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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이현이 생략한 ‘마지막 문장’_ <너는 모른다>

by 이우 posted Oct 02, 2011 Views 620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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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촉망받는 젊은 소설가 정이현이 <<달콤한 나의 도시>>(2006)에 이어 2009년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를 발간했다. 작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작가는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이전 작품에 미치지 못한다. 어느 일요일 아침 한강에 남자 시체가 한 구가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라가고 있지만 추리소설다운 서스펜스(suspense)와 스릴(thrill)이 없고 이전 작품에서 보이던 감수성도 드러내지 못했다. 추리소설 형식이라는 이유이겠지만 문장이 밋밋하고 이전 단편소설에서 보이던 탄탄한 구성력도 사라져 헐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주목받는 것은 가족 이야기를 통하여 현대사회 인간관계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소설 속 가족 구성원은 가장 김상호, 화교인 새 어머니 진옥영과 그들의 딸 김유지, 그리고 김상호가 진옥영과 재혼하기 전 부인 미숙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김은성과 아들 김혜성이다. 조용하게만 보이는 이 가족은 소설의 제목처럼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 가족들은 얼굴을 마주할 뿐 이야기하지 않으며, 서로 피하지는 않지만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말썽은커녕 걱정스러울 만한 일을 일으켜본 적이 없는 유지의 ‘실종’으로 서로를 ‘알’게 된다.

 

    장기 밀매라는 불법적인 일로 가정을 꾸려가는 아버지와 ‘유지’를 임신했기 때문에 결혼했지만 주기적으로 예전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새 어머니 진옥영, 이런 가족이 싫어 따로 살면서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딸 김은성과 무심한 척 가족의 일원이 되어 살지만 ‘묻지마’ 방화를 일삼는 아들 김혜성,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늘 외로워하지만 표현하지 않는 김유지…. 이들의 가족 관계는 단적으로 말해 불구(不具)다. 신체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불구’라는 말 그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가족이라 규정할 수 있는 ‘사랑’과 ‘화목’, 그리고 ‘연대감’이 없다.

 

    소설가 정이현은 작가적인 감각으로 가족이란 이 불구의 관계망을 드러냄으로써 구부러지고 일그러진, 심지어 깨져버린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망을 캐치(catch)하고 풀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드러내서 어쩌라고? 정작 정이현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작가 정이현은 이 시대 불구의 증후를 찾아냈지만 그 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거나 혹은 밝히지 못했다. 아버지 김상호를 재판정으로 보내고, 딸 김혜성이 자주 방배동 집에 들러 유지를 돌본다는 것으로, 새엄마 진옥영이 씩씩해졌다는 김혜성의 독백으로 소설을 따뜻하게 끝냈지만, 정작 중요한 ‘이들이 왜 이런 불구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독자에게로 밀쳤다. 그래서 ‘내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수직 비행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문장을 보태지 않고 과감히 끝을 맺는 것’이라는 쉼보르스카 여사의 말을 인용하여 작가의 말을 쓴 것일까. 대체 정이현이 5백여 페이지 분량으로 구구절절 이야기하고도 생략해 버렸던 ‘마지막 문장’은 뭘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부한 아포리즘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킬로만자로의 표범’같처럼 혼자 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자본주의라는 가혹한 법칙이 작동하는 밀림 속에서도, 사람들의 관계마저 거래되는 이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관계망의 기초인 ‘가족’이란 테제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흔히 ‘가족의 화목과 행복’을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이야기하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도리어 이 말은 곧 욕망의 집어등처럼 명멸하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서 ‘건강한 가족관계를 만든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증후는 이미 있었다. 19세기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팽창이 사적인 연대를 손상시키며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현대 사회학자나 철학자들은 서양 근대화시기에는 가정이 자본주의를 확립하는 수단이었으며 현대는 자본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생산과 소비의 최소 단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된 <<친밀성의 거래(The Purchase of Intimacy)>>(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009)의 저자 ‘비비아나 A. 젤라이저’는 친밀성이라는 테제로 사회사를 돌아보고 친밀성(가족)과 거래(시장)의 영역이 그렇게 명확히 분리된 것도 대립적인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친밀성과 거래는 구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로 교차되고 연관되면서 삶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매춘이라는 친밀성의 거래는 어느 시대나 있어 왔으며, 룸살롱, 대딸방, 키스방, 아빠방 등 최근 새로운 친밀성 거래 방식이 생겨나는 것은 거래의 영역과 친밀성의 영역이 분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속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지다. 가족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관계망 또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젤라이저’식으로 바라본다면, 가족이란 관계 또한 친밀성을 거래하는 하나의 시장이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해 가문과 가문이 혼맥을 맺어왔으며 최근에는 ‘재벌가계도’란 이름으로 재벌들간의 주고받기식 혼맥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가족의 일원이 친밀성을 거래하면서 얻는 대가는 ‘보호와 보장’ 그리고 ‘기호’다. 소설에서 아버지 김상호가 얻고 싶은 것은 가정이라는 기호(sign)다.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김상호에게 가정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게 해주는 단초(斷礎, 깨어져서 조각이 난 주춧돌)로 작동하고, 온전한 가정을 꾸려가는 성실한 사람임을 표시하는 ‘기호’다. 임신을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를 배반하고 김상호와 결혼한 진옥영이 얻고 싶은 것은 한국 국적 취득과 안정된 생활이며, 딸 김은성과 김혜성이 얻고 싶은 것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의 ‘지원(돈)’이며,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유지가 바이올린에 몰두하는 것은 부모에게서 사랑과 관심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그것을 서로 잘 알고 있지만 이외의 것은 개별적인 것인 것으로 간주하고 서로 묵인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처럼 ‘너를 모른다’.

 

    작가 정이현은 ‘사랑과 결혼은 다른 것이다’를 외치며 경제적 능력과 경제적 조건을 찾아 이합집산하는 우리, ‘꽃’ 대신 ‘보석’이나 ‘자동차’를 을 외치는 이 시대의 사랑법과 그 사랑법이 낳은 불구의 관계, 거래라는 시장 영역이 전혀 시장적이지 않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마지막 문장에 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이현은 그 마지막 문장을 생략하면서 이 가족을 묵인했다. 사실을 직시한다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불편하지만, 거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주부나 고객의 화대로 생활을 유지하는 매춘 여성이나 다르지 않다. 고객을 웃음과 미소로 대해야 하는 직종군의 일을 두고 최근 ‘감정 노동’이란 말이 생겨났으니 이 웃음과 미소 또한 친밀성의 거래이며, 상대가 기분 좋으라고 남발하는 ‘칭찬’이나 ‘Yes’도 개념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가. 우리도 정이현이 그려내고 있는 이 불구의 가족을 용인(容認)한다. 휘어지고 비틀려 있지만 이해하고 묵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안에서 우리도 모두 공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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