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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숭고미와 전쟁, 그리고 종교

by 이우 posted Apr 18, 2019 Views 1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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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은 어떤 대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그 대상을 두려운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곧 우리가 순전히, 가령 어떤 대상에 저항을 해보려는 경우를 생각하고, 그 경우에 모든 저항이 어림없는 허사가 될 것으로 어떤 대상을 판정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유덕한 사람은 신 앞에서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신을 두려워 한다. 왜냐하면 그는 신과 그의 계명들에 저항하려는 것을 그의 염려스러운 경우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경우가 그 자체로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신을 두려운 것으로 인식한다.

  두려워하고 있는 자자연의 숭고한 것에 관해 전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것은 경향성과 취향에 사로잡혀 있는 자가 미적인 것에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전자는 자기에게 겁 주는 대상을 보는 것을 피한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어떤 전율에서 흡족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괴로움의 끝남에서 오는 쾌적함이 기쁨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위험에서의 해방에서 비롯한 것으로, 다시는 결코 그러한 위험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겠다는 결의에 따르는 기쁨이다. 정말이지 사람들은 그러한 감각은 또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어하지는 않으며, 그러한 위험의 기회를 스스로 찾는 일은 더욱이나 없다.

  기발하게 높이 솟아 마치 위협하는 것 같은 암석, 번개와 천둥소리와 함께 몰려오는 하늘 높이 솟아오른 먹구름, 온통 파괴력을 보이는 화산, 폐허를 남기고 가는 태풍, 파도가 치솟은 끝없는 대양, 힘차게 흘러내리는 높은 폭포와 같은 것들은 우리의 저항하는 능력을 그것들의 위력과 비교할 때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안전한 곳에 있기만 한다면, 그런 것들의 광경은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더욱 더 우리의 마음을 끌 뿐이다. 우리가 이러한 대상을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은, 그것들이 영혼의 힘을 일상적인 보통 수준 이상으로 높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자연의 외견상의 절대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저항하는 능력을 우리 안에서 들춰내주기 때문이다. (중략)

  자연이 우리의 미감적 판단에서 숭고하다고 판정되는 것은, 자연이 두려움을 일으키는 한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이 우리 안에 자연이 아닌 우리의 힘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힘은 우리가 심려하고 있는 것, 즉 재산, 건강, 생명을 작은 것으로 간주하는 힘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요소들에 관해서는 물론 우리가 그에 종속되어 있는 자연의 위력을 우리에 대해서는 그리고 우리의 인격성에 대해서는, 우리의 최고 원칙들이 그리고  이 원칙들의 고수냐 포기냐가 문제일 때에는, 우리가 그 아래에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러한 강제력은 아니라고 간주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자연이 숭고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순전히, 자연이 상상력을 고양하여 마음이 자기 사명의 고유한 숭고성이 자연보다도 위에 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경우들을 현시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감격적인 흡족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이 안전함을 알아야야만 한다는 사실로 인하여, 그러니까 위험이 진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듯이 우리 정신의 숭고성도 역시 진지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앞서 말한 자기존중은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는다. 왜냐하면 흡족은 여기서 단지 그러한 경우에 들춰내는 우리의 자연 본성에 있으되, 그것의 발전과 수련은 우리에게 맡겨진 의무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에 진리가 들어 있다. 인간이 자기의 반성을 거기에까지 뻗친다면, 인간이 제아무리 자기가 현재 실제로 무력하다고 의식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중략)

  무릇 미개인에게조차 가장 큰 경탄의 대상은 무엇인가? 겁먹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그러므로 위험을 피하지 않으며, 동시에 깊은 성찰을 가지고 강건하게 일에 착수하는 사람이다. 최고로 개명된 상태에서도 전사(戰士)에 대한 이러한 각별한 존경은 남아 있다. 다만 사람들이 그에 더하여 전사가 평화의 덕,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인격에 대한 합당한 배려도 보여줄 것도 요구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바로, 이 점에서 위험을 뚫고 나가는 그의 마음의 불요불굴성이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치가와 장군을 비교하여 어느 편이 더 우월한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가에 관해 아무리 논쟁을 벌여도, 미감적 판단은 후자의 편을 들어 결정하는 것이다.

  전쟁조차도, 만약 그 전쟁이 질서 있게, 그리고 시민의 권리를 신성시하면서 수행된다면, 그 자체로 어떤 숭고한 것을 가지는 것이며, 전쟁을 이런 식으로  수행한 국민이 더 많은 위험에 처했고 그 위험 아래서 용기 있게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 전쟁은 그 국민의 사유방식(성향)을 그만큼 더 숭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에 반해 오랜 평화는 한낱 상인정신을, 그리고 그와 함께 천박한 이기심과 비겁함과 유약함을 만연시키고 국민의 사유방식(성향)을 저열하게 만들고는 한다.

  숭고한 것이 위력에 부가되는 한에서 숭고한 것의 개념의 이러한 풀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쟁론이 있을 것 같다. 즉 뇌우, 폭풍우, 지진 같은 것이 일어날 때에 우리는 신이 분노한 모습으로, 그러나 동시에 또한 숭고한 모습으로 자신을 현시하는 것으로 표상하고 만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 그러한 위력의 작용보다도, 그리고 그렇게 보이는 바, 심지어는 그러한 위력의 의도들보다도 우리의 마음이 압도적이라는 상상은 어리석은 일이자 모독일 터이다. 이런 경우에 우리 자신의 자연본성이 숭고하다는 감정보다는 오히려 굴종과 비굴과 전적인 무력감이 그러한 대상의 현출에 어울리고, 또한 통상 그와 같은 자연사건의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대상의 이념과 결합하고 있는 마음의 정조인 것으로 보인다.

  종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채로 참회하면서 불안에 찬 몸짓과 목소리로 예배드리는 것이 신성(神性)의 현전에 유일하게 알맞은 거동인 것으로 보이고, 그래서 대다수의 민족들은 이런 거동을 받아들여 아직도 준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정조도 어떤 종교나 그 대상의 숭고성의 이념과 거리가 멀다. 저항할 수 없고 또한 동시에 정의로운 의지를 가진 위력에 대하여 간악한 마음씨를 가지고서 거슬리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어, 자기 안에 그러한 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신의 위대함을 경탄할 만한 마음의 상태에 전혀 있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정한 관조를 위한 정조(情調)와 전적으로 자유로운 판단이 요구된다. 그가 그의 정직하고 신에게 적의한 마음씨를 의식할 때에만, 그리고 그가 신의 의지에 맞는 마음씨의 숭고성을 자기 자신에게서 인식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그러한 자연의 작용들은 신의 분노의 폭발로 보지 않고서 그것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한에서, 저 위력의 작용들은 그 안에 이 존재자의 숭고성의 이념을 환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중략) 겁 먹은 인간이 그를 존경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의지에 굴복할 것을 아는 초강력한 존재자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이로부터 선한 품행의 종교 대신에, 도대체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은총의 갈구와 아첨만이 생겨날 따름이다.

  그러므로 숭고성은, 자연의 사물 속이 아니라, 오직 우리 마음 안에 함유되어 있다. 우리가 인간 안의 자연을,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한 우리 밖의 자연에 대해 압도적임을 의식할 수 있는 한에서 말이다. 우리의 힘들을 촉구하는 자연의 위력을 포함해서 이러한 감정을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은 그런 경우 숭고하다고 일컬어진다. 오직 우리 안에 이런 이념을 전제하고서만, 그리고 그 이념과의 관계에서만 우리는 이러한 존재자의 숭고성의 이념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존재자는 그가 자연 속에서 증명하는 그의 위력에 의해서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도, 저러한 위력을 두려움 없이 판정하고 우리의 사명이 저러한 위력 이상으로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안에 놓여 있는 능력에 의해서 우리 안에 내면적인 존경을 일으켜주는 것이다. (...)

- 『판단력비판』(특별판 한국어 칸트 선집 · 지은이 : 임마누엘 칸트 · 옮긴이 : 백종현 · 아카넷 · 2017년 · 원제 : Kritik der Urteilskraft, 1790년)  <B. 자연의 역학적 숭고에 대하여> p270~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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