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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상상력 · 지성 · 자연

by 이우 posted Apr 12, 2019 Views 20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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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험 일반의 가능성 및 경험 대상들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이 근거하는 주관적인 세 인식 원천이 있는데, 그것은 감각기능(감각기관, 감관), 상상력, 그리고 통각이다. 이것들 중 어느 것이라도 경험적으로, 말하자면 주어진 현상들에 대한 적용에서 고찰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 모두는 또한 이 경험적 사용까지를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요소 내지는 토대이다. 감각기관(감관)현상들을 경험적으로 지각에서 표상하며, 상상력은 연합과 재생에서, 통각(銃覺)은 이 재생된 표상들과 그로부터 이 표상들이 주어진 현상의 동일성에 대한 경험적 의식, 그러니까 인지에서 현상들을 경험적으로 표상한다.

  그런데 모든 지각 기초에는 순수 직관(표상들로서 지각과 관련해서는 내적 직관의 형식인 시간)이 선험적으로 놓여 있으며, 연합의 기초에는 상상력의 순수 종합이, 그리고 경험적 의식의 기초에는 순수 통각, 모든 가능한 표상들에서 자기 자신의 일관된 동일성이 선험적으로 놓인다. (중략) 우리는 언제고 우리의 인식에 속할 수 있는 모든 표상들과 관련해 우리 자신의 일관된 동일성을 모든 표상들을 가능케하는 필연적인 조건으로서 선험적으로 의식한다. 왜냐하면 표상들은 내 안에서, 그것들이 다른 것들과 함께 한 의식에 속하고, 따라서 적어도 한 의식에서 연결될 수 있음으로써만 무엇인가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선험적으로 확고하며, 우리 표상들의(따라서 직관에서도) 모든 잡다의 통일의 초월적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주관에서 잡다의 통일은 종합적이다. 그로므로 순수 통각은 모든 가능한 직관에서 잡다의 종합적 통일 원리를 제공한다.*

  이제 우리는 상상력에서의 잡다의 종합에 직관을 구별하지 않고 순전히 잡다의 결합에만 관계할 때, 그것을 초월적이라 칭한다. 그리고 이 종합의 통일이 통각의 근원적 통일과 관계 맺어 선험적으로 필연적으로 표상될 때, 그것을 초월적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이 통각의 이 근원적 통일은 모든 인식의 가능성의 기초에 놓여 있으므로, 상상력의 종합의 초월적 통일은 모든 가능한 인식의 순수 형식이고, 따라서 이것을 통해서 가능한 경험의 모든 대상들은 선험적으로 표상될 수밖에 없다.

  상상력의 종합과 관계 맺고 있는 통각의 통일 기능이 지성이고, 그러니까 상상력의 초월적 종합과 관계하는 통각의 통일 기능순수 지성이다. 그러므로 모든 가능한 현상들과 관련해서는 상상력의 순수 종합의 필연적 통일을 함유하는 선험적 순수 인식들은 지성 중에 있다. 그런데 이것이 범주들, 곧 순수 지성 개념들이다. 따라서 인간의 경험적 인식력은 반드시 하나의 지성을 함유하고, 이 지성은 비록 직관을 매개로 해서, 그리고 상상력에 의한 직관의 종합매개로 해서이긴 하지만, 감각의 모든 대상들과 관계하고, 그러므로 일체의 현상들은 가능한 경험의 자료로서 이 지성 아래 종속한다.

  이제 현상들의 가능한 경험과 이 관계 맺음은 마찬가지로 필연적이므로―왜냐하면, 이 관계맺음이 없다면, 우리는 현상들을 통해서 어떤 인식도 얻지 못할 터이고, 그러니까 현상들은 우리완는 전혀 아무런 상관도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이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순수 지성은 범주들을 매개로 하는 모든 경험들의 형식적 종합적 원리이고, 그래서 현상들은 지성과 필연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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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는 범주를 매개로 한 지성의 현상들과 필연적 연관을 아래에서부터, 곧 경험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해 명시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최초의 것은 현상이고, 현상이 의식과 결합하면, 그것은 지각이라고 일컬어진다. (하나의 적어도 가능한 의식과의 관계 없이는 현상은 우리에 대해서 결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을 터이고, 현상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객관적 실재성을 갖지 못하며, 단지 의식 안에서만 실존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일반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닐 터이다.) 그러나 현상모두 잡다를 함유하고, 그러니까 여러 지각들은 마음 안에서 그 자체로는 흩어져 낱낱으로 마주쳐지는 것이므로, 이 지각들의 결합은 필요불가결하다. 지각들은 이 결합을 감각기능 자체 내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로므로 우리 안에는 이 잡다를 종합하는 능동적인 힘이 있고, 이 힘을 우리는 상상력이라 부르며, 이것이 지각들에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작용을 나는 포착이라 부르는 바이다. 상상력은 말하자면 직관의 잡다를 하나의 상(像)으로 만드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은 그 전에 인상들을 자기활동 안으로 받아들여야, 다시 말해 포착해야 한다.

  그러나 이 잡다의 이 포착조차도, 만약에 마음이 한 지각에서 다른 지각으로 옮겨갈 때에 그 앞 지각을 후속하는 지각들에 대해 환기시키고, 그렇게 해서 지각들의 전 계열을 눈앞에 그려주는 주관적인 근거, 다시 말해 단지 경험적일 따름인 상상력의 재생적인 기능이 없다면, 혼자서는 어떠한 상도 또 인상들의 어떤 연관도 지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만약 표상들이 마치 함께 부딪치듯이 서로 아무런 규칙 없이 재생한다면, 다시금 표상들의 어떠한 일정한 관계도 생기지 않고, 한탄 무규칙적인 표상들의 집적(集積)만이 생길 뿐 전혀 아무런 인식도 생겨나지 못할 터이므로, 표상들의 재생은 하나의 규칙을 가져야 하며, 이 규칙에 따라서 한 표상은 상상력 안에서 다른 어떤 표상이 아니라 오히려 이 표상과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규칙들에 따르는 이 재생의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근거를 사람들은 표상들의 연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제 이 연합의 통일이 또한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만약 현상들이 상상력에 의해 이 포착의 가능한 종합적 통일의 조건 아래에서와는 다르게 포착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현상들이 인간 인식들의 연관에 맞는다는 것 역시 전적으로 우연적일 터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각들을 연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과연 그 지각들이 또한 연합될 수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역시 그 자체로는 전혀 정해진 바 없고 우연적이겠기에 말이다. 만약 지각들이 연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한 덩어리의 지각들, 그리고 또한 많은 경험적 의식이 내 마음에서 마주치지만 서로 떼어져 있어 나 자신에 대한 하나의 의식의 귀속되지 않은 채로 있는 그런 전 감성이 어쩌면 있을 수도 있는 터이지만, 그러나 사실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지각을 하나의 의식에 귀속시킴으로써 나는 모든 지각에 대해서, 나는 그것들을 의식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현상들을 그 자체로 연합 가능한 것이고, 재생에서 일관된 연결의 보편적 규칙들에 종속하는 그런 감각소여로 보는, 모든 현상들에 긍(亘)하는 법칙의 가능성 내지는 더 나아가 그것의 필연성이 그 위에 기초하는 하나의 객관적 근거, 다시 말해 상상력의 모든 경험적 법칙에 앞서 선험적으로 통찰되는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현상들의 모든 연합의 이 객관적 근거를 나는 현상들의 근친성이라고 부른다. (중략) 그러므로 한 의식에서 모든 경험적 의식의 객관적 통일은 모든 가능한 지각의 필수적 조건이기도 하고, 모든 현상들의 근친성은 선험적으로 규칙들에 기초하고 있는, 상상력에서의 종합의 필연적 귀결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또한 선험적 종합의 능력이며, 그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게 생산적 상상력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바이다. 그리고 상상력이 현상의 모든 잡다와 관련해서 의도하는 것이 다름 아니라 그 현상의 종합에서의 필연적 통일인 한에서, 이것은 상상력의 초월적 기능이라 불릴 수 있다. 그렇기에 낯설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밝혀진 바로 명료한 것은 상상력의 이 초월적 기능을 매개로 해서만 현상들의 근친성조차도, 이와 함께 연합도, 그리고 이것을 통해 마침내는 법칙에 따르는 재생이, 따라서 경험 자체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상상력의 초월적 기능 없이는 대상들의 어떠한 개념들도 한 경험으로 합류하지 못할 터이니 말이다. 왜냐하면 순수 통각적인 항존 불변의 '나'는 우리의 모든 표상들의 상관자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선험적인 인식의 기초에 놓여 있는, 인간 영혼의 기본기능인 순수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이 상상력을 매개로 해서 우리는 한 쪽 직관의 잡다와 다른쪽 순수 통각의 필연적 통일의 조건을 결합한다. 두 끝인 감성지성상상력의 이 초월적 기능을 매개로 해서 필연으로 결합해야 한다. (중략)  잡다를 인지하는 이 근거들이, 순전히 경험 일반의 형식이 되는 한에서, 바로 저 범주들이다. 그러니까 상상력의 종합에서의 형식적 통일과, 이를 매개로 한 현상들에게까지 내려가는 (인지, 재생, 연합, 포착에서의) 상상력의 모든 경험적 사용도 저 범주들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상들은 저 요소들에 의거해서만 인식에, 그리고 도대체가 우리 의식에, 따라서 우리 자신에게 소속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현상들에서 그 질서와 규칙성을 우리는 스스로 집어넣는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그 질서와 규칙성을, 바꿔 말해 우리 마음의 자연(본성)을 근원적으로 집어넣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자연 안에서 그것을 밝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자연통일은 현상들의 연결의 하나인 필연적인, 즉 선험적으로 인정한 통일이라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 마음의 근원적 인식 원천들 가운데 그러한 선험적 통일의 주관적 근거들이 들어 있지 않다면, 그리고 이 주관적인 조건들이 동시에 경험에서 일반적으로 대상을 인식할 가능성의 근거가 됨으로써 객관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선험적으로 종합적 통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위에서 지성감성의 수용성을 대비해서 인식의 자발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사고하는 능력이라 하기도 하며, 또는 개념의 능력이나 판단의 능력이니 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설명들은 결국 하나로 귀착한다. 이제 우리는 지성을 규칙들의 능력이라고 특정지을 수 있다. 이 표지(標識)는 좀더 유용하고, 지성의 본질에 더욱 접근한다. 감성은 우리에게 직관의 형식들을 주지만, 지성은 규칙들을 준다. 지성은 항상 현상들에서 어떤 규칙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것들을 정사(精査)하는 일을 한다. 규칙들은 객관적인 한에서, 그러니까 대상의 인식에 필연적으로 부속하는 한에서 법칙이라 일컬어진다. 우리는 비록 경험을 통해서 많은 법칙들을 알게 되지만, 이것들은 단지 상위 법칙들의 특수한 규정들일 따름이며, 그 상위 법칙들의 최상위 법칙들은―그 아래에 여타 모든 법칙들이 포섭되는 바―선험적으로 지성 자신으로부터 유래하고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상들에게 그 합 법칙성을 부여하며,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경험을 가능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지성은 단지 현상들을 비교해서 규칙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연을 위한 법칙을 세운다. 다시 말해, 지성이 없다면 도무지 자연, 즉 규칙에 따른 현상들의 잡다의 종합적 통일이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상들은 그 자체로는 우리 밖에서는 생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지성 자신이 자연 법칙들의 원천이요, 자연의 형식적 통일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못 지나치고 불합리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그러한 주장은 옳고, 대상에 즉 경험에 부합한다. (...)

  ...........................

  *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이 명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모든 표상들은 한 가능한 경험적 인식과 필연적으로 관계 맺는다. 왜냐하면, 만약 표상들이 이것과 관계 맺음이 없고, 그러니까 의식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표상들이 전혀 실존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경험적 의식은 초월적(모든 특스한 경험에 선행하는) 의식, 곧 나 자신에 대한 의식, 즉 근원적 통각과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인식에서도 모든 의식이(나 자신에 대한) 한 의식에 귀속된다는 것은 단적으로 필연적이다. 이제 여기에 선험적으로 인식되는 의식의 잡다와 종합적 통일이 있으며, 그것은 바로 공간과 시간이 순수한 직관의 형식과 관련한 선험적 종합 명제에게 그 근거를 제공하듯이, 순수 사고와 관련한 선험적 종합 명제를 위한 근거를 제공한다. 서로 다른 경험적 의식은 단 하나의 자기인식 안에서 통일되어야 한다는 이 종합 명제가 우리 사고 일반의 절대적으로 첫째인 종합의 원칙이다. 그러나 순전한 표상, '나'는 여타 모든 표상들―'나' 표상이 이것들의 집합적 통일을 가능하게 하거니와―과의 관계맺음에서 초월적 의식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이 표상이 이제(경험적 의식으로서) 명료하냐 애매하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더 나아가 이 의식의 현실성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모든 인식의 논리적 형식의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능력으로서의 이 통각과의 관계에 의거한다는 사실이다.

  ** 순수 통각인 '나는 사고한다(의식한다)'는 것은 나의 모든 표상들에 수반할 수밖에 없다"(B131)의 표현과 그 의미가 같다. 이것은 칸트가 데카르트의식-대상 구조, '나는 무엇인가를 의식한다(ego-cogito-cogitatum)'와 더 나아가 대상의식의 자기의식 구조,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의식하고 있음을 의식한다(ego-cogito me-cogitare-cogitatum)'인간 의식의 기본 구조로 파악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이른바 '사물 그 자체(Ding an sich selbst)'를 염두에 두고서 "우리 감성의 순전한 현상들 (...), 그러나 그것의 진짜 대응자, 다시 말해 사물 그 자체"(A30=B45)라고 표현하는 대목, 또는 "통각의 통일의 상관자"(A250)로서 "초월적 문맥이 착종되어, 의미하는 바가 분명치 않은 문장이다.

- 『순수이성비판』(특별판 한국어 칸트선집·지은이: 임마누엘 칸트·옮긴이: 백종현·아카넷·2017년·원제 : Kritik der reinen Vernuft, 1781년)  <제3절. 대상들 일반에 대한 지성의 관계와 이것들을 선험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에 대하여> p.33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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