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말과 사물』 : 유사(類似)와 상사(相似), 그리고 기호(記號)

by 이우 posted Aug 24, 2018 Views 2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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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가지 유사성

  (...) 16세기 말엽까지 서양 문화에서 닮음의 역할지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텍스트에 대한 주석과 해석을 대부분 이끈 것은 바로 닮음이다. 닮음에 의해 상징 작용이 체계화되었고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 사물의 인식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사물을 나타나내는 기법의 방향이 결정되었다. 세계는 안으로 접혀 포개어졌다. 대지는 하늘을 반영했고 별에는 얼굴이 비치었으며 풀의 줄기에는 인간에게 유용한 비밀이 숨어 있었다. 회화(繪畵)는 공간을 모방했다. 그리고 재현은 축제이건 지식이건 간에 반복으로, 즉 삶의 무대 또는 세계의 거울로 설정되었다. 재현은 바로 모든 언어의 호칭, 언어가 말해지고 언어의 말할 권리가 표명되는 방식이었다. (...) 16세기 말엽과 17세기 초엽에 유사성은 어떻게 사유되었을까? 어떻게 유사성은 지식의 형성들을 체계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을까? (...)

  16세기 닮음의 의미 조직은 매우 풍부하다. 가령 "아미키티아(Amicitia, 우정), 아이쿠알리타스(Aequalitas, 평등), 콘트락투스(comtractus, 계약), 콘센수스(consensus, 합의), 마트리모니움(matrimonium, 혼인), 소키에타스(societas, 사회), 팍스(pax, 평화), 시밀리아(similia, 유사), 콘소난티아(consonantia, 일치), 콘케르투스(comcertus 협력), 콘티누움(continum, 연속), 파리타스(paritas, 등가), 프로포르티오(proportio, 비율), 시밀리투도(similtudo 유사성), 콘준크티오(conjunctio, 결합), 코플라(copula, 연결)"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다른 개념도 있는데, 이것들은 사유의 표면에서 서로 교치하거나 뒤얽히고, 서로 강화하거나 한정한다. 지금으로서는 닮음과 지식의 맞물림을 결정하는 주요한 현상들을 개관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확실히 네 가지 기본적인 것이 있다.

  우선 콘베니엔티아(convenientia, 일치·조화·공감·적합·부합). 사실을 말하자면 이 낱말은 유사성보다는 오히려 장소들의 인접을 지칭한다. 서로 근접하여 나란히 놓이게 되는 사물들은 서로 부합한다. 이러한 사물들은 가장자리가 서로 닮고 그 여백이 서로 겹치며 한 사물의 말단이 다른 사물의 발단을 가리킨다. 움직임뿐만 아니라 영향과 정념 그리고 속성 역시 이런 방식으로 전달된다. 닮음은 이 지점에서 출현한다. 이 닮음은 누군가 꿰뚫어보려고 시도하자마자 이중적이 된다. 두 사물이 자연적으로 놓인 장소 또는 자연의 용기(容器)이고, 세계라는 자연의 용기에서 근접은 사물들 사이의 외적 관계가 아니라, 적어도 불명료한 핀근성의 기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촉으로부터 새로운 닮음이 서로 간의 교환에 의해 샹겨나고, 필연적으로 하나의 공통된 체제가 형성되며, 인접의 은밀한 근거로서의 유사성에 근접의 가시적 효과인 닮음이 겹쳐진다.

  예컨대 영혼과 육체는 서로에게 이중으로 부합하였다. 신이 영혼을 물질의 중심부에 집어넣기 위해서는 영혼이 죄로 인해 무겁고 둔감하며 세속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인접을 통해 영혼이 육체의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육체에 동화되는 사이에 "육체는 영혼의 정념에 의해 변질되고 타락한다." 세계의 광범위한 통사법에 따라, 각기 다른 존재물들이 서로에게 순응하는데, 가령 식물은 짐승과, 대지는 바다와, 인간은 주의의 모든 것과 통한다. 닮음은 불가피하게 인접을 야기하고 인접은 닮음을 보장해준다. 장소와 유사성이 서로 얽힌다. 가령 조개껍질 등에서 이끼가, 수사슴의 뿔에서 식물이, 사람의 얼굴에서 일종의 풀이 자라며, 기이한 식충류를 동물만큼이나 식물하게 유사하게 만드는 속성들도 서로 뒤섞여 나란히 놓인다." 그만큼 많은 기호가 서로에게 부합하게 된다.

  콘베니엔티아는 '점진적 근접'의 양상으로 인해 공간과 갚은 관계가 있는 닮음이다. 그것은 결합과 적응의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그것은 사물 자체보다는 오히려 사물이 놓여있는 세게에 속하는 것이다. 세계는 사물들의 보편적 '부합'인데, 물 속에 물고기들이 있는 그만큼 대지 위에는 동물들 또는 자연적으로나 인위적으로 생겨난 대상들이 있고, 물속과 대지의 표면에는 하늘이 있는 것만큼 많고 하늘과 대응하는 존재뭉들이 있으며, 끝으로 창조된 것 전체에는 "존재, 권능, 인식, 사랑의 파종자(播種者)인 신 속에 명백히 들어있다고들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존재물들이 있다. 이처럼 닮음과 공간의 연쇄에 의해, 유사한 사물들을 한데 모으고 인접한 사물들을 유사하게 만드는 이 부합에 의해 세계는 내부적으로 사슬을 형성한다. (...)

  유사성의 두번째 형태는 일종의 부합이지만, 장소의 법칙에서 풀려나 부동의 상태로 거리를 두고 작용할 아이물라티오(aemulatio, 경쟁이나 경쟁심리, 경합)이다. 어느 정도는 공간적 부합이 깨지고, 사슬들의 고리들이 제각기 떨어져 나가고는 멀리 떨어진 채로 어떤 접촉도 필요로 하지 않는 닮음에 따라 재생되기라도 하는 듯하다. 경합에는 반영 및 거울과 상응하는 측면이 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사물들은 경합을 통해 서로 어울린다. 멀리에서 인간의 얼굴은 하늘과 경합하고, 인간의 지성이 불완전하게나마 신의 지혜를 반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은 그렇게 밝지는 않지만 하늘에서 해와 달이 발산하는 강한 빛을 반사하고, 입은 입맞춤과 사랑의 말이 통과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베누스 여신이고, 코는 유피테르의 홀(笏)이나 메르쿠리우스의 지팡이가 축소된 이미지이다. 이러한 경합으로 인해 사물은 우주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연쇄도 근접도 없이 서로 닮을 수 있다. 세계에  고유한 간격은 거울 속에서의 중복에 의해 사라지고, 이를 통해 세계의 각 사물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장소를 넘어선다. (...)

  세번째 형태의 유사성, 유비(類比). 용법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고대 그리스의 과학과 중세의 사유에서 이미 잘 알려진 유구하고 친숙한 개념. 이 유비 속에서 콘베니엔티아와 아이물라티오가 서로 겹친다. 후자의 경우처럼 유비도 공상을 통한 유사점들의 놀라운 대면을 보장하지만, 전자의 경우처럼 유비의 경우에도 조절, 연결, 이음새라는 말이 쓰인다. 유비의 힘은 막대하다. 왜냐하면 유비에 의해 다루어지는 유사성은 사물들 자체의 가시적인 유사성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비는 관계들의 더 미세한 유사성으로도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 이처럼 가벼워진 유비에 의해 무한히 많은 친근성이 하나의 동일한 지점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예컨대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별의 관계는 대지에 대한 초목의 관계, 생물이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한 생물의 관계, 광물과 다이아몬드가 암석에 대해 맺는 관계, 감각 기관에 의해 생기를 띠는 얼굴에 대한 감각 기관의 관계, 반점이 눈에 잘 띄지 않게 피부에 퍼져 있는 육체에 대한 반점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 유비는 또한 변경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인되지는 않는다. 체살피노(이탈리아의 의사)는 동물에 대한 식물의 오랜 유비 관계(식물은 머리가 아래쪽에 있고 입 또는 뿌리가 땅속에 파묻혀 있는 동물이다)를 비판하지도 일소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그는 식물이란 서 있는 동물이어서 머리, 이를테면 열매나 꽃 또는 잎의 다발로 끝나며 몸통처럼 길게 뻗은 줄기를 따라 영샹소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고 밝힘으로써, 동물과 식물의 유비관계를 강조하고 늘어나게 했다. 본래의 유비와 방향이 반대지만 모순되지 않은 이 관계에 의하면, "식물에서 뿌리는 하부에, 줄기는 상부에 놓인다." 왜냐하면 동물의 경우에도 혈관의 망(網)은 하복부에서 시작되고, 주요 혈관은 심장과 머리 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역성과 다면성 때문에 유비는 보편적인 적용 범위를 부여받는다. 세계의 모든 형상은 유비에 의해 서로 연관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방향으로 통하는 이 공간에도 하나의 특권적인 지점이 존재한다. 이 지점은 바로 유비로 포함되어 있고 관계들은 이 지점을 거치면서 방향이 거꾸로 바뀌지만 변절되지는 않는다. 이 지점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동물과 식물에 대해서도 비례 관계를 갖는다. 세계의 면면들 사이에서 몸을 곧추세우는 인간은 창공과 관련된다. 인간의 얼굴에 대한 육체의 관계는 하늘의 외양에 대한 대기의 관꼐와 같고, 별이 고유한 행로를 따라 순환하듯 인간의 맥박은 혈관 속에서 뛰며, 인간의 얼굴에 나 있는 일곱 개의 구멍은 하늘의 일곱 행성에 대응한다. 인간은 이 모든 관계가 다른 곳으로 옮아가게 하고, 그래서 인간이라는 동물과 인간이 살고 있는 대지 사이의 유비에서도 이 모든 관계가 유사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가령, 인간의 살은 흙이고, 인간의 뼈는 암석이고, 인간희 혈관은 커다란 강이고, 인간의 방광은 바다이고, 인간의 주요한 일곱 가지 구성 요소는 광산의 바닥에 묻혀 있는 일곱 가지 금속이다. (...)

  끝으로, 네번째 형태의 닮음은 감응(感膺)의 작용에 의해 확보된다. 감응의 작용에서도 결코 어떤 경로도 사전에 결정되어 있지 않고 어떤 거리도 전제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연쇄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감응은 세계의 심층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작용한다. 감응은 한순간에 가장 드넓은 공간을 거로지른다. 감응은 행성에서 행성의 지배를 받는 인간까지 멀리에서 벼락 치듯 일어나기도 하고, 이와는 반대로 "장례식에서 사용되어" 다만 죽음과 인접했다는 사실만으로 향기를 들어마시는 모든 사람을 "슬프고 기력 없게' 만들 애도의 장미처럼 접촉만으로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응의 힘은 매우 커서 단지 접촉만으로 솟아나거나 공간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며, 세계 내에 사물의 움직임을 초래하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이라도 가까이 접근시킨다. (...)

  감응은 동일자의 몹시 강하고 집요한 심급이기 때문에, 유사성의 형태들 중의 하나로 그치지 않고, 사물을 서로 동일하게 하고 뒤섞고 사물의 개체성을 사라지게 하고, 따라서 사물을 이전의 상태와 무관하게 만드는 위험한 동화의 힘을 지니고 있다. 감응은 변형시킨다.응은 변질이지만 동일성의 방향으로 그렇게 한다. 그래서 감응의 힘이 균형을 이루지 않고 있다면, 감응은 세계를 한 지점, 하나의 동질적인 덩어리, 동일자의 특징 없는 형태로 끌어내릴 것이다.  (...) 그래서 감응의 쌍둥이 형상, 즉 반감(反感)에 의해 감응이 보완된다. 반감은 사물을 고립된 상태로 유지하고 동화를 방해한다. 반감으로 인해 각자의 종(種)은 끈질긴  차이와 현재의 상태에 머무려는 성향을 지니게 된다. (...)

  2. 표징

  그렇지만 체계는 닫혀 있지 않다. 어떤 열린 부분이 남아 있다. 유사성의 새로운 형상에 의해 고리가 완결되지 않는다면, 즉 고리가 완전하고 명백하게 되지 않는다면, 닮음의 작용 전체는 이 열린 부분을 통해 새어나가거나 어둠에 묻힐 위험이 있을 것이다. 콘베니엔티아, 아이물라티오, 유비, 감응은 사물들이 서로 닮을 수 있으려면 세계가 어떻게 움츠러들거나 이중화되어야 하는지 또는 반영되거나 연쇄되어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유사성의 경로와 이 경로가 어디를 통과하는지에 관해 말해주지만, 유사성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유사성을 알아볼 수 있는지, 어떤 표지(標識)로 유사성을 식별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아마도 우리는 경이로울 정도로 많은 닮음이 오래전부터 세계의 질서에 의해 갖추어졌다는 사실을 짐작하지도 못하면서, 우리에게 돌아올 더 큰 이익을 위해 그 많은 닮음을 가로지르는 일이 있을지 모른다.

  바꽃이 안질(眼疾)을 치유한다거나 주정(酒精)을 섞어 만든 빵은 호두 가루가 두통에 좋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 표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비밀은 어제가지나 묻혀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화성과 적대적이라거나 토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표시를 그의 몸이나 얼굴의 주름살에서 찾아볼 수 없다면, 그와 행성 사이에 상사(相似) 관계 또는 적대관계가 있다는 것을 과연 알 수 있을까? 묻혀 있는 유사성이 사물의 표면에 표시되어야 한다. (...)

  표징(表徵) 없는 닮음은 없다. 유사한 것들의 세계는 표시가 있는 세계일 수밖에 없다. 피라겔수스는 이렇게 말한다. "신이 인간을 위해 창조한 것과 신이 인간에게 베푼 것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다. ... 설령 신이 어떤 것을 감추었다 해도, 보물을 땅속에 파묻은 사람이 나중에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보물의 위치를 표시하듯, 신도 역시 모든 것에 특별한 표지를 해 두어 눈에 보이는 외부 표적을 남겨 두었다." 유사성에 대한 지식은 이러한 표징의 발견과 해독에 근거한다. (...) 표징들의 세계는 비가시적인 것에 대한 가시적인 것의 관계를 바꾸어 놓는다. 닮음은 세계의 깊은 곳으로부터 사물을 가시화하는 것의 비가시적 형태였다. 그러나 비가시적인 형태를 밝히기 위해서는 그것을 깊은 비가시성에서 끌어낼 가시적 형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계의 모습은 문장(文章), 특징, 지표, 모호한 말, 이를테면 터너(영국의 식물학자)가 말한 "상형문자"로 뒤덮혀 있다. 그래서 직접적 닮음의 공간은 방대한 책이 펼쳐진 것과 같과 같이 같아지는데, 그 책은 표지 기호로 온통 덮여 있고, 매 쪽마다 기이한 형상들이 교차하고 때로는 되풀이된다. 그것들을 해독하기만 하면 된다. "대지의 내장에서 생겨나는 모든 풀, 초목, 나무 등이 그만큼의 신기한 책과 기호라는 것은 사실 아닌가." 안쪽에 사물이 비치고 또 사물의 이미지를 반사하는 거울은 사실 말의 속삭임으로 가득채워져 있다. (...)

  닮음은 표징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표징이 해독될 수 있도록 표시되지 않는다면, 어떤 닮음도 관찰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호는 무엇일까? 세계의 모든 양상과 그만큼 많은 서로 교차하는 형상 사이에서, 비밀스럽고 본질적인 닮음을 가리키는 것,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특징이 여기에 있음을 인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형태가 기호의 독특한 기호 가치일까? (...)

- 『말과 사물』(지은이 : 미셸 푸코 · 옮긴 이 : 이규현 · 민음사 · 2012년 · 원제 : Les mots et les choses, 1966년) <2.세계의 산문> p.4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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