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후기] 2014년 경북도립대학교 인문고전 만남

by 이우 posted Jul 29, 2014 Views 547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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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이우


01.jpg ? 7월 16일,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가 있는 안산에서 국회까지 1박 2일 22시간 동안 길을 걸어, 죽은 친구를 추억하는 노란 우산을 쓰고, 유가족들이 뿌려주는 노란 종이 꽃잎을 밟으며 국회 정문에 도착했을 때, 국회 앞은 눈물 바다를 이뤘습니다. 유가족들이 그들을 끌어안고 울었고, 시민들이 울며 그 뒤를 따랐습니다. 추상성과 관념이 지배하는 사회, 인맥이라는 사회관계 자본 중심의 사회,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원하는 시장공리사회가 만든 이 사태 앞에서 우리는 절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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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요? 세계는 이러저러한 이유와 관계들로 질서 잡혀 있으며,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유로운 존재…. 나의 고유성은 세계의 이러저러한 질서 안에 사로잡히고 이러하지도 저리하지도 못할 때,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밀어올리지만 굴러떨어지는 시즈프스의 산정, 햇빛이 어깨 위에 내리쬐고, 그는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스럽지만 그는 상황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이 이야기는 시지프스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3월부터 약 3개월간 2014년 인문고전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일곱 개의 주제. ‘사랑’, ‘아름다움’, ‘경쟁’, ‘돈’, ‘지위’, ‘주어와 목적어’, ‘행복’….

? ?‘생각하는 우리’에게 이 일곱 개의 주제들은 개념과 사실, 내재성과 발현, 지시하는 것과 지시 받는 것으로 나눠집니다. 머리 속에 이미지화된 이 개념들은 사실 외부의 이러저러한 것을 지시하고 있을 뿐, 지시를 받고 있는 이러저러한 사실을 바로 표상하지 못한다는, 물자체를 그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골목에서 보았던 구체적인 길고양이를 ‘길고양이’라고 표상하는 순간 실제 길고양이는 사라집니다. 개념은 개념일뿐 사실이 아닙니다.

02.jpg ? 절망은, 혹은 좌절은 사실이 아닌 개념을 절대화함으로써 일어납니다. 신의 명령으로 언표 받은 시지프스는 가파른 시지프스산과, 굴러올려야 하는 무거운 돌과, 자신의 형벌을 절대적이라 믿으며 고통스러워 합니다.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그의 절망이고 좌절입니다.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요? 행복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 시지프스 산정을 깎아 고원을 만들고, 고원을 넓혀 매끄러운 공간으로 만들면 시지프스는 더 이상 무거운 돌을 굴러 올리지 않아도 됩니다. 높은 곳이 없고 낮은 곳이 없으니 더 이상 경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문학과 사학, 철학으로 일곱 개의 주제를 살피고 들뢰즈에 닿았습니다. 행복할 수 있다는 조건은 내 안에 있는 것이라 외부에 있습니다. 시지프스 산정을 그대로 두고, 무거운 돌을 굴러올리며 내 안의 마음을 다잡는다고 고통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나’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외부를 그대로 두고 나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혹은 외부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 자신을 바꾸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우리를 절망 안으로 밀어넣습니다. ‘꼭 경쟁해야 하는 것일까요’라는 물음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로 답이 돌아올 때 나는 좌절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요? 개념과 사실, 내재성과 발현, 지시하는 것과 지시받는 것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홈 파기와 매끈하게 하기라는 조작에서의 다양한 이행과 조합이다. 즉 어떻게 공간은 그 안에서 행사되는 힘들에 구속되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홈이 파이는 것일까? 또 어떻게 공간은 이 과정에서 다른 힘들을 발전시켜 이러한 홈 파기를 가로질러 새로운 매끈한 공간을 출현시키는 것일까?”
- 질 들뢰즈와 팰릭스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새물결, 2003) p.953

05.jpg ? 우리를 아프게 하는 홈 패인 ‘사랑’, 오히려 스스로를 추하게 만드는 홈 패인 ‘아름다움’,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홈 패인 ‘경쟁’, 존엄과 경외심·기쁨과 슬픔마저 자산화하는 홈 패인 ‘돈’, 달성하지 못해 불안해 하고 달성하고도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홈 패인 ‘지위’…. 이 홈을 넓혀 매끈한 공간을 출현시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외부의 관계망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 ‘아름다움’, ‘경쟁’, ‘돈’, ‘지위’의 코드(code)를 읽어내고 살폈습니다. 우리를 옭매고 있는 기존의 이 코드를 풀어헤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야,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매끈한 ‘사랑’, 모두를 아름답게 하는 매끈한 ‘아름다움’, 일등도 꼴찌도 없는 매끈한 ‘경쟁’, 거래하지 않아야 할 것을 거래하지 않는 매끈한 ‘돈’, 낮은 곳도 높은 곳도 없는 매끈한 ‘지위’를 출현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 메시지는 얼마나 가 닿았을까요? 매주 8시간, 매주 448Km, 3개월 동안 5,000Km를 달리며 만났던 2014년 인문고전 만남….

?“노마디즘(nomadism)은 새로운 가치의 창안. 새로운 삶의 방식의 창조, 그것을 통해서 낡은 가치를 버리고 낡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탈주선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탈주는 도주와 다르다. 도주가 동일성을 피하는 퇴행(退行)이라면, 탈주는 새로운 차이를 생성하는 역행(逆行)이다. 노마디즘이란 차이를 생성하는 일이다. 하나의 가치, 하나의 스타일, 하나의 영토에 머물지 않고 반대로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는 탈영토화 운동 속에서 사는 방식이다. 노마디즘은 새로운 영토를 만들거나 거기에 자리잡는 태도(재영토화)가 아니라,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든 항상 떠날 수 있는 태도(탈영토화)를 말한다.”
- 2014년 인문고전 만남 교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