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걸어 인문학을 만나다?6
남산산책로(북측순환로B)
○ 대상 :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인문학기행팀(신촌·분당), 이외 게스트
○ 모이는 장소 : 숭례문 정문 ( 서울역 4번 출구에서 나와 직진, 도보 2분 )
○ 모이는 시간 : 2012년 7월 7일(토요일) 오후 3시
○ 헤어지는 장소 : 남산 <문학의 집>
○ 헤어지는 시간 : 2012년 7월 7일(토요일) 오후 6시(*일부는 남산 팔각정으로 오를 예정입니다.^^)
○ 사진 촬영 테마 : 시간
남산은 서울특별시의 중심인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지점으로, 중구(회현동, 필동, 장충동), 용산구(후암동, 용산2가동, 이태원2동, 한남동)에 덜져 있다. 면적은 2,935,762㎡, 산의 높이는 270.1m다. 남산공원은 중구와 용산구에 걸쳐 있는 남산 주변을 아우른다. 1940년에 최초로 공원 결정이 고시됐으며, 지난 1984년부터 남산도시자연공원이라고 부른다. 하루 평균 2만3000명이 찾는 서울의 대표 공원이다. 코스도 다양하고 각 지역마다 색깔이 달라 즐거움을 더한다. 남산공원은 크게 5개 구역으로 나뉜다. 남산 정상의 팔각정과 봉수대, N타워가 있는 '팔각정 주변', 남산도서관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는 ‘'회현 지구', 야외 식물원과 야생화 공원이 있는 '한남 지구', 국립극장과 장충단공원이 있는 '장충 지구', 마지막으로 남산 한옥마을이 있는 '예장 지구'로 나뉜다.
조선시대 남산은 내사산의 하나로 과거 도성방어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서울 한양도성, 봉수대, 장충단비, 와룡묘, 국사당터, 남소영터, 수표교 등 600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역사와 문화가 서려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은 민족혼 말살을 위하여 남산에 위치한 서울 한양도성, 봉수대, 국사당 등을 철거하고, 신사, 관사 및 주거지를 조성했다. 고아복을 맞이하고 하고 우리나라가 고도성장기를 맞이하지만 학교, 호텔, 군부대, 공공기관 등이 남산주변에 건립되면서 남산의 자연환경과 경관은 우리 손에 의해 다시 훼손되고 고립되고 말았다. 991년 남산 제모습 가꾸기 사업을 통하여 남산의 생태성과 역사성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남산 봉수대가 복원되는 한편 남산외인아파트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야외식물원이 조성되었다. 남산 제모습 가꾸기를 통한 10년간의 노력 후에도 2004년 남산공원의 이용 실태분석 및 개선방향 연구, 2006년 도심재창조 종합계획의 열린남산만들기 등을 통하여 남산 가꾸기를 위한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① 남산도서관 ? 김소월 시비
남산도서관 건물 옆 주차장 입구 오른편에 김소월(金素月, 1902년 8월 6일 ~ 1934년 12월 24일)의 시비가 있다. 김소월의 시비가 있어 길 이름도 소우러길이다. 이 시비는 1968년 한국일보사에서 벌인 한국 신시 6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3우러 3일 세워졌다. 자연을 노래한 김소월 시비는 화강암으로 주추를 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올려 만들었다.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김소월 시비는 제법 산과 어울린다.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② 북측순환로 B로 ? 조지훈 시비
남산도서관을 왼편에 두고 남산공원을 가로지르면 큰길이다. 오른편으로 조금 더 걸으면 북측순환로B다. 산책로 초입 오른편으로 편의시설이 보이면 곧 왼편으로 조지훈조지훈(趙芝薰, 1920년 12월 3일 ~ 1968년 5월 17일) 시비가 있다. 1971년 5월에 문인들이 만든 시비로 앞면에는 <파초우>, 뒷면에는 그의 생애가 새겨져 있다. 전후에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데다가 산 속에 돌이 서 잇는 것이라 시각적으로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파초우(芭蕉雨)
외로이 흘러간 한송이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초잎에 후드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주 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츰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조지훈 시비를 지나 북측순환로B로를 좀 더 걸어가자. 다음 목적지까지는 제법 걸어야 한다. 조깅 트랙 위를 걷기 때문에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자전거도 자동차 도 출입 통제되어 있어 사람 목소리와 사뿐한 발소리 이외에 다른 기계음은 들리지 않는다.
③ 문학의 집
왼편으로 내려가는 샛길 표지판들이 드문드문 나타나는데, 코스 번호인 12번인 길로 내려간다. TBS방송국, 건설안전관리본부 방향이라 써 있으면 그 길을 탄다. 좁은 산길을 내려가면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나오고 여기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소방재난본부와 <문학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문학의 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5시까지만 개방함으로 전시실을 보려면 서두는 것이 좋다.
남산의 품에 안긴 이 집은 사실 이전 안기부 건물을 문학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개조한 곳이다. 소방재난본부도 안기부 건물이었다. 남산에는 안기부 건물들이 제법 많다. 이것이 남산의 또 다른 얼굴이다. 신음 소리가 가득했던 이곳에 문학관이 들어섰다.
남산산책로는 도심 속의 산책로보다 여유가 있다. 자연 속에 있으니 바삐 걸을 이유가 없다. 느긋한 발걸음과 먼 곳을 바라보는 여유. 그것만 있으면 된다. 남산이 드리워주는 빛과 그림자, 그 변화를 만끽하면서….
“… 디지털 문명의 요체는 기다림을 삭제했다는 데에 있다. 휴대전화를 보자. 유선 전화가 있던 시절, 전화를 받지 않으면 상대방은 없는 것이었다. 집이나 사무실에 없는 것이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상대방이 전화를 걸어올 때까지, 그 시간은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었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일상화하면서 기다림은 사라졌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 더는 기다리지 않는다. (중략) 이제는 전화를 하지 못하거나,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태 자체가 실종이다. 기다림이 더는 용인되지 않는다. 기다림은 제거되었다. (중략) 사진을 찍는 순간도 그렇지만, 사진은 모든 과정이 기다림이었다. (중략) 딸애에게 얼마 전에 나온 강운구 선생의 <<시간의 빛>>을 한 번 읽어보라고 할 생각인데, 저 열 여섯 살 디카족이 강운구 선생의 리얼리즘과 인문학적 사유를 얼마나 소화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다. ‘땅의 마음’을 포착하기 위해 빛을 기다릴 줄 아는 강운구 선생의 앵글과 사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저 ‘발효의 시간’을 어떤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이해시킬 수 있단 말인가.… ”
(이문재의 <<이문재 산문집>> 중에서)
* 걷는 것에 자신 있는 분들은 이후 팔각정으로 오르겠습니다. 날이 좋다면, 서울의 해내림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