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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봉건제의 발생 · 절대왕정제의 탄생

by 이우 posted Aug 21, 2018 Views 17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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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인 문제 다음으로 내가 불랭빌리에의 분석 예로서 들고 싶은 것은, 그가 프랑크족에 관해 제기한 문제이다. 골에 들어온 프랑크인은 과연 누구인가? 내가 방금 여러분에게 했던 질문, 즉 비교적 적은 숫자로 골에 침입하여 그때까지 강했던 제국을 격파할 수 있었던 그 야만스럽고 무지한 사람들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가라는 질문의 반대 질문이다. 그러니까 로마인들의 허약성과 비교되는 프랑크인들의 강건함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프랑크인들의 힘은 우선 로마인들이 없어ㅇ도 좋다고 생각했던 것, 다시 말해서 무사적 귀족의 존재에서 나왔다. 프랑크 사회는 완전히 무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무사들은 비록 농노들(또는 평민에 귀속된 종들)를 뒤에 거느리고 있기는 했어도 근본적으로 프랑크족이었다. 왜냐하면 게르만 백성은 기본적으로 레우트(leute) 혹은 레우드(leudes), 즉 무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용병의 반대였다. (...) 이 무인들, 즉 무사 귀족들은 왕을 섬기고 있었지만, 그 왕의 기능은 평화시절에 분쟁을 해결하고 사법적 문제를 다루는 것뿐이었다. 왕들은 민간의 법관일 뿐 그 이외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왕들은 에루드 그룹, 즉 무인 그룹들의 공동 동의로 선출되었다. (...) 여하튼 프랑크 사회는 평화시에는 최소한의 권력이 있는 사회, 그너리까 최대한의 자유가 있는 사회였다.

  그런데 이 무사적 귀족들이 누렸던 자유는 무엇이었는가? 그 자유는 결코 독립의 자유가 아니고, 기본적으로 남을 존중하는 그런 자유가 아니었다. 게르만 무사들이 누렸던 자유는 기본적으로 이기주의와 탐욕, 전쟁에의 취미, 그리고 정복과 약탈에의 취미에 대한 자유였다. 이 무사들의 자유는 만인의 평등과 관용의 자유가 아니고, 지배에 의해서만 행사될 수 있는 자유였다. 다시 말하면 존중의 자유가 아니라 잔임함의 자유였다. 불랭빌리에의 계승자 가운데 하나인 프레리는 '프랑(franc)'이라는 말의 어원이 지금 우리가 이해하듯이 '자유'가 아니라 '잔인(ferox)'이라고 말했다. '프랑'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ferox와 정확하게 같은 의미로, 좋은 뜻과 나쁜 뜻이 있다고 프레레는 말한다. 그것은 '자만심 있는, 용감한, 오만한, 잔인한' 등의 뜻이 있다. 19세기말까지, 특히 니체에게서 우리가 다시 발견하는 그 유명한 '야만인'의 초상이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니체에게서 자유는 권력에의 취미, 특정의 탐욕, 복종을 모르고 다만 남을 복종시키려는 욕구 등에 다름 아닌 잔인성과 일치한다. "무례하고 거친 풍습, 로마식의 이름이나 언어·습속에 대한 증오, 용맹스럽고 경박하고 탐욕적이며 신의도 참을성도 없는 성마른 자유의 애호자" 등이 불랭빌리에와 그 후계자들이 금발머리의 기골이 장대한 새로운 야만인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수식어들이다. (...)

  금발에 기골이 장대한 이 게르만의 초상은 프랑크족의 전사들이 골에 들어오면서 어떻게 갈로 로맹인(Gallo-Romains:로마의 지배를 받던 골인들)들과의 동화를 거부하고, 특히 로마 제국법에 대한 복종을 거부했는지를 우선 설명해준다. 그들은 너무나 자유스러워서, 가시 말하면 너무나 오만하고 자만심이 강하여 전쟁의 수장이 로마적 의미에서의 군주가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자유스럽게 지배와 정복을 탐했으므로 각자 개인적인 자격으로 골의 땅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쟁의 수장이었던 왕은 프랑크의 정복으로 골 땅의 주인이 되지 않았고, 전사들 각자가 직접 승리와 정복의 과실을 향유했다. 그들은 각기 골 땅의 일부를 자기 것으로 확보했다. 그것은 아득히 먼 봉건제도의 시작이었다. 각자가 실질적으로 땅 한 조각씩을 가졌다. 왕도 자기 몫의 땅을 가졌다. 따라서 골 영토 전체에 대한 로마식의 주권은 없었다. (...)

  수아송의 항아리 이야기, 혹은 수아송의 항아리 역사 기술이 여기서 시작된다. 이 역사는 무엇인가? 아마도 여러분들은 교과서에서 그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것은 불랭빌리에와 그의 선배, 그리고 그의 후배들에게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그레고리우스(6세기 투르 지방의 주교. 10권으로된 <프랑크사의 저자. 이로써 프랑스 역사의 아버지로 추앙됨)의 책에서 이 이야기를 발굴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끝없는 역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상식이 되고 말았다. 수없이 많은 전투 끝에 클로비스가 전리품을 나누어줄 때, 아니 민간 재판관으로서 전리품의 분배 의식을 거행할 때, 그는 한 항아리 앞에서 "이건 내가 가져야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전사가 일어나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항아리를 가질 권리가 없소. 아무리 왕이라도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전리품을 나눠야 하오. 당신은 전쟁에서 얻은 것에 대해 아무런 선매권도, 절대적 선점권도 가지고 있지 않소. 전쟁을 통해 노획된 것은 여러 정복자들에게 절대 소유물로 분배되어야 하고, 왕이라고 해서 우선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오." 이것이 수아송의 항아리 이야기의 첫번째 국면이다. (...)

  여기서도 영국과의 비교는 매우 흥미롭다. 영국인들도 역시 이런 문제에 봉착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어떻게 6만명의 노르망 전사가 영국에 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일이 가능했는가? 불랭빌리에는 같은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였다. 즉 프랑크족이 정복된 땅에서 실질적으로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골인들에게 무기를 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무기를 완전히 몰수했고, 반면에 일반 민중과 완전히 다른 게르만인의 무사계급을 나라 한 가운데 고립시켰기 대문이라는 것이다. 골인들은 더 이상 무기가 없었지만 땅은 그대로 소유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게르만이나 프랑크인들은 싸우는 것 외의 다른 직업이 없었다. 그러니까 한쪽은 싸우고, 다른 한쪽은 토지에 남아 농사를 지었다. 게르만인들은 골인들에게 지대(地代)만을 요구했다. 이것이 그들의 군사적 기능을 확보해 주었다. 지대는 물론 그렇게 가볍지 않았지만 로마인들이 요구했던 세금보다는 훨씬 덜 무거웠다. (...) 불랭빌리에 말에 의하면 그들이 가진 것을 편안하게 소유함으로써, 즉 프랑크인은 골인들의 산업에 의해, 그리고 골인들은 프랑크인이 지켜주는 안보에 의해 서로 행복하게 살았다. 여기에 불랭빌리에가 만들어낸 것의 핵심이 있다. 그것은 6, 7, 8세기 이래 거의 15세기까지 유럽 사회를 특정 짓는 역사적·사법적 체제로서의 봉건제이다. (...)

  프랑크의 왕은 그가 전쟁 동안에만 지명된 전쟁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이중적인 상황의 왕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권력의 절대적 성격은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에만 효력이 있었다. (...) 전쟁기간 동안만 수장이었던 사람은 점령이 장기화함에 따라 전쟁의 수장 겸 민간의 수장이 되었다. 그러니까 군사적인 체제는 점령 상태에 의해 유지되었다. 거기에는 모종의 문제와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며, 평화시까지 군사 독재가 연장되는 것을 수락할 수 없었던 프랑크 전사들로부터의 반발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장해제인 채 남겨두는 것이 좋았을 골인들과 외국인들로부터 모집한 용병에 새로이 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하튼 귀족들은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려 애쓰는 왕권과 왕의 절대권 유지를 위해 조금씩 동원된 골 민중 사이에 끼여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가 수아송 항아리의 두번째 에피소드를 만나는 것은 바로 이 시점에서이다. 그것은 항아리에 손대지 못하도록 자신에게 가해진 금지를 의연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클로비스가 군대를 사열하면서 그 금지를 발설했던 무사를 알아본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용감한 클로비스는 자신의 커다란 도끼를 집어들고 "수아송의 항아리를 기억하라"고 말하면서 그 무사의 두개골을 박살냈다. 바로 이것이 단지 민간의 법관에 불과한 사람이 민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조차 자기 권력의 군사적 형태를 유지시킨 예가 된다. 그러니까 권력의 군사적 형태와 규율이 민사법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절대왕정은 태어났다. (...)

  두번째의 연합이 구성되었으니, 그것은 왕권과 골의 구(舊)귀족들 사이에서였다. 이것이 불랭빌리에가 했던 분석의 방식이다. 프랑크 군대가 들어왔을 때 골인들 중에서 가장 고통을 느낀 것은 어떤 계층이었을까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농민이 아니고 프랑크와 게르만의 무사들에게 땅을 몰수당한 귀족들이었다. 귀족은 그거을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이제 그들에게는 더 이상 땅이 없고 로마 국가도 사라졌으므로 유일하게 남은 도피처는 교회였다. 그래서 골의 귀족들은 교회로 도망쳤다. 그들은 교회체계를 발달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통해 그들이 유통시킨 신앙체계에 의해 자신의 영향력을 민중에게 뿌리내리려 확산시켰다. 귀족들은 교회 안에서 라틴어 실력을 연마했으며, 절대지배권의 법인 로마법을 갈고 다듬었다. 그래서 프랑크 군주들이 한편으로는 게르만의 귀족에게 대항하여 민중에 의존하고, 또 한편으로는 로마 방식의 국가(또는 왕국)를 건설해야만 했을 때 민중에 그토록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또 라틴어 실력과 함께 로마 법을 그토록 잘 알고 있는 그 사람들을 제외하고 과연 어디에서 연대세력을 찾을 수 있었겠는가? 군주가 절대왕권을 형성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이 새로운 군주들의 자연스러운 동지는 당연히 교회에 피신했던 골의 귀족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라틴어·로마·법·사법의 실행과 함께 절대왕권의 커다란 연합세력이 되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불랭빌리에는 앎의 언어, 또는 언어-앎의 체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응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그는 왕권과 민중 상이의 연합을 통해, 그리고 교회·라틴어·법의 실행을 통해 어떻게 무사 귀족의 단락(短絡)이 이루어졌는가를 보여준다. 라틴어는 공식언어가 되었고, 학문언어와 법률언어가 되었다. 귀족이 그들의 권한을 잃게 된 것은 그들이 다른 언어체계에 속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귀족은 게르만어를 사용했고, 라틴어를 몰랐다. 그래서 모든 새로운 법체계가 라틴어 칙령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닥쳤는지도 몰랐다. 그들이 너무나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교회와 왕은 그들을 계속 무지하게 내버려 두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했다. 불랭빌리에는 귀족교육의 역사를 죽 훑어본다. 예컨대 교회와 왕은 현세적 삶의 유일한 존재 이유로 피안의 삶을 강조하는 것은,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이승에서의 삶은 아무 중요성도 없고, 그들 운명의 본질은 저승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해서 소유와 지배에 탐욕스러웠던 게르만인들, 다시 말해서 현재에 그토록 집착했던 금발머리 큰 몸집의 무사들은 조금씩 자신의 땅과 자기 자신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하고, 마침내 그들의 재산과 권한을 박탈당한 기사적 인간, 혹은 십자군적 인간으로 변했다. 불랭빌리에에게 있어서 십자군 원정은 귀족이 완전히 피안의 세계를 지향했을 때 일어난 일들의 표현이며 발현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 바로 그 시기에 이 세상, 다시 말해서 그들의 땅 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왕과 교회, 그리고 골의 귀족들이 그들의 땅과 권한을 완전히 박탈할 수 있도록 라틴어로 법을 정비하고 있었다. (...)
 
 -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976,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 (미셸 푸코 (지은이), 박정자 (옮긴이) · 동문선 · 1998년 · 원제 : Il Faut Defendre La Societe, 1997년) p.176~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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