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에는 대상도 주체도 없다. 책은 갖가지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들과 매우 다양한 날짜와 속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이 어떤 주체의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 질료의 구실과 이 질료의 관계들의 외부성을 무시하게 된다. 지질학적 운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선한 신을 꾸며된다. 다른 모든 것들처럼 책에도 분절선, 분할선, 지층, 영토성 등이 있다. 하지만 책에는 도주선, 탈영토화 운동, 지각 변동(+탈지층화) 운동들도 있다. 이 선들을 쫓는 흐름이 갖는 서로 다른 속도들 때문에, 책은 상대적으로 느려지고 엉겨 붙거나 아니면 반대로 가속되거나 단절된다. 이 모든 것들, 즉 선들과 측정 가능한 속도들이 하나의 배치물을 구성한다.
책은 그러한 것들의 배치물이며, 그렇기에 특정한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없다. 책은 하나의 다양체이다. 그러나 다양하다는 것이 어떤 것에 귀속되기를 그친다는 것, 즉 독립적인 실사(實辭)의 지위로 격상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기계적 배치물들은 지층들을 향하고 있다. 이 지층들은 기계적 배치물을 일종의 유기체로, 또는 기표작용을 하는 하나의 총체성으로, 또는 하나의 주체에 귀속될 수 있는 규정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기계적 배치물들은 기관 없는 몸체로도 향하고 있다. 기관 없는 몸체는 끊임없이 유기체를 해체하고 탈기표작용적 입자들, 즉 순수한 강렬함들을 끊임없이 통과시켜 순환시키며, 스스로에게 여러 주체들을 끊임없이 귀속시켜 강도의 이름으로 하나의 이름만을 남긴다. 책의 기관 없는 몸체는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다. 고려되고 있는 선(線)들의 본성에 따라, 선들의 농도나 고유 밀도에 따라, 선들을 선발해내는 ‘고른판’에 선들이 수렴할 가능성에 따라 여러 기관 없는 몸체들이 있다. 다른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본질적인 것은 측정 단위이다.
글을 양화하라. 책이 얘기하는 바와 책이 만들어지는 방식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하나의 배치들로서 책은 다른 배치물들과 연결접속되어 있고 다른 기관 없는 몸체들과 관계 맺고 있을 뿐이다. 기의든 기표든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묻지 말아야 하며, 책 속에서 이해해야 할 그 어떤 것도 찾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물어보아야 한다. 책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지, 책이 무엇과 연결접속되었을 때 강렬함을 통과시키거나 가로막는지, 책이 어떤 다양체들 속에 다양체를 집어넣어 변형시키는지, 책이 자신의 기관 없는 몸체를 어떤 기관 없는 몸체들에 수렴시키는지. 하나의 책은 바깥을 통해서만, 바깥에서만 존재한다. (...)
- 『천 개의 고원 -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 김재인 · 새물결 · 2001년 · 원제 : 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1980년), <1. 서론> p.11~14.
(...) 우리들 각각은 배치물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다고 믿을 때에도 배치물의 언표를 생산한다. 또는 배치물의 언표를 생산할 때에도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다. 이 언표들은 얼마나 기묘한가. 그것들은 진정 광인의 담론이다. (중략) 개인적 언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전혀 없다. 모든 언표는 기계적 배치물, 다시 말해 언표행위를 하는 집단적 행위자의 산물이다. 고유명은 개인을 지칭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 개인이 자신의 진정한 고유명을 얻는 것은, 가장 엄격한 몰개성화가 실행되고 난 후에 개인을 관통해서 지나가는 다양체들에게 개인이 열릴 때이다. 고유명은 다양체에 대한 순간적 파악이다. 고유명은 강렬함의 장을 통해 이해되는 부정사의 주어이다. (...)
- 『천 개의 고원 -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 김재인 · 새물결 · 2001년 · 원제 : 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1980년), <1914년―2.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p.7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