 위한 수단으로 한정시켰다고는 하지만, 토론의 원론인 ‘지식을 신념화·가치화한다’는 구절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는 ‘토의(討議, Discussion)’와 ‘토론(討論, Debate)’의 의미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그는 ‘디베이트를 디스커션(Discussion)과 비교해서 설명하곤 했’지만, 디스커션이나 디베이트나 모두 한국말로 번역하면 '토론'이라 불리기 때문에 그냥 영어로 ‘디베이트라고 불러야 한다’고 한다(26p). 나아가서 타협과 협상을 전제로 상정안을 결정하는 것이 토의, 신념을 토대로 사안을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토론이라는 원론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형식이 있다’, ‘없다’의 문제로 토론과 토의의 차이를 설명하고 만다(26p~27p). 어쩌면 그의 책이 아니라 그 자신이 ‘키치’일지 모른다.


 

  서당도.jpg


 ▲ 김홍도의 <서당도>. 우라나라 전통적인 교육은 토론식 수업이었다.

 


 

  그는 ‘한국사회, 토론의 전통이 없었다(55p)’고 오해도 한다. 초등학생에게 논리적인 오류를 설명할 때 해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설명하기에도 어이가 없다. 가까운 과거 조선시대 성균관 교육이 토론교육이었으며, 기초 교육을 맡았던 서당이 토론수업이었다. 훈몽자회나 동몽선습, 더 나아가 천자문**의 글자 수는 천 자가 되지 않았지만, 그 옛날 서당의 훈장은 1년여에 걸쳐 글자를 가르쳤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의 글자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天)이 왜 검으며(玄), 땅(地)이 왜 누런지(黃)를 설명하고 학동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 토론의 전통이 없어진 것은 이른바 개화기 때 ‘신교육’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그는 ‘키치’가 맞다.

 


     "과거의 어학 교육은 어학을 위한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받은 영어 교과서는 'I am a boy. You are a girl'로 시작되거나 심지어는 ‘I am a dog. I bark'로 시작되는 교과서도 있었지요.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누님들의 영어 교과서를 가져 오라고 해서 그 뜻을 물어보시고는 길게 탄식하셨지요.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천지와 우주의 원리를 천명하는 교과서와는 그 정신세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천지현황‘과 ’나는 개입니다. 나는 짖습니다‘와의 차이는 큽니다."


(신영복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돌베개, 2004년) 중에서)

 

 

  그는 디베이트의 원론에 접근하기보다는 형식에 집착하고 순서에 집착한다. ‘자, 이제 다시 디베이트 원론으로 돌아간다. 디베이트에서 디베이트 포맷(Debate Format, 디베이트 형식)이 문제가 된다’(하략, 93p)고 하면서 ‘링컨 다글러스 디베이트’, ‘의회식 디베이트’,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 ‘폴리시 디베이트’, ‘미국 의회식 디베이트 등의 다양한 형식을 소개해 준다. 토론대회를 말하는 것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토론의 형식은 토론이 가지는 원론적인 목적(지식을 가치화하고 신념화시킨다)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토론의 형식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평가를 하고 순위를 정하는 것은 토론대회의 중요한 포맷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목표일 순 없다.


   그가 실제로 한 디베이트 주제도 ‘키치’다. ‘교복착용(224p)', '남녀공학 찬반’(246p), '체벌‘(157p)' 등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미 10여년 전에 토론한 내용을 리플레이한다. 이들 주제는 이미 많은 찬성 논리와 반대 논리가 세워져 있고, 웹 검색 한 번만으로도 엄청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해묵은 주제들이다. 이 주제로 디베이트를 한다면, 토론자의 생각이나 신념,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 조사 여부, 지식의 축적 정도, 논리적인 말하기, 반박하는 법 등의 외면적인 요소만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어 결국 형식, 즉 그가 말하는 '포맷' 중심으로 디베이트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지식을 가치화하고 신념화해 세상에 대한 바른 시선을 길러준다는 토론의 원래 의미는 다 어디로 갔을까. 왜 그는 토론의 원론적인 가치를 버리고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 정도로 토론을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래서 그는 ‘키치’일 수밖에 없다. 토론의 원론이나 그 고유한 성향을 고민하고 분석한 것이 아니라 그저 평가나 결과에 치중하는 얄팍한 미국식 토론방식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아, 이 말은 해야겠다. 저자는 <부록4>(290p~295p)>에서 ‘한국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극성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디베이트 발전에 낙관적’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2011년에는 디베이트 붐을 확 일으켜 한국의 대세로 굳히는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지식을 신념화하고 가치화하는 ‘토론’이 아니라 교육 방편과 사회적인 성공을 하기 위한 툴(Tool)이 되는 그의 ‘키치 디베이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할까 걱정스럽다.


 

.................

  * 키치(Kitsch) : 독일어인 키치는 원래 ‘낡은 가구를 주워모아 새로운 가구를 만든다’는 의미였다. 여기서 파생된 verkischen이라는 동사는 ‘은밀히 불량품과 폐품을 속여 판다’, ‘다른 것으로 속여 물건을 강매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키치라는 말 속에는 원래 ‘윤리적으로 옳지 못함’ 또는 ‘진품이 아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단어가 ‘조잡한 물건’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860년 무렵 독일 남부에서였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토산품을 본뜬 전등갓이나 토인의 가면, 토속적인 액세서리 등 모든 조잡한 싸구려 장식품들을 뜻했다. 그러다가 차츰 실물보다 크거나 작은 복제품, 소재를 회반죽이나 플라스틱으로 모조한 것, 형태를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하거나 아니면 어울리지 않게 조합한 것, 값비싼 진품을 모사한 복제품이나 모조품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 가령 대학로나 홍대 앞 거리, 동화 속처럼 꾸민 가게 안에 촘촘히 진열된, 조잡스러운 액세서리나 간단한 생활용품들, 진짜 보석은 아니면서 플라스틱이나 수지(樹脂) 같은 것으로 보석을 흉내 낸 가짜 물건들, 예뻐서 사갖고 집에 오면 언제고 버리기 십상인, 그러나 저렴한 가격에 한 순간의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물건들, 이것이 바로 키치(Kitsch)다.


 ** 천자문(千字文)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천자문>을 천 자의 독립된 한자(漢字)를 모은 책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낱낱 글자가 아닌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하늘 천(天), 땅(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하듯 한 글자 한 글자가 모인 것이 아니라,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홍황(宇宙洪荒,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하는 식으로 여덟 글자를 한 묶음으로 125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책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에게 <천자문>은 낱낱 글자를 익히는 교재이기도 했지만 나아가 신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는 철학서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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