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메디어 온 미디어

by 이우 posted Oct 13, 2013 Views 816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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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아’도 ‘미디어’도 없는, ‘메디아 온 미디어’
- <메디아 온 미디어(MEDEA on media)>(에우리피데스 원작 | 김현탁 연출 | 극단 성북동 비둘기) -

 

 

이우

 

 

 

 

IMG_9343_ss.jpg    201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메디아 온 미디어(MEDEA Oom media)>(에우리피데스 원작 | 김현탁 연출)를 봤다. 이 연극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평은 ‘그리스 시대의 악녀'라 불리는 ‘메디아(메데이아의 영어식 발음)’와 현대의 ‘미디어(media, 대중매체)’를 중의(衆意)해 미디어의 강력한 자극에 익숙해져 무감각해져 가는 ‘현대인들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이 연극 어디에도 이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 느닷없이, 마지막 장면에 폴리스 라인을 하나 쳐놓고 살해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모두다. 이것도 극의 내용과 호응하지 못 하고 느.닷.없.다.

 

  비판(批判)이란 일상에서 말하듯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려 평가하고 판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인간의 지식과 사상, 행위 따위에 대한 기원, 타당성, 한계 등을 명백하게 평가하는 것’이어야 한다. 옳고 그름에 대한 고민 없이 무작정 현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두고 ‘비판한다’라고 할 수 없다. 미안하지만, 이 극은 ‘비판’은커녕 현대 사회의 동일성에 포획된 채 단순한 아이디어(연극 기법)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메디아(medea)

 

  ‘메디아’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서구 고대 3대 비극 작가로 불리는 ‘유리피데스’의 비극 중 하나이다. ‘메디아’는 사랑하는 남자 ‘이아손’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배신하고 남동생을 살해했을 뿐 아니라, ‘이아손’과 결혼해 ‘아이온’의 정적인 펠리아스를 무참하게 죽인다. 또 ‘메디아’는 ‘이아손’이 크레온 왕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려고 하자 배신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크레온 왕과 그의 딸을 독살하고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두 아이마저 살해하는 비극이다.

 

  배신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랑하지만 자신의 두 아이를 살해하는 ‘메디아’는 아이를 죽이기 전에 독백을 통해 ‘자신의 격정이 숙고보다 강력하다’는 유명한 대사를 읊는다. ‘메디아’의 남자를 향한 ‘사랑’과 ‘복수심’, ‘자식들에 대한 애정’과 그리고 ‘파국’…. 이 비극 앞에서 당시 관객들의 상념은 뒤죽박죽이 되었을 것이다. ‘메디아’를 ‘악녀’나 ‘교활한 여자’, 혹은 ‘색정녀’라 욕해야 하겠는데 남편에게 배신당하는 ‘메디아’의 ‘격정’을 이해하는 사람들….

 

메데이아.jpg   기원전 400년 전의 이 비극이 지금도 회자되는 것은 이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정신과 욕망의 분열. 이 이유로 많은 화가들이 ‘메디아’에 대한 그림을 그려왔으며, 심리학자들은 ‘메디아’를 사례로 들며 ‘인간의 이중성과 분열증’을 들먹였고, 도덕주의자들은 ‘도덕의 중요성’,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억압’, 운명주의자들은 ‘여성들의 비애’를 이야기해 왔다. 정작 중요한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논의는 빠트린 채…. 그리고 이 비극은 극단 <성북동 비둘기>에 의해 연극 <메디아 온 미디어(MEDEA Oom media)>로 재구성되었다. 그러나 형식만 구성했을 뿐 역시 정작 중요한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논의는 없었다.

 

  연극을 본 관객들은 역시 예전이나 다름없이 ‘인간의 이중성과 분열증’, ‘도덕의 중요성’,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비애’, ‘남성의 폭력’을 이야기했다. 2011년 PAF 연극연출상, 2012년 한국연극 선정 <올해의 베스트7>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 연극마저 이러하다면, 우리는 재현(再現)이라는 근대 예술을 넘어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표현(表現)하는 현대 예술에 도착할 수는 있을까. 우리는 언제까지 근대적인 에피스테메(episteme, 내재화된 사회적 무의식)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미디어(media)

 

  이 연극은 기원전 431년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디아(medea)>와 대중매체를 뜻하는 ‘미디어(media)’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아이디어’만으로 1시간여 동안의 극으로 구성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디아’가 각 10개 채널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기자들 앞에서 ‘메디아’가 인터뷰를 하는 것이 첫번째 채널이다.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감정표현을 하다 무대 뒤 조명이 어두워지자 침을 뱉는다. 기자들은 그녀가 입은 패션을 평가하거나 그녀의 불쌍한 사연에 자신의 의견을 보탠다. 매스 미디어에 포획된 대중(mass)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등장 인물 중 누구도 생각이나 고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진폭이 턱없이 작다.

 

    채널이 바뀌면 신파극으로 넘어 간다. ‘메디아’를 쫓아내는 아버지와 나가지 않으려는 ‘메디아’가 과장된 말투로 대화를 나눈다. 스태프로 보이는 4명의 남녀가 끊임없이 대놓고 나와 물을 뿌리고, 닦는 행위를 반복하며 신파의 특징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리얼 토크쇼가 펼쳐지기도 한다. ‘메디아’와 남편 ‘이아손’은 ‘솔직담백한’ 설전을 펼치고 남편의 애인과 한바탕 싸움도 벌인다. 거침없이 내뱉는 남편으로 향한 욕설과 머리를 잡고 싸우는 여자들의 모습에 관객들은 박수를 치거나 야유를 보낸다. 어김없이 성인 채널도 등장한다. 배우들은 교합 장면을 보여주고 자극적인 소리도 낸다. 할리우드식의 첩보 영화도 한 채널이다. ‘메디아’는 스파이가 되어 남편을 비롯해 자신을 배신한 그 모두와 총격전을 벌이며 그들을 살해한다. 신파극, TV의 리얼 토크쇼, 이종격투기, 댓글 달기, 일본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 미국 영화를 연상시키는 총격전, 일본 엔카 공연 등으로 표현되는 각 미디어 채널마다 고대의 ‘메디아’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대중매체의 여주인공이 되어 등장한다.

 

공연02_ss.jpg   그러나 숨어 있는 것도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이 이것이 이 연극의 전부였다. 극의 구성과 형식은 있었지만, ‘메디아’가 왜 ‘악녀’가 되었는지, 현대 ‘미디어’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가 없었으며 논증도 없었다. ‘무조건 나쁘다’.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 보니 이 연극을 본 관객들은 메시지를 전달받지 못 하고 그저 박수를 치거가 야유를 보내다가 아무런 고민 없이 ‘여자는 불쌍한 존재야’를 되뇌이며 객석을 빠져나왔다.

 


엇갈린 ‘메디아’와 ‘미디어’

 

   이 연극은 고대의 비극 <메디아(medea)>를 공연 속에 끼워 넣어 변주하면서도 비극 <메디아>의 핵심 주제인 ‘사랑’에 대한 해명이 없으며, ‘메디아’를 각 10개 채널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대중매체(mass media)의 폭력성’을 비판한다고 하면서도 메시지에 대한 어떤 논증도 보여주지 않는다. 느닷없이 폴리스 라인을 하나 쳐놓고 살해 현장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 이 연극이 보여주는 복선이지만 이 신호는 너무 미약하다. 이 연극을 소개하고 있는 <한팩뷰(HanPAC View)> 2013년 10월호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그러나 그 공연 내내 어디에도 ‘그녀의 비극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말 뿐이다.

 


IMG_9346_ss.jpg  “고향과 아버지를 버리고 모든 헌신해 사랑을 쫓아 왔지만 결국에는 배신당한 뒤 복수를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인 여자, 메디아. 그녀의 비극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그녀가 비극적 운명에 빠져 몸부림치고 있던 사이, 우리는 모두 어디에 있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의 비극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 <한팩 뷰(HanPAC View)>(2013년 10월호, p.21)

 


  같은 면에 연출가 김현탁을 소개하면서, ‘김현탁은 국내외 유명한 명작들을 특유의 도발적이고 신랄한 감각으로 해체?재구성하여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동시에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미적 형식을 추구한다. 그에게 있어 해체와 재구성의 목적은 작품의 가장 깊은 내적 진실을 폭로하고 그 진실에 어울릴 법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없다. ‘도발적’이기는커녕 ‘진부’하며, ‘신랄’하기보다는 ‘둔탁’하다.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무디다.’ ‘깊은 내적 진실’을 보여주기는커녕 ‘경박’하고 그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잘 봐주면, 한 가지는 맞다. '매 채널마다 보여주는 몸의 운용'. 즉 ‘새로운 형식’이라는 것이다. 고대 비극의 주인공인 ‘메디아’를 대중매체 속으로 불러들인, 제목 그대로 ‘메디아 온 미디어(MEDEA on media)’다. 봐 줄만한 것이 또 있긴 하다. 김미옥을 비롯한 이진성, 신용진, 홍기용, 최수빈, 이경미, 신현진, 최민지 8명의 출연진의 연기도 봐 줄만 하다. 그러나 이것이 이 연극의 전부. 이 연극은 기법만 있고 내용이 없으니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 비극 <메디아(medea)>의 주제인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고 대중매체 ‘미디어(media)’의 구체적 고민이 없는 연극 <메디아 온 미디어(MEDEA on media)>는 엇갈린 ‘메디아’와 ‘미디어’의 만남, 혹은 잘못된 ‘메디아’와 ‘미디어’의 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