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걸어 인문학을 만나다·20
소공동 산책로
○ 대상 :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인문학기행팀 · 게스트
○ 모이는 장소 : 전철 4호선 회현역 7번 출구
○ 모이는 시간 : 2014년 4월 12일(토요일) 오후 3시
○ 헤어지는 장소 : 명동예술극장
○ 헤어지는 시간 : 2014년 6월 12일(토요일) 오후 6시○ 사진 촬영 테마 : ‘나’를 구성하는 것들
□ 추천 코스 : 신세계백화점 → 한국은행 → 포스트 타워 → 웨스틴 조선호텔 → 을지로 2가 → 명동성당 → 명동예술극장 구간. 약 2.5km)
신세계백화점을 출발하여 한국은행과 포스트타워, 조선호텔을 거쳐 을지로 2가를 돌아 명동으로 진입하는 이 산책로는 오래된 서울의 번화가를 가로지릅니다. 어느 시간에든 차도에는 차량이 넘치고 거리도 매우 혼잡해 조용한 산책을 위한 코스로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모습을 설명하는데 여전히 유효한 ‘자본주의’, ‘근대화’, ‘식민지 경험’이라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들이 이 길 위에 있습니다.
(1) 신세계백화점 : 신세계백화점 본관이 있는 이 자리에는 일본강점기에는 미쓰코시백화점이 있었습니다. 1930년 10월, 경성 최고의 번화가인 <혼마치 1정목>에 새롭게 개장한 미쓰코시백화점은 당시일본인 상권이던 진고개의 중심이었습니다. 청계천을 경계로 하여 조선인들이 거주하는 북촌과 일본인들이활동하던 남촌으로 나뉘어 있던 당시 경성에서 미쓰코시백화점은 남촌의 중심가였습니다. 이 남촌은 마치 근대 상품의 진열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도꾜 긴자를 방황하는 것처럼 이 거리를 부유했습니다. 소비 문화에 대한 조선인의 선망이 극에 달하자, 무작정 경성우편국과 미쓰코시백화점 부근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을 몽유병자와 같다해서 일본말로 ‘혼부라’라고 불렀습니다. ‘혼부라’의 무리들은 부나비처럼 이곳을 지나 경성우편국 옆 길을 지나 혼마치상점가로 휩쓸려 다녔습니다. 작가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주인공 또한 ‘혼부라’처럼 ‘쏘다니다’ 미쓰코시 옥상에 올라 근대 도시의 일상을 바라봅니다. 미쓰코시백화점은 해방 후 동화백화점이 되었고 6.25전쟁이 터지자 미군의 PX로 사용됩니다. 당시 화가 ‘박수근’이 이곳에서 초상화부로 일했습니다.
▲ 1930년대 미쓰코시백화점
(2) 한국은행 : 현재 화폐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한국은행 건물은 1930년대 근대도시 경성을 상징하는 건축물의 하나였던 ‘조선은행’이었습니다. 1912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유럽의 성을 떠올리게 하는 좌우대칭형의 석조건물로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문화적,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상징이었습니다. 국가 중요문화재인 사적 280호로 지정된 한국은행 건물은 1907년 착공되어 1912년부터 조선은행 본점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이 건물은 국내의 화폐문화의 역사를 전시하는 화폐금융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1930년대 조선은행
(3) 포스트 타워 : 서울중앙우체국인 포스트 타워는 2007년 11월에 완공된 건물입니다. 이 건물의 모습이 마치 ‘마징가Z'의 머리 부분을 닮았다고 해서 사람들에게는 ’마징가 빌딩‘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에는 일본강점기 시절 ’경성우편국‘이 있었습니다.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에서 등장인물 윤직원은 자신이 데리고 잇는 어린 기생인 ’춘심이‘를 데라고 당대 경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였던 진고개(지금의 충무로)로 산보를 갔다가 이 ’경성우편국‘의 약국에서 자신의 몸부게를 알게 됩니다. 신소설로 널리 알려진 이인직의 <혈의 누>(1906)에는 생동감 있게 ’우체사령‘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을 보면 ’우체사령‘은 국가로부터 ’남의집 안마당을 함부로 들여다 볼 권한‘을 얻은 자로 표현됩니다.
▲ 1920년대 경성우편국
(4) 웨스틴 조선호텔 : 1914년 10월 10일 환구단(원구단) 자리를 헐고 개관한 조선호텔은 한국 최초의 호텔입니다. 철도호텔로 불리기도 했던 당시, 이 호텔은 조선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선보였던 곳이고, 조선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던 곳이기도 했으며, 조선 최초로 댄스 파티가 열리기도 하면서 당시 서양 문화를 선도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 호텔은 고종 황제의 즉위식과 제사를 위한 환구단 위에 세워졌습니다. 환구단은 사적 제157호. 남아 있는 환구단 건물은 길에서 보이지 않아, 호텔 정문까지 올라가야 보입니다. 환구단(?丘壇)은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壇)입니다. 원구단(圓丘壇)이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기 때문입니다. 1897년(고종 광무 원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환구단에 나아가 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드린 후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당시 환구단이 마련된 곳은 중국 사신들을 접대하던 남별궁(南別宮)이 있던 자리로, 이때 만들어진 환구단은 화강암으로 된 3층의 단이며, 중앙 상부는 금색으로 칠한 원추형(圓錐形)의 지붕이었습니다. 환구단에는 하늘과 땅, 별과 천지만물에 깃든 신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동지(冬至)나 새해 첫날에 제천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1912년(융희 4년) 일본은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철도호텔을 세웠으며, 1968년에 지금의 조선호텔 건물로 대치되었습니다.
▲ 1930년대 환구단
(5) 명동성당 : 사적 제258호. 강점기에 ‘종현 천주교당’으로 불렸던 이 건축물은 1898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양식 건축물입니다. 명동성당에는 1880년대 ‘성성활판소’가 설치되어 <경합잡지>, <경향신문>이 간행되기도 했으며, 19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의 집회장소로 자주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수일과 심순애를 탄생시킨 <장한몽>(1913년), 이태준의 소설 <사상의 월야>에서 당시 종현 천주교당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명동성당 옛모습. 성당 앞으로 초가집과 밭들이 보인다((지금의 명동).
(6) 명동예술극장 : 1936년 ‘명치좌’라는 영화관으로 문을 연 이 극장은 해방 후에는 ‘사공관’으로 불렸으며, 1957년에서 1973년까지는 ‘국립극장’으로 사용했습니다. 1950년대 이후 문화와 예술의 공간으로서 영화, 연극, 무용 등 각종 공연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열려서 문화예술인들을 끌어모으는 거점이었습니다. 1973년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하면서 일반인에게 매각되어 명동의 상업적 중심지로 거듭나면서 전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자리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936년 건립된 명치좌(明治座)는 건립당시는 극장 전용 건축물이었습니다. 명치좌는 명동의 한 복판에위치하고 있어 미도파 백화점으로부터 명동성당까지를 한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민관, 약초극장, 황금좌 등과 함께 1930년대의 일본인들을 위한 위락 시설로 지어진 것으로 주로 일본영화만 상영했습니다. 관객 수용인원은 1178명으로 1층은 664명, 2층은 354명 그리고 3층은 160명. 명치좌는 8·15해방 후 미 군정청 시대가 되며 국제극장이란 이름으로 재개관되었습니다. 이후 국제극장은 서울시에 의해 접수되어 시공관(市公館)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집회시설로 쓰이거나 연극 등의 공연을 했습니다. 시공관은 6·25 동란으로 황폐해져 52년 개수되었습니다. 57년 6월1일, 시공관은 다시 명동예술회관이란 이름으로 바뀌며 국립극장이 되었습니다. 명동예술회관은 1962년 3월21일 명동 국립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뀌었고 1973년 9월에 국립극장으로서 연극 오페라 무용 등의 다양한 공연이 열리게 됩니다. 73년 10월17일 남산 국립극장이 개관될 때까지 10여년간 국립극장으로 역할했습니다. 그 후 명동예술회관은 폐쇄되고 75년에는 대한투자금융(현 대한종합금융)에 매각되어 금융업체 건물이 되었습니다. 1985년 12월 내부를 전면 개수, 대한종합금융에서 사용하게 되었고 이어 헐릴 위기를 맞습니다. 1994년 명동 상가번영회가 시민 서명운동을 벌이며 복원운동을 시작했고 99년 대한투자금융의 영업인가가 취소되면서 법원경매에 부쳐지자 문화관광부가 2002년 8월 23일 결단을 내려 사들이고 명동국립극장으로 개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4년에 문화관광부가 400억원에 건물과 땅을 사들여 2009년 6월 5일<명동예술극장>으로 재개관했습니다. 현재 명동 예술극장은 연극 전문 공연장입니다.
▲ 1960년대 명동거리. 명동국립극장에서 오페라 <루치아>를 공연하다는 현수막이 보인다.
□ 탐방 테제 : 이번 탐방 테제는 <‘나’를 구성하는 것들>입니다. 근대 철학에서 ‘나(주체)’는 세상의 중심이었고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철학에서의 ‘나’는 세상의 중심, 혹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물입니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며’(라캉), ‘나’는 ‘이데올로기의 호명을 받아 주체가 됩니다.’(알 퉤세르). 소공동 산책로에는 일본강점기 이후 약 100여년 시공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시공간은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 삶에 개입합니다. 소공동 산책로를 걸어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찾아 카메라에 담고 인문학 기행 갤러리에 올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