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무(無)에서 생겨나지 않음
(...) 그러므로 정신의 이 두려움과 어둠을,
태양의 빛살과 비치는 창들이 아니라,
자연의 모습과 이치로 떨쳐버려야 한다.
그것의 첫 원리는 다음과 같은 것에서 우리를 위한 시작점을 얻어야 한다
즉 그 어떤 것도 신들의 뜻에 의해 무(無)로부터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로 두려움이 모든 인간을 사로 잡고 있다.
그것들이 땅과 하늘에서 많은 것들을 보는,
그것들의 작용 원인을 그 어떤 이치로써도 살필 수 없고
그것이 신의 능력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라서 우리가, 그 어떤 것도 무(無)로부터 생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때는 이 사실로부터 우리가 쫒는 것을 대 제대로 보게 될 것이다.
어디서 각 종(種)의 사물들이 생성될 수 있는지도,
어떤 방식으로 각각이 신들이 애쓰지 않고도 만들어지게 되는지도.
왜냐하면, 만일 이것들이 무로부터 만들어졌다면,
모든 것들로부터 모든 종(種)이 생겨날 수 있었을 것이고, 어떤 것도 씨가 필요치 않았을 터이니 말이다.
먼저 바다로부터 인간들이, 땅으로부터 비늘 가진 종이 생겨날 수 있었을 것이고,
새들은 하늘로부터 튀어나올 수 있었으리라.
밭 가는 짐승들과 다른 가축들, 온갖 종류의 야수들이
알 수 없는 근원으로부터 나와 경작지와 황무지를 채울 것이다.
과일들은 나무들에 의해 반복해 생겨나지 않고 바뀌어갈 것이며
온갖 나무가 온갖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진정, 각각의 것에게 낳아주는 몸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사물들에게 분명한 어머니가 확립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 그러하듯 각각의 것들이 정해진 씨들로부터 생성되므로,
각자의 재료와 첫 몸이 들어 있는 거기로부터
그것들은 생겨나고 빛의 해안으로 나오도다.
이런 연유로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생겨나기는 불가능하도다.
개별적 사물들에게 달리 나뉜 능력이 들어 있으므로.
왜 우리는 봄에 장미가, 여름 열기에 곡식이
가을이 권고할 때 포도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가.
만일 사물들의 특정한 씨앗이 자기 때에 함께 흘러나와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들을 펼쳐 놓는 게 아니라면. (...)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무(無)로부터 만들어질 수 없음을 시인해야 한다.
사물들에게는 각각의 것이 거기서 생겨나
공기의 부드러운 산들바람 속으로 보내질 수 있는 바. (...)
아무 것도 무(無)로 돌아가지 않음
여기에 다음 것이 덧붙여진다.
즉, 자연은 각각의 것들을 다시금 그 자신의 알갱이로 해체된다는 것,
사물들은 결코 무(無)가 되도록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물이 그 최종적인 부분까지 필멸(必滅)하는 것이라면,
각각의 사물은 갑자기 눈 앞에서 채여가서 소멸할 테니까.
그것의 부분들에게서 해체를 준비하고, 결합을 풀어헤칠 수 있는 그 어떤 힘도 필요치 않을 테니까.
하지만 현재 그러하듯, 각각의 것들은 영원한 씨앗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사물들을 타격으로써 흩어 나누거나,
빈곳들을 통해 안으로 똟고 들어가 해체하는 힘이 닥쳐오지 않는 한,
자연은 그 어떤 것의 파괴도 허용하지 않는다. (...)
어디로부터 종에 따라 양식을 공급하며 키우고 자라게 하겠는가?
토박이인 샘들과 멀리 바깥에서 오는 강들은 어떻게 바다를 채울 것인가?
창공은 어떻게 별들을 먹일 것인가?
지나가버린 무한한 세월과 날들이 스러지는 몸으로 모든 것을 소모해버렸어야만 하니 말이다.
그러나 만일 그 시간과 지나가버린 세월에
그것들로부터 사물들의 이 총체가 재생되어 유지된 그런 것들이 있었다면
그것들은 확실히 불멸의 본성을 부여받은 것들이다.
따라서 각각의 것들이 무로 돌려질 수는 없다.
만약 영원한 질료가 튼튼하든 느슨하든 그들 사이의 결합을 얽어 잡아주고 있지 않다면,
같은 종류의 힘과 원인이 모든 것을 다함께 파괴했을 것이다. (...)
기원들의 서로간의 결합은 각기 다르게 되어 있으며 질료는 영원한 것이므로,
각 사물의 조직에 충분히 날카로운 것으로 밝혀진 힘이 다가오기까지는
사물들은 손상되지 않은 몸체들로 이뤄진 채 남아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무로 돌아가지 않고,
모든 것이 분해에 의해 질료의 알갱이로 돌아간다. (...)
-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루크레티우스 · 아카넷 · 2012년 · 원제 : De Rerum Natura) p.3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