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당(五酒黨, 유재철 · 홍광범 · 이상곤 · 이혜숙 · 남궁담)이 <제3회 수원국제사진축제(3rd SUWON International Photo Festival)>에 초대되어 초대전 <강강수원래(江江水原來, Return Our Rivers to the Original State)>를 갖습니다. <제3회 수원국제사진축제>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유재철 : 작년 지독한 가뭄으로 댐으로 수몰되었던 인공 호수의 바닥이 드러 났다. 물이 사라져도 수십 년간 쌓인 진흙으로 마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높이 솟은 상황당 나무 끝이나 고지대에 있던 학교 터만 살아 남는다. 검은 진흙이 수몰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하다. 수몰이 만드는 비극은 영주댐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금강과 평은리 사람들을 몰아 내고 집을 허물고 밭도 갈아 엎는다. 대신 허망한 욕심으로 빈 마을을 채운다. 경제 유발 효과 수조원, 고용 창출 수만명, 수력 발전량 수십만 킬로와트... 오로지 숫자를 위한 노름 뿐이다. 과거로부터 배운 것은 없다.
홍광범 :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닌데도 비뚤어진 권력자의 야망과 돈 욕심 때문에 우리의 젖줄인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이 족쇄에 차여 신음하고 있습니다. 무한한 사랑을 주는 어머님 같은 강들이 아픔에 떨고 있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강바닥에 돈을 처박은’은 무용지물인 영주댐과 4대강의 보들을 걷어내고 다시 자유롭게 흐를 수 있도록 힘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대판 강변 아방궁(阿房宮)들인 호화판 시설의 강문화관 전망대카페에 앉아 시키지도 않은 녹차라테가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깁니다. 오랜 세월 풍파를 이겨 온 우리 강들이 어서 원기(元氣)를 회복하여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강강수월래 강강술래(江江水原來 康江水元來)!
이상곤 : 4월의 바람은 어김없이 앞 뒤 동산에 찬란한 꽃들을 불러 온다. 칠어와 낚싯대, 소년이 어우러진 한바탕 춤은 강목에 댐이 들어선 후 멈추었다. 학교와 마을은 그대로 주저앉아 그 고단한 뼈대를 물속에 뉘었다. 쫓겨난 사람들은 뿌리가 뽑힌 채 디아스포라의 군상을 이루었고, 그렇게 서른여섯 개의 봄이 오고 또 갔다. 소년은 이제 노년의 거죽을 입었다. 강물을 유영하던 물고기는 박제가 되어 무채색 벽에 걸렸다. 물속에 아랫도리를 담근 봉우리들만이 윗옷만 갈아입으며 그 세월을 버텨왔다. 반도의 허리를 조르고 있는 분단만큼이나 댐으로 인한 수몰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유폐(幽閉)는 살아있는 것들에게 수의(壽衣)를 입힌다. 봄 소풍의 찬란한 기억 속으로 다시 낚싯대를 드리운다.
이혜숙 : 나는 애드가 앨런 포가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쓴 것처럼 수몰을 눈 앞에 둔 금광리의 운명을 이렇게 슬퍼한다.시인 에드가 앨런 포는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이렇게 슬퍼했다. "오래고 또 오랜 옛날 / 바닷가 어느 왕국에 / 여러분이 아실지도 모를 한 소녀 / 애너벨 리가 살고 있었다 /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사랑하니 / 그 밖에는 아무 딴 생각이 없었다 (중략) 바닷가 이 왕국에 /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고 / 내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하여 / 그녀의 훌륭한 친척들이 몰려와 / 내게서 그녀를 데려가 버렸고 / 바닷가 이 왕국 안에 자리한 무덤 속에 가두고 말았다." 나는 수몰을 눈앞에 둔 금광리의 운명을 이렇게 슬퍼한다. "오래고 또 오랜 옛날 / 내성천가 어느 언덕에 / 여러분이 아실 지도 모를 한 마을을 사랑하니 / 그밖에는 아무 딴 생각이 없었다 // 강가 이 왕국에 / 탐욕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 아름다운 금광리를 에워쌌고 / 둔중한 장비들이 몰려와 / 마을에서 사람들을 몰아내어 / 강가 이 왕국 안에 자리한 / 마을은 무덤이 되고 말았다"
남궁담 : 어릴 적 살던 시골 마을에 큰 내(川)가 있었다. 냇물은 실타래에서 풀려나온 털실처럼 구불구불 휘어져 냇둑에 부딪치고 돌 징검다리를 넘나들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어딘가로 흘러갔다. 가뭄이 들어 더러 냇둑 밑동이 드러나고 물살이 가늘어질 때도 있었지만 멈추는 법은 없었다. 물살이 햇볕을 튕겨 올리는 아침나절부터 땅거미가 드리우는 저물녘까지, 여름에는 여름대로, 겨울에는 겨울대로 냇가엔 사람들 발길도 멈추지 않았다. 일일이 이름을 외지 못했던 물고기들, 새들, 그리고 곤충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명들이 드나들던 그 냇물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는 금강(錦江)과 합쳐진다는 것은 한참 훗날에야 알았다. 그리고 거대한 댐과 보(洑)에 갇혀 더 이상 흘러가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을. 막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온 애들처럼 해맑게 조잘대며 흐르던, 내 어릴 적 살던 마을에 흐르던 그 냇물은 이제 기억 속에서 더 활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