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노동이 근대의 대중을 형성했다는 것, 실제로 노동자 자체를 생산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제시되었다. 일반적으로 '개인'은 단순한 생물학적 실체일 뿐 아니라 사회 과정의 반성 형식이며, 스스로를 즉자적 존재로 여기는 의식은 수행 능력의 향상을 위한 '가상'으로서 근대 경제에서 개별화된 존재는 가치 법칙의 단순한 대리인이 될 뿐이다. 개인의 사회적 역할뿐 아니라 개인 자체의 내적 구성 또한 그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로 볼 때 현 단계에서 결정적인 것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는 범주이다. 이 점에서 축적 이론이 의미하는 것은 "생산 수단에 활력을 불어 넣는 노동력의 양과 비교되는 생산 수단의 양적 증가"(Marx, Kapital, 쨔두 1932.s. 655)이다. 사회 통합이―특히 전체주의 국가에서는―주체들을 점점 배타적으로 물질 생산 연관 구조의 부분 계기로 만들고 있다면, '자본의 기술적 결합 속에서의 변화'는 생산 과정의 기술적 요청에 의해 파악되고 이에 의해 비로소 구성된 것 안에서 수행된다. 인간의 유기적 결합이 증대되는 것이다. 주체들을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목적이 아니라 생산 수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가변 자본에 대한 기계의 비율과 함께 증가한다. 인간의 '기계화'라는 입에 발린 말은 거짓말인데 그 이유는, 이러한 어투가 인간을 정적인 존재로 파악하면서 인간이 외부의 영향에 의해, 즉 외적 생산 조건 속에 순응함으로써 기형화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형화하는 실체나, 사회적 메카니즘이 단순히 외부로부터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론적 내면성은 없는 것이다.
기형화는 인간 내부에 있는 병이 아니라 사회의 병으로서 사회는, 자연 속에서 생리 현상이 그러하듯, '유전적 오점'을 지니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을 생산하는 것이다. 노동력이 상품으로 전환되면서 시작된 이런 과정은 인간의 뼛속 깊숙이 침투하여 개개의 인간 충동을 교환관계의 범주로서 선험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만들고 대상화하게 됨에 따라 삶이 지배적 생산 관계에서 재생산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삶의 의지 자체가 삶의 의지의 부정에 의존하며, 주체적인 삶을 소멸시킨다. 주체적인 삶과 비교할 때 모든 성취는 '적응'이 되고 모든 활동은 '순응'이 된다. (...)
개인 속에서 완성된 노동 분업, 개인의 극단적 객관화가 개인의 병적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정신병적 성격'은 모든 전체주의적 대중운동의 인류학적 전제가 된다. 확고한 성격이 이처럼 기분파적 행동방식으로 넘어가는 것―겉보기에는 활력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인간의 유기체적 조직화가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마음의 무게 중심을 잡고 외부의 자극에 진득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 '재빠른 반응'은 자발성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을 중심의 권력이 적절히 배치하고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눈금자 같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
- <미니마 모랄리아>(테오도르 아도르노 · 길 · 2005년 · 원제 : Minima Moralia. Reflexionen aus dem bescha"digten Leben, 1951년) p.30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