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첫사랑 두근두근> 이상한 삶

by 에피 posted Oct 19, 2011 Views 7979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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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1년 10월 17일 (월) 저녁7시-9시
□ 장소: 사회과학서점 풀무질
□ 토론책: <첫사랑 두근두근>(윤동주 외 85인 지음/ 이광호, 김선우 엮음 / 문학과지성사)
□ 참석자: 김재영, 송현정, 정창원, 이우 곽원효, 정현, 은종복
□ 진행: 은종복 (풀무질 주인장 풀벌레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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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란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적은 것이다. 마음 속에 있으면 지(志)라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 정(情)이 마음 속에 움직일 때, 시인은 그것을 말로써 표현한다.  ―신위-”

 

  시를 읽는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이다.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더욱 어려운 일이다. 소설이나 철학, 역사 토론 모임에서는 자유 토론, 찬반 토론으로 다양한 의견으로 주제에 가닿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책을 제대로 읽으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입장을 세우기가 쉽다.  하지만 시는 참 난감하다. 시인의 압축된 언어를 읽어내기가 어렵고, 짧은 문장들도 쉽게 읽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읽는 이의 주관적인 느낌에 의존하다보니 호불호가 분명하다. 해석 또한 읽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풀무질 시모임에 두 번째로 참석했다. 국문학 전공자, 퇴직한 증권회사 직원, 50Km 걷기를 즐기는 주부, 가수, 휴학중인 대학생, 서점 주인 6명이 모여 시모임을 가졌다. <첫사랑 두근두근> 시집 가운데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고, 돌아가면서 읽은 느낌을 나눴다. 먼저 정창원님이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를 낭송했다.

 

 

 첫 번째 시 : 「즐거운 편지」(황동규) /정창원 낭송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댈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정창원) 연애, 사랑에 대한 정의가 멋있게 표현된 시다.
  (은종복)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절규가 느껴져 읽으면서 속울음이 맺혔다.
  (이  우) 현재진행중인 사랑의 느낌이다. 사랑이 삶 전체에 기반되어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김재영) 외사랑, 짝사랑의 아픔이 전해진다.
  (송현정)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대는 내 속의 또 다른 나로 해석했다.
  (이  우) ‘인생’으로 해석하니 시가 재미없어진다. 칙칙해진다. ㅋㅋ 사랑은 한 사람을 통해 우주 전체를 사랑하는 것, 시인은 사랑중이다.

 

 

  두 번째 시 : 「낡은 집」(이용악) / 김재영 낭송

 

  (김재영) ‘시란 이런 거구나’ 시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한 시다. 일제 강점기의 상황 생생하게 그려진다.
  (은종복) 정지용 ‘향수’ 가 떠올랐다. 카프 작가의 어두운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깔려 있다.
  (이  우) 글을 늘어 놓으면 산문이고 줄여 놓으면 운문이다. 「낡은 집」은 산문에 가깝고, 이용악 시인은 소설이 잘 맞는 것 같다. 이미지는 그려내는데, 밀어붙이는 힘이 부족하다.

  (정창원) 비슷한 생각이다. 보편적인 그림이 그려져 이미지가 너무 평이하다.
  (김재영) 쉽게 다가오는 시가 좋다. 그래서 「낡은 집」이 좋다.
  (이  우) 사건을 시로 쓸 때는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형의 시어가 들어가야 힘이 생긴다.

 

 

  세 번째 시 : 「빈 집」「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 이우 낭송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作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이  우) 기형도 시를 아주 좋아한다. 밑바닥에 떨어져 절망해 본 삶이 느껴진다.  기형도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했다. 하지만 자신이 꿈꾸는 세상과 달라 시니컬했다. 기형도는 시를 쓸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은종복) 세상, 우주를 알고 싶었는데 절망의 외침에서 단 한번도 사랑하지 못함을 알게 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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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시 :「시다의 꿈」(박노해) / 은종복 낭송

 

  (은종복) 진짜 시다.
  (이  우) 한 때 얼굴 없는 시인으로 박노해가 있다, 없다 등 말이 무성했다.

 

 

  다섯 번째 시 : 「갈대」(신경림) / 송현정 낭송

 

  (송현정) 걷기 동아리에서 오랜 시간 걸을 때, 앞사람 발 뒤꿈치만 보이고 아무 생각없이 걷는다. 마음속에 무언가가 둥둥 떠오른다. 50Km를 걸을 때 아침 9시에서 밤 9시까지 걷는데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둥둥 떠오르는 것  같다. 「갈대」에서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부분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여섯 번째 시: 「제도」(김승희) / 정현 낭송

 

  (정현) 아이에게 제도 교육을 시키면서 학교 밖을 기웃거리며 늘 경계에서 고민한다. 얼마 전 둘째 아이가 담임 선생님이 꾸중하며 전학을 가든가 학교에 오지 말라는 말을 했다고 다음날 학교를 가지 않았다. 김승희의 시, 「제도」를 읽으며 크게 공감했다. “나 그토록 제도를 증오했건만 엄마는 제도다. 나를 묶었던 그것으로 너를 묶다니! 내가 그 여자이고 총독부다. 엄마를 죽여라! 랄라.”

 

 

  마지막 시: 「삼미 슈퍼스타즈 구장에서」(이장욱) 정창원  낭송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청춘 정창원 님이 「삼미 슈퍼스타즈 구장에서」(이장욱) 를 낭송했다. 시 낭송이 끝나고 늦은 저녁까지 시모임을 하고 있는 우리는 ‘이상한 삶’ 이라고, 모두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ㅎㅎ  zz  ㅋㅋ

 

  삼미 슈퍼스타즈 구장에서 / 이장욱

 

  그때 야구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리는 비를,
  내리는 비를,
  내리는 비를,
  혼자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