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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 이미지 · 시간과 공간

by 이우 posted Jan 14, 2020 Views 1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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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물질과 기억.jpg


  (...) 순수 기억이 어떻게 잠재적 상태로 보존되는가 하는 것은 그것의 근본적인 무력함(impuissance)을 볼 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무의식적 심리 상태들을 생각하는 데서 갖는 혐오감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의식을 심리적 상태들의 본질적 속성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한 심리적 상태는 의식적이기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주목하는 데 그치도록 하자. 그러나 만일 의식이 단지 현재적인 것의 표식, 즉 현실적으로 체험된 것, 다시 말해 결국 작용하는 것의 특징적인 표식에 불과하다면, 그 때 작용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필연적으로 계속 존재하는 데도 의식에 더 이상 속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해서 심리학적 영역에서 의식은 실존(existence)과 동의어가 아니라, 단지 실제적 적용 또는 직접적 효용성과 동의어이다. 그리고 이 용어의 외연이 이와 같이 제한된다면, 무의식적 심리 상태, 요컨대 무력한 심리적 상채를 표상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덜 갖게 될 것이다. 의식이 장애 없이 작용할 경우에 나타나는 바 그대로의 의식 자체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건 간에, 다음과 같은 사실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신체적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자에게 의식은 특히 행동을 주재하고 선택을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의식은 결단을 직접적으로 선행하는 것들 위에 그리고 과거 기억들 중에 이 선행자들과 유용하게 조직될 수 있는 모든 것들 위에 자신의 을 투영한다. 그 나머지는 그늘 속에 머문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 작업의 시초부터 추적하고 있는 끊임없이 재생되는 환상을 새로운 형태로 다시 발견한다. 사람들은 의식이, 신체적 기능들과 결합된 다음에도, 우연적으로만 실천적이며 본질적으로는 사변을 항하는 기능이기를 바란다. 설사 의식이 순수 인식에 바쳐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간직한 인식들이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는 데서 가지게 될 이점을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의식이 자신에 대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을 조명하기를 포기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거기서부터 의식이 사실적으로 소유하는 것만이 권리적으로도 의식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의식의 영역 속에서 모든 실재는 현실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될 지 모른다. 그러나 의식에게 그 진정한 역할을 되돌려 주라. 내가 물질적 대상들을 지각하기를 멈출 때 그것들도 존재하기를 그친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듯이, 일단 지각된 과거가 사라진다고 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마지막 점을 강조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무의식의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난점들의 중심과 애매함의 근원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널리 퍼져 있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 표상이라는 관념은 명백한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그것을 항시 사용하며 그보다 더 상식에 친밀한 개념 규정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실로 모든 사람들은 우리 지각에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들이 물질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각되지 않은 어떤 물질적 대상, 상상되지 않은 어떤 이미지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정신적 상태가 아니라면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당신이 지각하고 있는 당신의 방 너머에는 이웃하고 있는 방들이 있고, 그 다음에는 집의 나머지 부분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당신이 거주하는 거리와 마을이 있다. 당신이 찬동하고 잇는 물질에 관한 이론이 무엇이건 간에, 마을과 길과 집의 다른 방들에 말할 때, 당신은 분명히 당신의 의식에는 부재하지만 그것의 밖에 주어져 있는 그만큼의 지각들을 생각하고 있다. 그것들은 당신의 의식이 그것들을 받아들임에 따라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미 있었다. 그리고 가정상 당신의 의식이 그것을 포착하지 못했으므로, 그것들을 무의식적 상태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의식 밖의 존재자, 대상들이 문제될 될 때는 명백한 것처럼 보이고, 우리가 주체에 대해 말할 때는 모호한 것처럼 보이는 사실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우리의 지각은 현실적이든 잠재적이든 두 노선을 따라 펼쳐진다.
이미지.JPG
  하나는 AB라는 수평선인데, 그것은 공간 속에서 동시적인 모든 대상들을 포함하며, 다른 하나는 CI라는 수직선인데, 시간 속에서 이어지면서서 배열된 우리 기억들이 그 위에 놓인다. 두 선분의 교차점인 I는 우리 의식에 현실적으로 주어진 유일한 점이다. 그런데 수평선 AB 전체의 실재성이 비록 지각되지 않은 채로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실재성을 상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반대로 수직선 CI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지각된 현재 I만이 우리에게 진실로 존재하는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점이다. 그러한 사실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두 계열 사이에 있는 이 근본적인 구분의 기초에는, 우리가 단번에 완전히 규명할 수 없는 혼란되거나 윤곽이 잘못 잡힌 많은 관념들, 모든 사변적 가치를 결여한 많은 가정들이 있다. 이 환상을 완전히 벗겨내기 위해서는, 그것의 기원을 찾으러 가서 그것의 모든 우회로들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의식과 관계 없는 객관적 실재성들과 객관적 실재성이 없는 의식의 상태들을 상정하게 하는 이중적 운동을 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그 때 공간은 거기서 서로 병렬되는 사물들을 무한히 보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시간은 그 안에서 잇따르는 상태들을 나타나는 족족 파괴할지 모른다. 이 작업의 일부는 제1장에서 이미지들을 다루었을 때 이미 완성되었고, 다른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가 물질의 관념에 대해 말할 때 완성될 것이다. 여기서는 몇 가지 본질적인 점들을 ㄱ아조하는 데 그치도록 하자.

  우선 AB라는 선분을 따라 배열된 대상들은,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가 지각할 것을 표현한다. 반면에 선분 CI는 이미 지각된 것만을 포함한다. 그런데 과거는 우리에게 더 이상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 과거는 자신의 가능한 작용을 소진해 버렸거나, 아니면 현재적 지각의 생기를 빌려 옴으로써만 영향을 회복할 것이다. 반대로 직접적 미래는 긴박한 행동으로, 아직은 소비되지 않은 에너지로 이루어진다. 물질적 우주에서 아직 지각되지 않은 부분은 약속과 위협으로 가득 차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우리에 대해 어떤 실재성을 갖는다. 우리의 지나간 실존에서 현실적으로 지각되지 않은 기간들은 실재성을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삶의 실제적 유용성과 물질적 필요들에 관계되는 이 구분은 우리의 정신 속에서 점점 더 선명한 형이상학적 구분의 형식을 취한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위치한 대상들이 우리에게 다양한 정도에서 우리가 사물들에 대해 행할 수 있거나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겪어아먄 하는 작용을 표현한다는 것을 우리는 보여준 바 있다. 이 가능적 작용의 지불 기한은 바로 상응하는 대상이 다소간 먼 거리를 두고 있음에 의해 표시되며, 따라서 공간 속에서의 거리는 시간 속에서 위협 또는 약속의 근접성의 척도를 나타낸다. 그리하여 공간은 이처럼 우리의 근접 미래의 도식을 우리에게 단번에 제공한다. 그리고 미래는 무한히 흐르고 있음에 틀림없기 때문에, 미래를 상징하는 공간은 브 부동성 속에서 무한히 열린 채로 머무는 속성을 갖는다.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우리 지각에 주어진 직접적인 지평은 우리에게 비록 지각되지 않고 존재하지만, 필연적으로 더 넓은 원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고, 이 원은 자신을 둘러싸는 다른 원을 포함하며, 이렇게 무한히 계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지각이 언제나 그것을 포함하는 더 넓은, 심지어 한정되지 않은 경험과의 관계에서만 하나의 내용일 수 있다는 것은, 연장된 한에서의 우리의 현실적 지각의 본질에 속한다. 이 경험은 지각된 지평을 넘어서기 때문에 우리 의식부재하지만, 그래도 역시 현실적으로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이처럼 현재적 실재들로 세워 놓는 이 물질적 대상들에 매달려 있다고 느끼는 데 반해, 지나간 것으로서의 우리의 기억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함께 이글고 가면서도 차라리 치워버린 척하고 싶어하는 그런 쓸모 없는 것들이다.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앞에 공간을 무한히 열어 놓게 하는 그 동일한 본능이 시간에 대해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 뒤에서 닫아버리게 한다. 그리고 연장된 한에서의 실재는 우리의 지각을 무한히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면에 우리의 내적인 삶에서는 현재적 순간과 함께 시작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실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 나머지는 거의 폐지된다. 따라서 하나의 기억이 의식에 다시 나타날 때는, 그것의 신비스러운 출현을 특수한 원인들에 의해서 설명해야 하는 유령의 효과를 우리에게 만들어낸다. 사실상 이 기억이 우리의 현재적 상태에 유착되어 있는 것은 지각되지 않은 대상들이 우리가 지각하는 대상들에 유착되어 있는 것과 완벽하게 비교될 수 있다. 그리고 무의식은 이 두 경우에서 같은 부류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태를 이처럼 표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간 속에서 동시적으로 배열된 대상들의 계열시간 속에서 연달아 전개돤 상태들의 계열 사이에서 차이들을 강조하고 반대로 유사성들을 제거하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계열들의 항들은 완전히 결정된 방식으로 조건지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항의 출현은 예견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내 방을 나온 후에 다음에 어떤 방들을 통과해야 하는지를 나는 안다. 반대로 나의 기억들은 외견상으로는 변덕스러운 순서로 나타난다. 따라서 표상들의 순서는 전자의 경우에는 필연적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우연적이다. 말하자면 내가 모든 의식의 밖에 존재하는 대상들에 관해 말할 때, 내가 실체화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필연성이다. 지각하지 못하는 대상들의 전체가 주어져 있다고 가정하는 데 있어서 내가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대상들의 엄밀하게 결정된 순서가 그것들에게 인과적 연쇄의 측면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나의 현재적 지각은 그것의 한 고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면 이 고리가 자신의 현실성을 나머지의 연쇄에도 전달한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리의 기억들도 동일한 종류의 연쇄를 형성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모든 절단들에 항상 현전하는 우리의 성격은 우리의 지나간 모든 상태들의 현실적 종합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응축된 형태 아래서 우리의 앞선 심리적 삶은 우리에게 외부 세계 이상으로 존재한다. 외부 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의 매우 작은 부분만을 지각하는 데 반해, 체험된 경험에 대해서는 그 전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체험된 삶을 이처럼 축약된 형태로만 소유하며, 우리의 과거 지각은 구분되는 구분되는 개별성으로 간주되므로 그것은 우리에게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한 효과 또한 그것들의 변덕에 따라서만 다시 나타나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처럼 완전한 소멸이나 번덕스러운 소생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히 현실적 의식이 매순간 유용한 것을 받아들이고, 잉여분을 순간적으로 물리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현실적 의식은 항상 행동을 향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과거 지각 들 중에서 최종 결정에 협조하기 위해 현재적 지각과 함께 조직화되는 것들만을 구체화할 수 있다.

  나의 의지가 공간 속에 주어진 한 지점 위에 나타나기 위해서 공간 속의 거리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구성하는 이 매개적인 것들 또는 장애들을 나의 의식이 하나하나 건너뛰어야만 한다면, 반대로 이 행동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현실적 상황을 유사한 이전의 상황으로 분리하는 시간의 간격들 위를 뛰어 오르는 것이 의식에게는 유용하다. 그리고 의식은 이처럼 단번에 그리로 옮겨가기 때문에, 과거의 매개적인 부분 전체가 의식의 손아귀를 벗어난다. 따라서 우리의 지각들이 공간 속에서 엄밀한 연속성으로 배열되는 바로 그 이유들에 의해 우리의 기억들은 시간 속의 불연속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공간 속에서 지각되지 않은 대상들과 시간 속에서 무의식적인 기억들에 관해서, 근본적으로 상이한 실존의 두 형식들에 관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동의 요구에서 볼 때는 전자의 경우가 후자의 경우와 역전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실존(exitence)이라는 주요한 문제에 접하게 된다. 이는 문제에서 문제로 나아가면서 형이상학의 핵심으로 인도되는 어려움으로 인해 단지 간략하게만 다를 수 있는 문제다. 경험의 사태들―여기서 우리의 관심이 되는 유일한 것들―과 관련하여 실존은 두 결합된 조건들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보자. 즉 1. 의식에서의 현시, 2. 그렇게 현시된 것이 앞선 것과 뒤따르는 것과 맺는 논리적이거나 인과적인 연결들이 그것들이다. 한 심리적 상태 또는 한 물질적 대상의 실재성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이중적 사실로 이루어진다. 즉 우리 의식이 그것들을 지각한다는 사실과, 그것들은 그 안에서 항들이 항상 상호 결정되는 시간적이거나 공간적인 계열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조건들은 다양한 정도를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둘 다 필연적인 것이면서도 불균등하게 채워진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현실적인 내적인 상태들의 경우에, 그 연결(connexion)은 덜 밀접하고, 과거에 의한 현재의 결정우연성에 따라 커다란 자리를 남기면서 수학적인 연역의 성격은 갖지 않지만 의식에서의 현시(presention)는 완벽하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심리 상태는 우리가 그 내용을 지각하는 행위 자체 속에서 우리에게 그 내용의 총체를 넘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 다른 조건에 해당하는 의식에서의 현시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채워진다. 왜냐하면 물질적 대상은, 그것을 다른 모든 대상들에게 연결하는 무수한 지각되지 않은 요소들로 인해 자신 안에 갇혀서 그것이 우리에게 보게끔 하는 것보다 무한히 더 많은 것을 자신의 뒤에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존은 그 말의 경험적 의미에서, 의식적 파악과 규칙적인 연결을 동시에 그러나 상이한 정도로 내포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오성은 선명한 구분을 세우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코 사태를 그와 같이 이해하지 않는다. 오성은 모든 경우에서 상이한 비율로 혼합된 두 요소들의 현존을 인정하기 보다는 차라리 이 두 요소들을 분리하여, 한편으로는 외적 대상들에 다른 편으로는 내적 상태들에 근본적으로 상이한 실존의 두 양태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 실존의 양태들의 특징은 각 양태에 단순히 지배적이라고 언명되어야 할 조건만이 배타적으로 현존한다는 것이다. (...)

  - 『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송 · 아카넷 · 2005년 · 원제 : Matiere et memoire, 1896년) p.24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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