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내 어머니의 모든 것_이우

by 이우 posted Nov 21, 2012 Views 11409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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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내 머어머니의 모든 것.jpg

 

 

  · 제목 : 내 어머니의 모든 것(원제 : Todo Sobre Mi Madre/ All about My Mother)
  · 개봉 : 스페인, 프랑스 | 101 분 | 2000년 1월 29일
  ·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 출연 : 세실리아 로스 (마누엘라 역), 마리사 파레데스 (위마 로조 역), 칸델라 페냐 (니나 역), 안토니아 산 후앙 (아그라도 역), 페넬로페 크루즈 (로자 수녀 역)
  · 수상 : 72회 아카데미시상식(2000) 외국어영화상 , 57회 골든글로브시상식(2000) 외국어 영화상, 52회 칸영화제(1999) 감독상(페드로 알모도바르)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주인공 ‘마누엘라’(세실리아 로스 역)는 혼자 아들 ‘에스테반’(엘로이 아조린 역)을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고 오는 길에 사고로 아들을 잃습니다. ‘마누엘라’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찾으러 나서고 그 과정에서 폭행당하는 성도착자 매춘부 ‘아그라도로’를 도와주게 됩니다. ‘아그라도로’는 ‘에스테반’의 아버지와 살았던 사람. 이를 통해 ‘마누엘라’는 ‘에스테반’의 아버지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롤라(토니 칸토 역)’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러다 ‘롤라’의 아이를 가진 ‘로사’ 수녀(페넬로페 크루즈 역)와 만나게 되고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에 걸린 ‘로사’는 아이를 낳고 죽습니다. 아, 이 아이의 아버지 또한 ‘롤라’였습니다. ‘로사’의 아이를 돌보기로 마음먹은 ‘마누엘라’는 아이 이름을 ‘에스테반’이라 짓고 아이를 돌봅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이 영화, 아픕니다.

 

  등장 인물의 행장(行狀)이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주인공 ‘마누엘라’는 트랜스젠더 ‘롤라’를 사랑하고 아들 ‘에스테반’을 낳습니다. ‘롤라’를 사랑했던 ‘로사’는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에 걸리고 ‘롤라’의 아이 ‘에스테반’을 낳다가 죽습니다. ‘에스테반’ 또한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의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성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마약과 매춘…. 혹자의 평처럼 ‘어두운 욕망’이 꿈틀대고 있는 세계가 이 영화의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 색채로 친다면 어두운 블랙(Black)입니다.

 

   그러나 감독은 이 어둠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좋다, 나쁘다, 혹은 이러 해야 한다, 그리 해야 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아래에서 위로 구사하며(Low Angle) 담담하게 그들을 비추고 있을 뿐입니다. 1999년 제52화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던 것은 카메라가 향하는 이 시선 때문일까요. 묵묵하게 바닥에서 하늘로 앵글을 맞추며 감독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감독상을 받고 기자와 인터뷰를 하며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희망을 만드는 사람은 어머니와 천재 뿐이다.”

 

  그래서, 또 아픕니다. 주인공 ‘마누엘라’는 단순히 아들 ‘에스테반’의 어머니인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내 어머니의 모든 것(All about My Mother)>. 어머니 ‘마누엘라’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이란 아이를 낳고 한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것.  이 숙명과 같은 ‘모성(母性)’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여성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마약과 매춘으로 이루어져 있는 ‘어두운 세상’이지만 ‘어머니’가 있어 세계가 이어지고 다시 이어져 가는 것. 문득 김경주 시인의 시가 생각나 또, 아픕니다. 김경주 시인은 ‘꽃 무늬 팬티’를 입는 어머니를 통해 여성의 삶을 들어다 보며 아련한 아픔을 전합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일상적으로 가치를 두지 않는 ‘어머니’라는 행장(行狀)을 눈 여겨 보고 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 색채로 친다면 어두운 핑크(Pink)입니다.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도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꽃들은 시들지 않으리라

 

    뜬 눈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똑똑 떨어진다

 

    눈덩이 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

 

    -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코리아) 중에서


 

  어쩌면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이율배반적일지 모릅니다. 누군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인 성(Sex)으로 세계에 던져집니다. 그들은 생명을 ‘잉태’해야 하는 생물학적인 구조로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주체(主體, Subject)이기 때문에 ‘삶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경주 시인식으로 말하면 ‘꽃무늬 팬티’를 입는 여자고, 스피노자(spinoza)식으로 이야기하면 '코나투스(Conatus)'를 가진 주체입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만 모든 사물은 자신의 존재 안에서 지속하고자 노력하는 코나투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을 정신과 육체, 즉 이원적으로 파악했던 데카르트와는 달리 스피노자는 이 코나투스라는 개념으로 정신과 육체를 통일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코나투스(Conatus)는 ‘자아를 보존·발전·완성하려는 욕구 내지 노력’을 의미합니다. 여성 또한 삶의 주체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유쾌하고 즐겁게 증진시키려는 의지, 즉 코나투스(Conatus)를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성은 잉태를 감당해야 합니다. 잉태가 유쾌하고 즐겁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유쾌하기보다는 고통스럽고, 즐겁기는커녕 슬퍼지기만 한다면 어떨까요. 설령 잉태라는 것이 고통과 슬픔이라고 하더라도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유물론적 측면, 즉 생물학적인 성(性)을 거부할 수 없을 겁니다. 싫어도 고통과 슬픔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다 갈등과 문제가 쌓이고 가끔 폭발하기도 합니다. “난, 자유롭고 싶어!”

 

   문제는, 지금 우리가 이 지점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 서 있기 때문에 ‘어머니’를 생각하면 많이, 아주 많이, 아픕니다. 내가 아프고, 이 땅의 여성들이 아프다는 것은 우리를 지배하는 구조가 왜곡되거나 뒤틀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이런 종류의 아픔은 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하는 일입니다. 몸은 그렇지 않은데 내 정신은 다른 것에 가치를 두고 있고, 그 가치가 잉태를 고통스럽게 하고 슬퍼지게 만드는 것이지요. 영화 속에서처럼 성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는 것은 성적으로 고통과 슬픔이 많은 사회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생물학적인 성의 구분인 ‘섹스(Sex)'와 더불어 사회적 역할로 규정하는 사회적인 성 ’젠더(Gender)'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가끔, 영화에서처럼 성의 전환(trance)을 꿈꾸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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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피노자는 그의 책 <에티카(Ethica)>에서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영혼이나 정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합니다. 스피노자는 오히려 ‘신체가 활발하지 못할 경우 정신이 사유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며 신체가 잠들면 아무 것도 하지 못 한다‘고 정신의 지배를 강조하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를 공격합니다. 신체의 능력을 무시하고 정서에 대한 정신과 의지의 절대적 지배를 강조한 데카르트의 주장에 반기를 들며 심지어 ‘인간의 정서와 행동을 이해하기는커녕 그것을 저주하며 조소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한다’며 대놓고 데카르트를 거론합니다. 그러면서, ‘신체의 능력에 저해되는 것에 대한 관념은 자신의 정신의 능력, 즉 사유 능력에도 저해되기 때문에 우리의 정서가 정신으로 하여금 신체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을 상상하도록 자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다 결국 교회로부터 파문당하기도 하지요.

 

 

  “그들은 다음과 같이 굳게 확신한다. 신체는 정신의 명령에 의해서만 운동하기도 하고 정지하기도 하며, 오직 정신의 의지나 사고력에 의존하여 여러 가지를 행한다. 왜냐하면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 것도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정신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은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적으로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신체의 이러저러한 활동이 신체의 지배자인 정신에서 생긴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의 <에티카(Ethica)> 중에서

 

 

  이 영화를 보고 슬프고 아픈 것은, 우리 세계가 ‘신체의 능력에 저해되는 것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고, '신체의 능력을 무시한 채 정신과 의지의 절대적 지배'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늦은 나이에 자식을 둔 이문재 시인이 한 말처럼 ‘생명이 탄생했는데 즐겁고 기쁘다는 생각보다 언제까지 일해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구조가 있지요. 이 지점에 선 우리가 만들어낸 문제와 갈등입니다. 다행스럽게, 이 영화는 생명이라는 이유로만으로 ‘에스테반’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마누엘라’의 모습으로 마무리합니다. 에이즈(선천성 면역 결핍증)를 갖고 있는 ‘에스테반’을 그의 할머니가 멀리하자 ‘마누엘라’가 ‘에스테반’을 안고 길을 나서는 겁니다. 할머니가 손자 ‘에스테반’을 싫어할 리 있겠습니까. 그저 그 아이를 안을 만한 넉넉한 구조가 아니었을 겁니다. 어쩌면, 작은 생명을 오롯하게 생명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하는 사회적인 명령을 받고 있겠죠. 지젝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이데올로그니까요.

 

   인도에는 샤크티파(派)의 경전 중 하나인 <탄트라(Tantra)>가 있습니다. 몸을 부정하고 정신을 가치롭게 여기는 서양 근대철학적 경향이 <탄트라>를 이상하게 왜곡하고 확대·재생산해 남녀 사이의 교합의 기쁨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원래 탄트라의 의미는 세계를 창조해내는 우주의 중심, ‘가장 뜨거운 곳’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곳은 여성의 자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신체를 긍정하는 동양의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신체의 작용’을 긍정할 수 있을까요. 신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그 기능을 하대하지 않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처럼 존경과 경의를 담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여성의 잉태를 제스춰가 아니라 진정한 축복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여성 스스로 자신의 잉태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잉태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이 될 수는 없을까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라는 이 스페인 영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참 많이, 아프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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