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후기] 2014년 경북도립대학교 인문고전 만남

by 정현 posted Aug 01, 2014 Views 598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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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래서 행복한가?
인문학서원 에피쿠로스 정현

  
후기00.jpg   2014년 경북도립대학교 인문고전만남 <행복한 삶을 위한 일곱 개의 주제>의 첫 강의를 하던 3월 27일, 제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글입니다.

  ‘생강나무 노란 싹이 트고, 목련 봉우리가 열리는 3월이면 예천에 있는 경북도립대 강의가 시작됩니다. 3년 째 이맘때면 경도대 가는 길목에 있는 풍년휴게소 나무 그늘 아래서 갑작스레 봄을 맞이합니다. 작년에 새끼 황구가 있던 자리에 큰 백구가 와 있는 것 말고는 여전합니다. 줄에 매여 마당에서 참새와 놀던 하얀 개가 나를 알아본 듯 꼬리를 살랑거립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이제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여름까지 월요일 해질녘에 나는 풍년휴게소에서 새끼 황구와 참새를 쫒는 하얀 개와 개판(?)치며 놀고 있겠지요.’

  갑작스레 봄을 맞이하며, 올해는 어떤 청춘들을 만날까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우리는 다른 목소리와 다른 표정, 다른 이름을 저마다의 모습으로 자기소개를 했지요. 모두가 차이로 존재해서 즐거웠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고민하는 청춘들이 많아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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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삶을 위한 일곱 개의 주제>인 ‘사랑’, ‘아름다움’, ‘돈’, ‘지위’, ‘주어와 목적어’, ‘행복’에 대해 강의를 듣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스스로 행복에 대한 답을 찾아가야 할 때쯤, 강의실의 빈자리가 늘어갈 때마다 청춘들이 걱정되어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고민하는 한 청춘이 말했습니다. ‘대학에 오면 하고 싶은 공부하면서,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을 꿈꿨는데 많은 과제에, 취업준비에, 학원 다니는 기분이예요.’ 지방행정과, 유아교육과, 소방방재과,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는 청춘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그래서 행복한가?” “아니오, 뭐, 지금 행복하기보다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 미래의 행복을 위해 참아야죠.”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부모님이 공무원 시험 보라고 해서 그냥 참고 준비하고 있어요.” 많이 바쁘고, 지치고, 참고, 또 참고 현재를 유보하며 사는 불안한 청춘들……. 슬펐습니다.

  4월 16일, 한국 사회에는 ‘세월호 참사’라는 부끄럽고, 미안한, 엄청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고 후, 100일이 지났는데도 우리 사회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친구를 잃은 아이들의 슬픔을 다독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추상성과 관념이 지배하는 사회, 인맥이라는 사회관계 자본 중심의 사회,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원하는 시장공리사회가 만든 이 사태’를 여러 방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당연히 바꾸고 변화시켜 가야겠지요. 그 변화의 첫 번째 실천은 바로 사람을 향한 ‘인문학’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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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론적인 공부 ‘인문고전 만남’ 강의와 실용적인 공부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과 ‘세월호 참사’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원하는’ 우리의 잘못된 시대의식이 만든 비극입니다. 열심히 공부해 행정공무원이 되고, 유치원 교사가 되고, 소방관이 되고,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돈보다 생명을 더 가치롭게 여기는 생각과 실천입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한 직업이 아니라 자신이 그 일을 정말 하고 싶은지, 행복한 어린이의 삶을 위해, 사람의 안전을 위해, 행복한 사회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갈 때, 크게 보장되지 않는 박봉에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행복’이란 단어는 추상적인 개념이라 저마다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기준이 다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고 했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매일 매일 선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선택은 달라집니다. 나는 글을 쓰거나, 노래를 하고 싶은데,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스스로 질문을 던져 봐야 합니다. ‘지금, 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자식을 잃어 슬퍼하고 친구를 잃어 아파할 때,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나, 무관심해질 때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 봐야 합니다. ‘지금,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저자 정은숙의 청소년소설 <정범기 추락 사건>으로 우리는 <행복한 삶>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양궁을 하던 범기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합니다. 처음에는 공부를 못 해 운동을 시작했고, 고2가 되자 공부가 하고 싶어 다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범기는 수학에서는 0점을 맞기 마련이고, 늘 반 평균을 깎아먹을 정도로 공부를 못합니다. 그렇지만 범기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범기의 이런 ‘선택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그리고 이 선택이 범기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팽팽하게 찬반의견이 오고 갔지요. ‘운동선수는 운동선수다워야 한다’거나,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생각의 덩어리인 관념과 개념으로 개별자인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정범기’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정범기’는 운동선수이기 전에 오롯한 한 사람이고, 지금은 0점을 맞더라도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열 여덟 살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청춘이지요.


  “ ‘나’라는 인간은 그저 단순히 우선 ‘존재’할 뿐이다. 나의 인격은 전에 미리 계획된 모델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정해진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나는 늘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또 그럼으로써 나의 ‘실존(實存, existence)’은 늘 열려 있고 나의 본질(용도와 기능)은 고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 다른 사물과는 달리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 그리고 이것이 사물과 차별되는 인간만의 존재 양식, 즉 ‘실존’이다. 사물은 존재하지만 인간은 ‘실존(實存)’한다.
-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 -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고민을 합니다. ‘나의 인격은 전에 미리 계획된 모델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정해진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의 본질을 논할 수 없l고, 내가 죽으면 그때서야 나의 본질이 무엇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0점을 맞더라도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고, 글을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싶으면 지금, 그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문제를 감수하려는 노력이 따라야겠지요.

  봄에서 초여름까지,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한 일곱 개의 주제>로 자기만의 해답을 찾기 위해 웃고, 고민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기존의 의미를 뒤흔드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서 우리는 의미를 새롭게 생산할 수 있습니다.’ 경북도립대의 청춘들과의 마주침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는 여정이 행복했습니다. 병헌, 현우, 진섭, 대한, 재훈, 성식, 다슬, 나인, 재용, 용원, 창환, 재천, 상구, 민아, 미연, 수진, 영예, 나리, 선영, 수경, 현준, 주섭, 지원, 진기, 세연, 정희, 미애, 그리고 김고은 선생님, 박해수 관장님 …….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