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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책을 읽고, 슬퍼하다 _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

by 이우 posted Oct 02, 2011 Views 1325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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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로부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저, 이진우ㆍ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마크 얼스 저, 강유리 옮김, 쌤앤파커스 2009)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1)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1906년 출생한 독일인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친위대의 중간 관리자였으며 유태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2)의 집행자였다. 나치 정권 하에서 승진하여 1941년 게슈타포의 유태인 문제 담당부서인 IV B4의 책임자로 임명되고, 1942년에는 사망자가 4백만에서 6백만으로 추정되는 <유태인 절멸 계획>의 수송 담당 책임자가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살던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첩보부에 의해 1961년 5월 11일 체포되어 이스라엘 법정에 섰다. 그는 1961년 12월 15일 금요일 아침 9시에 사형 선고를 받고 1962년 5월 31일 자정에 교수형 당한다.

 

    여자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정치철학자’로 불리는 유대인 출신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 나치의 유대인 학살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전격 체포돼 이스라엘에서 전범재판을 받게 되자 아렌트는 예정된 대학 강의도 취소하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미국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법정을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그 남자와 그 여자는 만났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그는 63년 2월부터 5차례 기사를 연재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그 기사들을 엮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르헨티나로 피신해 1945년에서 1946년까지 있었던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피한 아이히만이 1961년 이스라엘 첩보부에 의해 체포되어 자신이 학살했던 유대인의 땅 한복판에서 재판을 받게 되자 사람들은 이 ‘희대의 악마’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기자들은 앞 다투어 이 ‘악마’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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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로부터) 홀로코스트,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재판정의 아이히만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기자들은 모두 흥미를 잃고 돌아섰다. 그에겐 어떤 특징적인 면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치당의 강령도 알지 못했고 히틀러의 <나의 전쟁>도 읽지 않았다. 아이와 아내가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고,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군인이었다. 그저 명령 받은 대로 유대인을 수용소에 분배하는 일을 착실히 수행했다. 그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꿈을 위하여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독일인이었지만 그는 유대인 독립국가 건설 운동인 시온주의(Zionism)3)에 열렬히 공감했다. 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실천했다는 점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이히만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양심은 군인으로서 상부의 명령을 정확히 행동에 옮’기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피고석에서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 아렌트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양심이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여건에 제약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히만은 난데없이 나타난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규칙과 명령, ‘주어진 이상’에 맞추려고 노력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하여 ‘악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악의 평범성’을 쉽게 이야기하자면,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 당시 독일 상황에서 충실한 가장으로, 그리고 독일인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군인으로서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그 결과는 유대인 6백만여 명을 학살하는 반인륜적인 악행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당시 아렌트 기사의 파장은 엄청났다.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을 학살한 ‘악마’를 변호하는 듯한 내용을 보고 유대인들은 ‘한나 아렌트’를 ‘반역자’라고 칭하기도 했으며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렌트는 책을 발간하고 난 후에는 숨어살면서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이히만과 학살 현장에서 핍박을 받던 유대인 한나 아렌트 모두가 유대인이 ‘적’이 되었고, 한나 아렌트는 당시 독일에서는 나치를 피해 살아야 했듯 책을 발간하고 난 후 같은 동족인 유대인을 피해 살아야 했다.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저, 이진우ㆍ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평범’한 아돌프 아이히만을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자 ‘희대의 악마’로 만들고, 한나 아렌트를 ‘동족의 배반자’로 만든 ‘사회적 여건’ 중 가장 유효한 사회적 여건을 들라고 한다면 ‘전체주의’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 of Totalitarianism)>(이진우ㆍ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에서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는 가장 극단적이고도 집단적인 형태가 전체주의’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유대인으로 나치 전체주의의 희생자였던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에 대해 가장 먼저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던 저자의 첫 저서이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희대의 악마’로 만든 ‘사회적 여건’을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당시 ‘나치즘’, 그 아이히만을 이해했던 아렌트를 동족을 등진 ‘배반자’로 만든 것은 ‘시오니즘’이다.

 

     전체주의란 ‘국가가 개인에 대해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를 말한다. 20세기 전체주의에 나타난 전체주의는 그 이데올로기적 속성에 따라 우익(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좌익(스탈린주의 등)으로 양분할 수 있는데, 전체주의는 결국 인간 자유의 완전한 폐지를 욕망한다. 봉건적 계급사회의 붕괴와 신분 해방으로 탄생한 ‘대중’, 개성을 상실한 대중 집단, 정치 집단에 의해 도구화ㆍ조직화하면서 탄생하는 ‘폭민’,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생기는 경제권력도 전체주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c)Copyright by Mudbull


   ▲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팽창과 결집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서울 명동)


     ... 전체주의국가에서 선전과 폭력이 동전의 양면처럼 상보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알려 졌고 계속 주장되어 왔다. 선전 없는 폭력이 아무런 심리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듯이 폭력 없는 선전 또한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중략) 폭력이 단순한 외적 영향력이 아닌 내적 영향력까지 행사하고자 한다면, 즉 정부가 단순한 권력 이상을 원할 경우 폭력은 선전을 필요로 한다. (중략)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쓸만한 거짓말을 계속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폭력은 그 이상 중요한 요소이다. 전체주의 정부의 심리적 목표를 달성하고 난 이후에도 폭력은 계속 사용된다. 유대인 수용소에서처럼 폭력이 글에 달하면 선전은 사라진다. 나치 정권하에서의 독일에서도 선전은 허용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선전은 비전체주의적 세계를 다루기 위한 전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면, 폭력은 전체주의 정부의 본질 그 자체이다. ...

 

(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중에서 )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가 제시하는 전체주의 망령에 대항하는 부적, 다시 말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치는 ‘개인의 자유’며 ‘개성’이다. 개인을 부정하고 전체라는 단위로 획일화시키는 것은 물리적이든 비물리적이든 폭력일 수밖에 없다. 한나 아렌트는 제레미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다수의 원칙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힘에 의하여 소수가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소수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마크 얼스 저, 강유리 옮김, 쌤앤파커스 2009)

 

   이 책을 엿보고 나는 ‘가축의 무리’가 되었다. 허드(Herd)는 가축의 떼나 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마크 얼스의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강유리 옮김, 쌤앤파커스 2009)이란 이 책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사회적인 동물로서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들과 상호작용하며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대중적인 행동이 어떻게 비즈니스와 연관되어 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자못 멋있는 말로 ‘선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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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무리(Herd)일 수 밖에 없는가? 비즈니스, 마케팅, 심지어 공공정책까지 무리(Herd)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가?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서울 명동 )



   ... 인간은 하나의 군집, 즉 ‘허드(herd)’일 때 비로소 의미 있으며, 시장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 또한 제품이나 브랜드, 또는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무명씨들로 구성된 ‘허드’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허드 이론(herd theory)’은 뒷받침할 만한 증거 없이 대충 둘러대는 무책임한 주장이 결코 아니다. 의학과 행동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군집적 속성에 대한 심원한 진리가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비교적 새로운 학문에 해당하는 현대의 신경과학·경제물리학·진화심리학·네트워크 기하학을 통해, 우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의존적 군집 동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즉 우리는 천성적으로 ‘인간 대 인간’의 상호작용 능력을 타고났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의 결과가 오늘의 세상을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통찰이 대중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희망은 엄청나다. 비즈니스, 마케팅, 공공 정책… 그 어디에서든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우리 안에 잠재돼 있는 인간본성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면 ...

( 마크 얼스의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 프롤로그 중에서 )



     가축 떼와 같이 군집을 이루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인간은 하나의 군집, 즉 허드(herd)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이 명제와 ‘인간의 군집적 속성에 대한 심원한 진리가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는 단언 앞에서 슬펐다. 자아와 비아로 무장한, ‘자연과학이 인류를 구출했다’고 말하는 듯한, 근대성이 풍부한 이 명제에 책을 덮었고 읽지 못했다. 전체가 아니라 개별성에 주목하는 한나 아렌트와 개별성을 무리(Herd)로 묶으려는 마크 얼스…. 마크 얼스의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우리 안에 잠재돼 있는 인간본성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문장과 아렌트의 ‘선전은 비전체주의적 세계를 다루기 위한 전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문장이 묘하게 중첩되고 있었다.

     아, ‘나’는 가축 무리(herd)일 수밖에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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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 1906년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유대인 철학사상가이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체주의에 대해 체계적으로 비판했다. 아렌트는 실존주의 철학자이면서 심리학자인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의 개념에 대한 논문으로 192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1933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군에 체포되었다가 탈출하여 1933년 프랑스 파리로, 미국으로 도피하게 된다. 이것이 아렌트가 순수 철학자에서 정치철학자로 변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아렌트는 나치에 대해 연구하여 1951년에 간행한 ‘전체주의 기원(The Origin of Totalitarianism)'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2) 홀로코스트(Holocaust) :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총칭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한다.

     3) 시온주의(Zionism) : 유대인들의 민족주의 운동. 유대 국가는 헤스, 핀스커, 헤르즐에 의해 구상되었고 그 꿈은 시온주의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독일 사회주의자였던 헤스(Moses Hess 1812-1875)는 ‘로마와 예루살렘'(Rome and Jerusalem 1862)이라는 책에서 유대 국가의 정치적인 회복을 표명하였다. 그가 바란 유대 국가는 모세의 법과 사회주의가 조화된 형태였다.

      핀스커(Leo Pinsker 1821-1891)는 헤스의 책을 읽고 그의 견해와 동조했으나 훨씬 극단적이었다.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데 이방인으로부터의 도움 받기를 기다리지 말라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시온주의의 본격적인 활동은 헤르즐(Theodor Herzl 1860-1904)에 의해 서서히 막이 오르게 된다.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종교적인 가정 교육을 받고 자라났으나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민족 의식은 없었다. 비엔나 신문사의 기자로 파리의 특파원이 된 헤르즐은 파리에 거주하면서 프랑스의 반 유대주의를 접하면서 유대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박애, 평등을 부르짖는 혁명의 국가였던 프랑스에는 반 유대주의 물결이 넘쳐흘렀다. 헤스의 책을 알지 못했던 헤르즐은 '유대 국가'(Der Judenstaat 1896)를 저술한다.

     유대인 문제는 오직 유대 국가 건설만으로 해결된다는 이 소책자는 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제안으로 전 유럽의 유대인 대표가 참가한 제 1회 시온주의 총회가 1897년 바젤에서 개최되었다. 이 총회에는 모두 2백여 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는데 헤르즐의 지도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회 시온주의 총회에서는 '국제법의 지지를 얻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을 위한 국가 건설을 시온주의의 목표'로 결정하였다. 헤르즐은 정치적인 외교 활동을 통하여 유대 국가 건설이 가능하다고 보고 터키와 영국을 대상으로 한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러한 방침에 모두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와 유럽의 유대인이 겪는 고난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어 주기 위하여 영국이 제안한 '우간다에 유대 국가 건설'안을 받아들여, 제 5회 시온주의 총회에 제출했으나 거센 반발에 부딪힌다. 1904년 그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그리고 며칠 후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897년 1회 시온주의 총회가 끝난 뒤 9월의 그의 일기에는 "나는 여기에 유대 국가를 세웠다. 만일 내가 이 사실을 크게 소리친다면 모든 세상이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5년 적어도 50년 안에 모든 이들이 확인하게 될 것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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