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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플라톤주의를 뒤집다(환영들)

by 이우 posted Jan 11, 2018 Views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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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주의*를 뒤집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니체는 자신의 철학 과업보다 일반적으로는 미래의 철학 과업을 플라톤주의를 뒤집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이 과업을 이루기 위한 방식은 대개 본질의 세계와 외양의 세계 소멸을 의미하는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방식의 계획은 니체에게만 고유한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과 외양에 대한 이중적인 이의 제기는 헤겔에게까지, 보다 더 멀리 칸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고자 한 것이 이들의 그것과 같은 것인지는 사실 의심스러우며, 게다가 플라톤주의를 뒤집기 위한 이 같은 이중적인 이의 제기의 방식은 추상적이라는 약점을 지닌다. 왜냐하면 본질과 외양에 대한 이중적인 이의 제기 방식은 플라톤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동기를 여전히 암흑 속에 놔두기 때문이다. (중략)

   극히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데아 이론(theorie des Idees)을 구성하는 동기는 그 이론이 갖는, 선별하며 분류하고자 하는 의지의 측면에서 찾아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데아 이론은 차이를 드러내는 것, 즉 '사물' 자체와 그의 이미지들을 본래적인 것과 그의 사본을, 모델과 그의 환영(simulacre)을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이 표현들 모두가 동일한 가치를 지닐까? 플라톤적 계획은 오로지 이 같은 나눔(division)의 방법을 참조할 때만 진정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행한 이 나눔의 방법은 여러 다른 변증법 기법 중의 하나에 불과한 그렇고 그런 변증법적 기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나눔의 방법은 변증법의 그 모든 힘을  그것과는 다른 힘과 더불어 녹이고 융합시키기 위해 긁어모은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러한 나눔의 방법은 탐구되고 있는 어떤 사물을 그에 적합한 종(espece) 아래에 논리적으로 포섭할 목적으로 하나의 유(genre)를 상반되는 여러 종으로 나누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플라톤적 나눔의 피상적인 측면에 지나치게 매달릴 경우, 우리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플라톤적 나눔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게 될 것이다. 즉 플라톤적 나눔은 예를 들어 낚시가 물고기를 획득하는 재주의 측면에 있는 것인지, 획득된 물고기의 측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타 다른 측면에 있는 것인지를 결론짓게 해줄 매개념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판했던 것처럼 플라톤적 나눔의 방법은 정당치 못한 그릇된 삼단논법이 되고 말 것이라고 비판하게 될 것이다.

  결국 플라톤적 나눔의 실재적인 목적은 하나의 유를 여러 종으로 나누는 것과는 다른 곳에서 찾아져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플라톤의 저서 <정치가(Politique)>에서 이 문제와 관련이 있는 다음과 같은 첫번재 정의를 만나게 된다. 즉 여기에서는 정치가가 사람들의 목자로 정의되지만 의사, 상인, 농부 등 모든 종류의 경쟁자들이 "사람들의 목자는 바로 나다!"라고 말하기 위해 나서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한편 <파이드로스(Phedre)>에서는 정신이 극도로 고양된 상태에 대한 정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근거 있는 정신의 고양 또는 진정한 사랑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이 언급되는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영감을 받은 자, 사랑을 하는 자는 바로 나다"라고 말하는 수많은 주장자가 나서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이렇게 볼 때. 플라톤적 나눔의 목적은 결코 하나의 유를 여러 종으로 나누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보다 심오하게는 계보(lignee)를 선별하는 것, 즉 주장자들을 순수와 비순수, 진실됨과 비진실됨을 명확히 구부하는 것에 있다. 플라톤의 한결 같은 은유가 나눔을 이상적인 체험에 결합시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결국 플라톤주의는 철학적인 오디세이아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플라톤적 변증법은 모순이나 대립의 변증법이 아니라 일종의 경쟁의 변증법(암피스바이나, amphisbetesis,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앞뒤에 머리가 달린 뱀의 변증법)이기 때문이다. (...)

  .........
  *플라톤주의 : 일반적인 의미의 플라톤주의는 가지적인(intelligible) 차원(많이 존재하는 차원, 본질의 차원, 변화하지 않는 차원)과 감각적인(sensible) 차원(적게 존재하는 차원, 외양의 차원, 변화하는 차원)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관 위에 근거한다. 물론 사물릐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이 같은 이분법에 따른다. 즉 개개의 사물들이 자신들에 고유한 가지적인 차원을 어마나 나누어 가지고(분유하고) 있느냐 또는 얼마나 잘 재현(모방)하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그것들의 가치가 판단되는 것이다. simulacre는 이러한 구도 속에서 감각적인 차원 쪽으로 무한히 내려간 끝에 해당한다. 아주 거칠게 도식화해보면, 이데아를 한 극점이라고 할 때, 그 반대편에 있는 극점이 바로 simulacre인 것이다. 따라서 simulacre 쪽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존재는 점점 더 적어지며 그에 따라 가치 또한 점점 더 적어지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simulacre에는 그 어떤 형상, 존재, 가치도 없으며, 더 나아가 형상이나 모델을 따른 진정한 의미의 모방도 없다.

이데아도식.jpg



 -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생성과 창조의 철학사』(질 들뢰즈·이학사·2007년) <2. 플라톤주의를 뒤집다(환영들)> p.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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